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열쇠11- 눈치 안 볼 용기 김영국  (Homepage) 2023-08-26(토) 08:23:24, 55664

모든 인간의 인생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 헤르만 헤세 - 노인이 되어 좋은 것 중의 하나는 남의 눈치를 덜 보게 된다는 것이다. 집 앞 팔도시장에 갈 일이 있으면 반바지에 크록스 끌고 나선다. 처음엔 좀 어색했지만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 아무도 나를 눈여겨보지 않고, 나 역시 남의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내가 눈치 살펴야 했던 대상들이 어느 새 내 곁을 대부분 떠나버렸다. 평판에 대한 부담도, 칭찬받고 싶은 욕망도 없어졌다. 편하다. 가볍다. 홀가분하다. 눈치의 무게가 어느 정도였는지 이제사 깨닫는다. 벌거숭이로 태어나, 살아가면서 상황에 맞춰 마음에 없는 표정을 짓고,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남의 탈을 쓰다가 이제 다시 처음의 벌거숭이 나 자신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손주들에게 ‘착하다’는 칭찬을 잘 하지 않는다. 착한 아이로 자라는 것이 달갑지 않기 때문이다. 착한 아이는 모범생으로, 모범생은 ‘좋은 사람’으로 살기 마련이다. 어려서 어른들의 눈치를 살피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눈에 날까를 조바심하다가, 사회에 나와서는 상사와 동료들의 눈치를 살피며 살게 된다. 그러는 동안에 눈치 백단의 경지에 이른다. 눈치 백단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주장이 없어야 하고, 아등바등 이기려 들어서는 안 된다. 남에게는 너그럽고 자신에게는 가혹해야 하고........ 그러다가 결국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 나는 우리 손주가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나를 잃고 이룬 성취는 그것이 어떻게 크고, 어떻게 빛나더라도 공허하다. 그런 인생은 참담하다. 어떤 사람이 은퇴를 하고 나서, 이제 나 하고 싶은 거 한번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자기도 남들처럼 버킷리스트를 작성해보려고 수첩을 펼쳤다. 그런데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도통 모르겠더라고 했다. 상사의 표정으로 기미를 알아채고, 주위의 평판에 신경을 쓰는 동안 내가 나를 잃어버린 것이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만 하고, 나의 욕망보다 남의 기대에 부응하면서 살아온 참담한 결과다. 법륜스님은 ‘나‘라는 존재가 길가에 핀 꽃과 같다는 것을 알면 살기가 많이 편안해진다고 조언했다. 사람들이 오든 가든, 날 좋아하든 말든 그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이걸 깨닫는 시기는 IQ와 반비례한다는 학설도 있다.^^) 남을 의식하지 말자는 것이다. 누군가의 인정을 받고자 하면 그 순간부터 그 사람의 노예가 된다. 사회의 평판에 신경을 쓰는 순간 ‘나’는 실종된다. 나의 소신, 나의 개성, 나의 취향, 나의 욕망은 철저히 포기하고 살아야 한다. 까칠해서도 안 되고, 어떤 부탁도 거절해서는 안 된다. 그걸 어기면 조직에서 소외되고, 경쟁에서 밀려나고, 인간관계가 파탄난다고 전전긍긍하며 일생을 살아가게 된다. 내가 교장이 되어 처음 부임한 학교가 문현여중이었다. 좋은 교장이 되고 싶었다. 회식을 마치고 어느 선생님의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물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선생님들의 여론은 어떤지. 거나한 술기운에 용비어천가를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 선생님의 대답은 술기운을 싹 가시게 했다. ‘선생님들 여론에 너무 신경 쓰지 마시라.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키고,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다. 본질에 충실하시겠다는 초심 놓지 말고 소신껏 하시라.’ 마음공부를 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의 내공인 줄은 몰랐다. 특히 모두에게 사랑받으려고 애쓰지 말라는 말은 교장질을 하는 내내 나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이 되었다. 퇴직 후 <미움 받을 용기>의 저자 기시마 이치로의 다음 말을 접하고 그분 선생님을 생각했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미움 받는 사람이 될 것인가? 만일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는 단연코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비록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어도 자유롭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부한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지 말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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