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과학기술진흥정책 송성수  (Homepage) 2008-09-01(월) 14:51:42, 3904

1997년에 <동양그룹 사외보>에 써 본 글입니다. 최근에 방송 중인 <대왕세종>을 보시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 ... --------------------------------------------------------------------------    우리에게 성년의 날로 알려져 있는 5월 19일은 발명의 날이기도 하다. 이 날이 발명의 날로 정해진 것은 1442년 5월 19일에 측우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 때는 세종대왕이 집권했던 시기로서 올해(1997년)는 세종 탄신 6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세종은 한글의 창제자로 추앙받고 있지만, 사실 세종의 가장 훌륭한 업적은 과학기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세종대의 과학기술은 주로 측정기구이다. 측우기, 해시계(앙부일구), 물시계(자격루)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중에서 측우기는 세계 최초의 발명품에 해당하고, 자격루는 격발장치를 활용한 자동물시계로 유명하다.    세종대에는 산업기술 분야에서도 중요한 발명과 체계적인 저술이 줄을 이었다. 전국의 농법을 정리하고 농업기술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하여 『농사직설』이 쓰여졌다. 의약재의 국산화와 저렴한 의약재의 개발을 위해서는 『의방유취』와 『향약집성방』이 집필되었다. 전국 규모의 지리 조사가 실시되어 『팔도지리지』가 작성되었고 그것은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으로 발전하였다. 도량형 제도는 斗(말)·升(되)·合(홉)의 체계로 정비되었고 『경국대전』에서 법제화되었다. 화약에 관한 지식은 『총통등록』으로 정리되었고 인쇄술에서는 경자자, 갑인자, 병진자 등의 청동활자가 만들어졌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세종대의 가장 뛰어난 업적은 천문역산학에서 찾을 수 있다. 천체의 위치를 관측하기 위하여 간의(簡儀)가 만들어졌고 태양의 고도를 측정하기 위하여 동표(銅表)가 제작되었다. 자동인형을 장치하여 별자리의 운동 시각을 측정하게 한 옥루(玉漏)와 검은 천위에 그려진 별자리들이 자동으로 돌게 한 혼상(渾象)은 세종대의 독창적인 작품이다. 세종대 천문역산학의 절정으로 꼽히는 『칠정산』(七政算)은 태양, 달, 금성, 목성, 수성, 화성, 토성 등 7개의 움직이는 별의 운동을 미리 계산하는 방법을 정리해 놓고 있다. 『칠정산』의 발간은 정확한 달력의 작성뿐만 아니라 일식 및 월식의 예보를 가능하게 하였다.    이상과 같은 세종대의 과학기술은 우리 역사에서는 물론 당시의 세계에서도 최고의 수준을 점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세종대에 과학기술이 급격히 발전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세종의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과 적극적인 과학기술진흥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세종은 과학기술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과감하게 투자한 인물이었다. 당시의 헌법에 해당하는 『경국대전』에서는 영의정이 과학기술의 발전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규정되어 있었으며 도량형에 관한 법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또한 세종은 천체관측, 지리서제작, 의서편찬 등을 국가 차원의 사업으로 간주하고 수많은 관리와 과학기술자를 투입하였다. 천문역산학은 세종의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분야이다. 그는 자신의 거주지인 경복궁의 경회루 둘레에 온갖 관측시설을 설치하였으며, 5명의 천문관을 두어 매일 천문현상을 관측하도록 하였고, 전국 동서남북 방향의 요지인 백두산, 한라산, 금강산, 마이산에 천체관측대를 설치하였다. 이러한 관심과 투자가 없었더라면 『칠정산』과 같은 업적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세종의 과학기술정책에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과학기술자에 대한 우대 조치이다. 세종은 국가의 중요 인물을 과학기술 사업의 책임자로 선정하였고, 국가 사업에 참여하는 과학기술자들의 직급을 상향 조정하였다. 또한 세종은 과학기술자들이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연구개발에 몰두할 수 있도록 특별 보수를 제공하였으며, 그들의 활동을 격려하기 위해서 연구실과 작업장을 방문하여 술과 고기를 하사하기도 하였다. 더 나아가 세종은 뛰어난 과학기술자를 신분에 관계없이 등용하는 획기적인 인사 정책을 구사하였다. 대체로 중인 출신이었던 천문관들은 세종의 특명으로 벼슬을 받아 양반의 신분으로 우대되었다. 특히 관노 출신이었던 장영실이 정3품의 벼슬까지 진급한 것은 우리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례에 해당한다.    최근에는 국내외적 환경의 변화로 인하여 과학기술을 진흥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과학기술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과학기술자에 대한 실질적인 우대 조치로 연결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위대한 군주 세종대왕은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과학기술정책의 본보기를 보여준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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