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선생님이.... 김영국  (Homepage) 2023-08-04(금) 06:59:38, 51974

다음 생이 있어, 감사하게도 다시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선생님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근 40년 동안 나는 한 번도 내가 선생님이 된 것을 후회해본 적이 없다. 출근하기 싫었던 적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내게 배운 학생, 나와 같이 근무한 선생님들은 어땠는지 몰라도 적어도 나는 내내 행복했다.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천국이 지옥이 돼버렸다. 최근 1년 동안 사직을 고민한 선생님이 무려 87%였다고 한다. 정신과 치료나 상담을 받은 분이 27%, 최근 5년간 학생 학부모에게 폭행을 당한 선생님이 1133명이었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교사도 맞기 싫어요.”라고 호소했을까. 내 딸과 며느리가 교직에 있지만, 7명의 손주 가운데 선생님이 되겠다는 애는 한 명도 없다. 얼마 전 막내 손주 두 명(초3, 초5)과 밥을 먹었다. 선생님에게 대드는 학생이 있는지 물었더니, 서슴없이 남학생은 몇 명 빼고 다 그렇다고 했다. 그게 유행이 되었나 보다. 수업 중에 장난치거나, 잡담하거나, 휴대폰 보다가 지적받으면 불평하거나 욕을 한다고 했다. 무슨 욕? 막내가 차마 입에 못 담고 쌍시옷 비읍 하며 웃었다. ‘군사부일체’,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시절도 있었고, 교사가 청소년의 희망 직업 1위 자리를 장기집권한 적도 있었다. 교대, 사대의 합격선이 의대 법대와 맞먹고, 임용고사는 고시 수준이라는 말도 있었다. 임용고시도 치르지 않고 교직에 들어온 나도 덩달아 우쭐하기도 했는데. 선생님의 행복이 학생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은 못 돼도 필요조건은 된다. 학생들은 선생님이 지금 행복한지, 우리를 사랑하는지를 동물적 감각으로 안다.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얘들이 나를 신뢰하고 존경하는지, 나한테 배우고 싶어 하는지를 교실 문을 여는 순간 직감한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교육 자체가 불가능하다. 인성교육은 말할 것도 없고, 지식전달도 불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 몫이다. 대한민국 청소년은 미우나 고우나 초중고 12년을 학교에 가서 선생님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애들은 철이 없어 그렇다 치더라도 저 잘난 학부모들을 이해할 수 없다. 애들 앞에서 선생님을 험담하면 애들은 선생님을 존경하지 않는다. 선생님을 괴롭히면 괴롭히는 만큼 선생님은 기운이 빠진다. 제대로 가르칠 수 없다. 그래도 봉급은 나온다. 그런데 학생은 그 선생님한테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똑똑한 바보들아, 누가 손해인가.   애들은 자라면서 두려워하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 부모는 이미 아니다. 법도 아니다. 그들은 ‘촉법’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주고받는다. 체벌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학교가 최후의 보루다. 선생님의 권위, 교칙, 생활기록부, 이 마지막 보루마저 학생인권조례 아동학대법 등의 쓰나미에 다 쓸려 가버렸다. 이제 학생에게 두려운 것이 없다. 학교는 이미 아노미 상태다. 제대로 배우지 않고, 겁 없이 자란 저 애들이 어른이 되어 만들어낼 세상이 두렵다. 지만 착하고, 지만 정의롭고, 지만 똑똑한 줄 아는 부류들(김상곤이 그 원흉이다.)의 철딱서니 없는 짓거리의 결과다. 그들이 학교와 선생님을,학생과 학부모를 지금 이 지경으로 만들어버렸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백가쟁명으로 시끄러울 것이다. 거기에 부질없이 숟가락을 얹을 생각은 없다. 다만 이 상황에서 떠오르는 다음 세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프랑스 사르코지 얘기는 낯간지럽지만 동여고 재직 시 행했던 훈화의 일부다. #1. 스스로 바보가 된 학부모 초등학생이 등굣길에 발견한 풀꽃 하나를 들고 와 선생님에게 그 이름을 물었다. 선생님도 모르는 꽃이었다. 그 학생은 집에 가서 선생님도 모르시더라면서 아버지한테 물었다. 아버지는 그 분야를 전공하는 대학교수였다. 아버지는 한참 동안 고개를 갸웃거리며 살펴보다가 자기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담임선생님한테 전화를 걸었다. 꽃 이름을 가르쳐주면서 내일 아들에게 일러주라고 했다. 다음 날 선생님으로부터 꽃 이름을 알게 된 학생은 선생님이 아버지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2. 기상천외의 대학입시 2020년 3월 18일 영국 정부의 긴급발표가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영국의 록다운 선언이었다. 요지는 두 가지. 1. 이틀 뒤부터 모든 학교의 등교수업을 중단한다. 2. 올해 대입시험을 포함한 모든 국가고시는 취소한다. 영국의 대입시험은 통상 5~6월에 시행되고 있어 그야말로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교육부에서 내놓은 대안이 기가 막혔다. 시험을 정상적으로 치렀을 경우 학생이 받았을 점수를 학교의 과목 담당교사가 정한다는 것이었다. 교사 단체 대표의 성명도 가관이었다. “우리는 학생들을 가장 잘 알고, 그들의 성취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경험과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은 곡절은 있었지만 각 대학은 신입생을 무사히 선발하였다.(정부도, 대학도, 학부모도, 학생도 선생님을 믿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3. 사르코지의 교육관 여러분 사르코지라는 이름을 들어보았습니까? 평소에 신문 좀 보는 학생이라면 프랑스의 새 대통령 이름이라는 거, 대통령 재임(2007~2012) 중 이혼하는 바람에 세계적인 화제의 주인공이라는 거 정도는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분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프랑스를 개조하겠다고 칼을 빼어 들었습니다. 특히 교육을 바꾸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습니다. 전국의 교사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로서 언뜻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습니다. 이를테면 “학생은 교사와 동등한 위치에 있지 않다.” “교실에 학생의 인권만 있고 지식은 없어졌다.”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면 학생들은 일제히 일어서서 인사를 해야 한다.” 일제강점기나 군사정권 때를 연상시키는 얘기 아닙니까?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프랑스 국민 79%가 사르코지의 생각에 동의하면서 학교 규율이 더 엄격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중략> 우리학교는 작년부터 <반듯한 학교 반듯한 학생>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반듯한 학생을 길러내는 학교가 반듯한 학교입니다. 반듯하게 생활하고 반듯하게 공부하는 학생 곧 지킬 건 지키며 공부하는 학생이 반듯한 학생입니다. 우리학교에서는 반듯한 생활 태도를 함양하기 위하여 학교생활기록부 비교과영역을 활용합니다. 평소의 생활태도를 학생부에 기록하는 매뉴얼을 만들어 그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혹한 내용이 있더라도 담임선생님을 원망하지 마십시오. 교장선생님의 뜻입니다. 수업태도는 수행평가 점수에 반영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대학 가는 데 핸디캡이 된다 하더라도 이 원칙은 엄격하게 끝까지 지켜 갈 것입니다. (이 엄포는 결국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ㅜㅜ)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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