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열쇠10 - 취미 김영국  (Homepage) 2023-08-18(금) 08:42:54, 50911

취미의 세계가 넓을수록 행복의 기회가 많아지고, 운명의 지배를 덜 받는다. - 버트란트 러셀 - 좋아하는 것이 많은 사람은 행복하다.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사람은 사람 만나기를 기피하는 사람보다 행복하다. 좋아하는 음식이 많은 사람은 입이 짧은 사람보다 행복하다. 좋아하는 일이 많은 사람은 만사가 귀찮은 사람보다 행복하다. 좋아하는 일 가운데 생계와 관계없이 그냥 좋아서 하는 일을 취미라고 한다. 취미는 지루함의 특효약이다. 지루함은 만병의 근원이다. 지루함이 깊어지면 나쁜 짓을 하거나 우울증에 걸린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술 담배 약물 등 각종 중독에 빠지기도 한다. 옛날엔 일반 민중은 먹고 사는 일에 바빠 지루할 틈이 없었다. 루소는 그래서 지루함을 두고 “부자만 때리는 채찍”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여가를 누린다. 앞으로는 더욱 많은 사람이 더욱 많이 지루함에 노출될 것이다. 취미 활동에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까닭이다. 나는 근 2개월을 입원한 적이 있다. 다인실이어서 행동에 제약이 많았다. TV 리모콘을 손에 쥘 상황이 아니었다. 휴게실은 더욱 그랬다. 밤이 깊어지면 모든 TV는 먹통이 되었다. 그 시간을 견디게 해준 것이 라디오였다. 퇴직 후 산책하면서 mp3를 통해 라디오를 만났다. 어느 시간대에 어느 방송에서 어떤 프로가 방송되는지를 알고 기다릴 만큼 라디오 듣기가 취미로 자리매김했다. 낮에는 병원의 공원을 걷거나 벤치에 드러누워 주로 mbc를 들었다. ‘여성시대’, ‘싱글벙글 쇼’, ‘라디오시대’를 들으며 사연에 감동하기도 하고, 개그에 낄낄거리기도 했다. 밤에 일찍 잠이 깨면 kbs fm을 이어폰으로 들으며 새 날이 밝아오는 것을 담담히 지켜보았다. 생사의 기로에서 그래도 비교적 평온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취미가 한 몫을 했다. 퇴원 후는 의사의 지시대로 규칙적인 운동을 해야만 했다. 걷기가 최고라고 했다. 걷는 것은 내 오랜 취미였다. 수영강변, 동백섬 등은 내 체력에 맞는 코스였다. 내게 걷기는 의사의 주문에 따른 고역이 아니라 평생 해오던 취미활동의 연속이었다. 거기다 어느 택시기사의 조언에 따라 노래 부르기를 추가하니 금상첨화가 따로 없었다. 나는 노래를 잘은 못해도 즐겨 부르는 편이었다. 노래를 부르며 걷고 들어오면 한결 더 행복해져 있었다. 3개월마다 등원하여 진료를 받았다. 관리를 잘하고 있다는 의사선생님의 칭찬이 잇따랐다. 소소한 두 개의 취미가 빠른 회복의 원동력이었다. 지금 나를 버티게 해주는 힘은 독서다. 구안와사와 장기입원 후 나는 대인기피증이 생겨났다. 거기다 코로나마저 덮쳐 나의 대인관계는 더욱 좁아졌다. 책을 읽는 취미가 없었다면 이 시간들을 견뎌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새로 단장한 수영구 도서관은 나의 숨구멍이었다. 한 번 가면 세 권을 빌려온다. 2주일 안으로 반납해야 한다. 넉넉한 기한이면서 가벼운 제약이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책을 통하여 적어도 세 분을 만나 대화를 나눈다. 도서관으로 가는 길이 연인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설렐 때도 있다. ‘교육사랑’에 졸문이나마 글을 올리는 것도 하나의  취미가 되었다. 나는 한 달에 두 편은 올리자고 혼자 마음먹었다. 그다지 무겁지 않은 구속이다. 독서와 글쓰기는 맞물려 있다. 책을 읽으면 좋은 글을 공유하고 싶어지고, 글을 쓰면 책을 더 읽어야겠다는 욕망이 생긴다. 오프라인에서는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을 꼰대스런 얘기를 마음 놓고 지껄이고 나면 속이 후련해진다. 늘그막에 만난 병마 이후, 나는 나의 지극히 평범한 취미에 기대어 시련의 시간을 견뎌냈고 나름의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다. 살다 보면 어떤 상황에 맞닥뜨릴지 아무도 모른다. 취미가 다양한 사람은 그 상황에 맞는 취미에 기대어 상황에 대처하고 행복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취미 예찬론자인 처칠은 정계를 은퇴한 후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그를 평생 괴롭혀온 우울증 때문이었다. 그때 그를 구원해준 것은  40대부터 익혀온 그림 그리기 취미였다. 작가 한강은 음악 감상이 취미였다. ‘쑥대머리’로부터 팝까지 다양한 장르를 즐겨들었다. 아래는 어느 의기소침한 날, 앤 머레이의 ‘You Needed Me'를 듣고 쓴 글이다. 취미가 어떻게 행복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가 될 것이다. ‘내가 울 때 눈물을 닦아주거나, 내가 영혼을 팔았을 때 그걸 되사서 나에게 줄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노래를 듣다보면 일어날 힘이 생기고, 온몸이 터져나갈 듯한 만원 지하철 속으로 다시 뛰어들 용기가 생겼다. 어떤 종교도, 위로해줄 애인도 없을 때, 때로는 그렇게 노래 하나가 거짓말처럼 일상을 버텨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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