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최고의 기술자, 장영실(1) 송성수  (Homepage) 2008-09-27(토) 12:06:53, 4428

대한기계학회가 발간하는 <기계저널> 2008년 11월호에 게재 예정인 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선시대 최고의 기술자로 장영실(蔣英實, 1390년경～1450년경)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장영실의 탁월한 기술적 업적에 연유하고 있지만, 노비의 신분에서 조정의 관료가 된 입지전적 삶 때문이기도 하다. 게다가 장영실의 사례는 과학기술자를 아끼는 세종대왕의 이미지와 결부되어 있다. 이처럼 장영실은 우리에게 매우 친근한 기술자이지만, 그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역사적 기록은 많지 않다. 장영실의 생애에 대한 가장 믿을 만한 자료는 <세종실록>이다. <세종실록> 권61은 세종 15년(1433년) 9월 16일자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행사직(行司直) 장영실은 그 아비가 본대 원나라의 소·항주(蘇·杭州) 사람이고, 어미는 기생이었는데, 공교(工巧)한 솜씨가 보통 사람에 뛰어나므로 태종께서 보호하시었고, 나(세종)도 역시 이를 아낀다. 임인·계묘년(1422～1423년) 무렵에 상의원(尙衣院) 별좌(別坐)를 시키고자 하여 이조판서 허조와 병조판서 조말생에게 의논하였더니, 허조는 ‘기생의 소생을 상의원에 임용할 수 없다’고 하고, 말생은 ‘이런 무리는 상의원에 더욱 적합하다’고 하여, 두 의논이 일치되지 아니하므로, 내가 굳이 임명하지 못하였다가 그 뒤에 다시 대신들에게 의논한즉, 유정현 등이 ‘상의원에 임명할 수 있다’고 하기에, 내가 그대로 따라서 별좌에 임명하였었다. 영실의 사람됨이 비단 공교한 솜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질이 똑똑하기가 보통 이상으로 뛰어나서, 매양 강무할 때에는 나의 곁에 가까이 두고 내시를 대신하여 명령을 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찌 이것을 공이라고 하겠는가. 이제 자격궁루(自擊宮漏)를 만들었는데 비록 나의 가르침을 받아서 하였지만, 만약 이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암만해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들으니 원나라 순제 때에 저절로 치는 물시계가 있었다 하나, 만듦새의 정교함이 아마도 영실의 정밀함에는 미치지 못하였을 것이다. 만대에 이어 전할 기물을 능히 만들었으니 그 공이 작지 아니하므로 호군(護軍)의 관직을 더해 주고자 한다.” 앞의 인용문은 장영실이 자격루를 만드는 데 성공하자 이에 감탄한 세종이 장영실에게 호군이라는 높은 벼슬을 내리는 일을 대신들과 상의하는 자리에서 했던 말을 기록한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다음과 같다. 우선, 장영실의 조상이 중국 원나라의 소·항주 출신이며, 그의 어머니는 기생이었다. 또한, 장영실은 이미 태종의 총애를 받으며 궁궐 내에서 활동하고 있었으며, 세종 대인 1423년 이후에 정5품에 해당하는 상의원 별좌에 올랐다. 그리고, 세종은 자격루의 창제를 높이 평가하여 1433년에 장영실에게 정4품직인 호군을 내렸다. 장영실의 조상이 중국 소·항주 출신이었다는 사실은 아산 장씨 세보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장영실의 조상은 중국 조정에서 금자광록대부신위대장군에 올랐던 송나라 사람으로 고려에 귀화하여 아산군에 봉해졌던 장서(蔣壻)이며, 장영실은 그의 9대손이다. 흥미롭게도 장영실의 선조들은 대대로 과학기술 분야의 책임자로서 고위직에 올랐다고 한다. 예컨대 3세대 공수(公秀)와 4세대 숭(崇)은 군기시의 책임자를 역임하였고, 5세대인 득분은 군기시의 책임자와 서운관의 판사를 지냈다. 여기서 군기시는 무기의 제조를 맡았던 기관이었고, 서운관은 천문지리학을 담당했던 부서였다. 장영실의 아버지인 성휘(成暉)는 오늘날 장관급에 해당하는 전서(典書) 벼슬을 했으며, 동래현의 관청 기녀 사이에서 장영실을 낳았다. 이처럼 장영실은 어머니가 기생이었기 때문에 천한 신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장영실이 관노(官奴)가 된 사정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그가 조정에서 궁정기술자로 활약하기 시작했을 때의 신분이 동래현 소속의 관노였다는 사실이 <실록>과 <연려실기술>에 적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관노였던 장영실이 어떤 연유로 조정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태종 때부터 행해진 도천법(道薦法)이 거론되고 있으나 확실한 증거는 없다. 도천법은 각 지방에 있는 능력 있는 인재들을 임금에게 천거하는 제도를 말한다. 장영실의 기술적 재능이 조정에까지 알려져 관찰사의 추천으로 한양에 올라갔다는 것이다. 그밖에 장영실과 김담(金淡, 1416～1464)의 관계가 거론되기도 한다. 김담은 이순지와 함께 <칠정산내편>을 편찬하는 등 세종 대 천문역산의 독자적 확립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그런데 장영실의 아버지는 정실부인 사이에 딸 하나를 낳았고 그 딸이 김담에게 시집을 갔으니 장영실과 김담은 처남 매부 사이가 되며, 이러한 인연으로 관노에 불과했던 장영실이 천문역산 프로젝트에 발탁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담이 장영실 가문과 인연을 맺고 천문역산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것은 1430년대의 일이었지만, 장영실은 훨씬 이전에 발탁되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이 역시 근거가 미흡하다고 할 수 있다. 한양에 올라온 후 장영실의 행보는 <연려실기술>에 관련 기록이 있다. 이에 따르면, 장영실은 세종 3년(1421년)에 사대부 관료인 윤사웅, 최천구 등과 함께 천문학을 연구하면서 그 재능 인정받았다. 세종은 중국으로 유학 가서 더욱 깊이 연구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장영실은 윤사웅, 최천구와 함께 중국으로 가서 천문의기와 시계장치에 대해 공부한 후 세종 4년(1422년)에 돌아왔다. 결국 장영실은 1423년 이후의 어느 시점에서 상의원 별좌라는 벼슬을 얻으면서 천민의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상의원은 의복을 비롯한 왕실에서 사용하는 비품을 관리하는 기관이므로, 장영실과 같은 재주꾼이 필요했을 것이다.   장영실은 궁정기술자가 된 후 약 15년 동안 수많은 과학기술적 업적을 달성하면서 승승장구하였다. 여기에는 혼천의, 대간의, 소간의, 현주일구, 천평일구, 정남일구, 앙부일구, 일성정시의, 규표, 자격루, 옥루, 갑인자 등이 포함된다. 이와 같은 프로젝트의 많은 부분은 이천(李蕆, 1376～1451)의 책임 하에 장영실이 참가한 것이었던 반면, 물시계의 창제는 전적으로 장영실의 몫이었다.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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