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손에, 눈에, 마음에 담는 법 이기철  (Homepage) 2013-09-25(수) 07:18:39, 83925

사육장에서 사는 토끼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한 마리는 고참이고 한 마리는 신참이다. 둘은 토끼장에서 매일 배불리 먹고 자는 일이 일과다. 겉으로 보기에는 참 평온해보이고 행복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하루는 고참 토끼가 신참 토끼에게 제안을 하나 하게 된다. “야. 갑갑하지 않니. 저 푸른 초원을 달리며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신참 토끼는 그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동의하고 둘이 탈출을 감행한다. 며칠이 흐른 뒤 이 자유가 왠지 불편해진 신참 토끼가 고참 토끼에게 이렇게 말한다. “선배님, 힘들지 않으세요? 사육장에선 아침저녁으로 꼬박꼬박 주인님이 일용할 양식을 챙겨 주는데 꼬박꼬박 우리가 직접 밥을 챙겨 먹어야 하니 피곤해요. 이렇게 나와 다니는 건 좋지만 말입니다.” 이리해 신참은 다시 사육장에 스스로 갇히게 된다. 자발적 포기인 셈이다. 여기까지는 잘 알려진 이야기다. 최근 이 이야기를 모 중학교 독서지도 교사가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느낀 바를 적어보라는 주문을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신참 토끼의 길을 택했다. 그 교사는 이런 결과에 실망해 이후 독서지도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그렇게 된 것은 쉽고 편한 길에 익숙해진 탓일 것이다. 풍요의 시대가 던져준 부작용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필자도 독서지도 강의를 많이 나가는데 아쉬운 것은 책을 읽지 않는 사람보다 그래도 어느 정도 책을 좋아하고 독서량이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강의 자리를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고 이를 어떻게 자신의 삶에 응용할 것인지를 잘 아는 사람들이다.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길을 모르는 사람에게 목적지를 설명해주고 싶은데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자신의 갈 길을 잘 알고 있다. 독서 방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자리를 채워줘야 하는데 그 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독서를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이러한 강의를 외면하고 있다. 책을 읽지 않는 부모들은 역설적이게도 아이들에겐 책을 읽으라는 주문을 많이 한다. 자신이 하지 못한 일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책 속에는 많은 물음에 대한 많은 해답이 있다. 서재에서 답을 찾는 것이 올바른 삶의 선택이다. 물음표를 느낌표로 전환시키는 열쇠는 바로 책이다. 위의 모 중학교 학생들이 선택한 쉬운 길은 결국 답을 찾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선택한 행동이다. 살아보니 어떻던가? 삶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연습하고 훈련하지 않으면 결국엔 삶은 실패하고 만다. 잘사는 법을 깨닫는 길은 책을 손에, 눈에, 마음에 담는 일이 우선이다. 이쯤에서 한심한 우리나라 독서 실태를 잠깐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2002년 한국 갤럽이 조사한 ‘한국인의 독서 실태’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한 달 평균 독서량은 한두권에 불과하고 한 달 간 구입하는 책은 1인당 0.9권 정도다. 독일, 일본의 독서량, 구입정도에 한참 뒤지는 수준이다. 또 1991년 1인당 월 평균 독서량이 1.21권이었으니 그 동안 독서량의 증가가 거의 없었던 셈이다. 이런 숫자가 감동을 줄 리 없다. 통계발표를 들여다 볼 때마다 짜증이 밀려온다. 가을이라고 특별히 독서의 계절이 아니다. 말이 살찌고 하늘이 높을 때만 책을 읽을 것인가. 그것은 계절에 따라 인간의 삶을 누렸다 그만뒀다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시절, 일생 동안 인간다운 삶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다. 되돌아 간 사육장의 신참 토끼는 어떻게 됐을까? 말하지 않아도 알 터. 주인이 주는 밥을 먹고 살이 찐 뒤 어느날 팽(烹) 당했을 것이다. 책이 자신의 생에 있어서 무기가 되도록 무장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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