행복의 열쇠5-그만하기 다행이지 김영국  (Homepage) 2023-04-20(목) 07:09:11, 44080

살아가면서 누구나 불상사를 만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불상사를 대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행복학자 조지 베일런트는 이 태도가 개인의 행복을 결정한다고 했다. 조슈아 빌은 이를 수식으로 명쾌하게 설명했다. 괴로움suffering = 고통pain x 저항resistance   기억해두자. S = P x R S는 불행의 정도, P는 사고 또는 시련, R은 수용 태도라고 볼 때, 같은 사고라도 수용 태도에 따라 불행의 정도가 달라진다. 어떤 사고를 당했는데 그냥 털털 털어버리고 지나가면, 곧 R이 0이 되면 아무 일도 아닌데, 그 사고에 분노하고 원망하고 자책하거나 거기에 다른 의미까지 덧씌워 툴툴거리면 대형사고로 둔갑한다는 것이다. 저항R을 줄이는 지혜를 우리 조상들은 일찍이 터득하고 있었다. ‘그만하기 다행이지.’ 또는 ‘불행 중 다행이야.’가 그것이다. 어떤 일을 당해놓고도 내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이 등을 두드리며 저런 말로 위로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민속신앙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는 ‘액땜’도 그런 지혜에 속할 것이다. 액땜은 크게 당할 액을 이번의 작은 액으로 때웠으니 그 작은 액이 백신이라는 논리다. 방송인 허지웅이 욕실에서 미끄러져 안와골절 진단을 받았다. 그때 그는 ‘정초 액땜은 돈 주고도 못 한다는데, 올해 좋은 일이 있으려나 보다.’하고 스스로 위로했다고 한다. 전화위복, 새옹지마라는 말도 ‘저항’을 줄여주는 말로 많이 활용한다. ‘두 번째 화살을 조심하라.’는 불가의 가르침도 같은 맥락이다. 내게 어느 날 느닷없이 구안와사가 찾아왔다. 대부분은 자연치유가 된다고 하는데 내게 온 것은 많이 모진 놈이었다. 양방 한방 양한방 협진까지 받았는데도 원상회복은 되지 않았다. 내 지인 가운데 아무도 걸리지 않은 병을 왜 하필 내가 걸려 이 고생인가 생각하다가 생각을 바꾸었다. 이 병이 퇴임 후에 찾아온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앞으로 혼주 등으로 다중 앞에 얼굴을 내밀 일이 없다는 것도 다행이다. 우리 가족 중에 누가 걸려야 할 병이었다면 그건 당연히 내 몫이 돼야지. 우리 가족 대표로 이 병에 걸림으로써 가족의 액막이를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병으로 죽을 일은 없으니 다른 병에 비해 다행이지 않은가. 마음을 그렇게 고쳐먹고 나니 병원 가는 걸음도 가벼워지고, 얼굴 가득 꽂는 침도 견딜 만했다. 며칠 전 <지선아 사랑해>의 주인공 이지선씨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다. 모교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금의환향했다. sbs '힐링 캠프‘(2013. 9)에서 그를 처음 보았다. 23살의 꽃다운 나이에 교통사고(2000. 7)로 상반신 3도 화상을 입고 40여 회의 수술을 견뎌내고 방송에 출연한 것이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사진으로 본 이화여대 재학시절의 상큼한 외모와 도저히 연결할 수 없는 참혹한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어 채널을 돌리려고 하다가 멈추었다. 시청자인 나, 사회자인 이경규 김제동 성유리와 달리 당사자 이지선씨는 너무도 편안하고 여유로웠던 것이다. 잔뜩 긴장한 사회자들을 출연자가 유머로 눙쳐줄 정도였다. 특히 인상적인 몇 장면이 있었다. “사고를 당하였을 때”하고 말문을 여는 사회자의 말을 끊고 ‘당하다’는 말 대신 ‘만나다’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양손 손가락을 자를 때 얘기는 끔찍하기조차 했다. 그러나 지선씨는 편안한 목소리로 엄지를 온전히 살려주고 다른 손가락 둘째 마디까지 남겨준 것이 너무 고마웠다고 회고했다. 덕택에 단추도 잠글 수 있고 수저질도 할 수 있다고 자랑까지 했다. ‘하필 내가?’하는 생각이 없었느냐는 질문에 누군가 만나야 할 일이라면, 자기가 만난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 철없는 질문도 했다. 사고 전으로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싶었겠다고 하니, 그 사고가 아니었다면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다는 걸 모를 뻔했다고 했다. 정말 견뎌내기 힘들었겠다는 위로에는 자기는 동굴 속이 아니라 터널 속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고 웃었다. 23살에 사고를 만나고 그 23년 만에 모교 교수로 돌아왔다. <지선아 사랑해> 후속작으로 <꽤 괜찮은 해피엔딩>이 곧 출간된다고 한다. 그의 삶을 겸손하게 담아낸 제목이다. 대단한 해피엔딩의 가장 큰 동력은 사고(시련)를 대하는 지선씨의 초인적인 태도라고 생각한다. 하루 하루가 선물이었고, 그래서 행복하게 살아왔다고 되돌아보았다. 이미 그는, 그때 만난 사고와 헤어져있었다. ※참고 ☞ 김영국의 ‘성자가 된 지선씨’ 다시 보기 ☞ 김영국의 ‘두 번째 화살’ 다시 보기 ☞ 김영국의 ‘어떤 액땜’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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