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S 좀 하며 살 걸 김영국  (Homepage) 2022-10-21(금) 19:43:19, 39902

삶은 의사결정(선택)의 연속이다. 그 결정의 축적이 지금의 ‘나’다. 그 결정을 하루에 150번 이상을 하며 살고 있단다. ‘짜장이냐, 짬뽕이냐’처럼 가벼운 것이 있는가 하면, 직업이나 배우자 선택 같은 무거운 것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의식하지 않고 자동모드로 결정하며 살고 있다. 매번 하나하나 신경 쓰며 결정하는 사람은 아마도 제 명에 죽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줏대 없이 시류에 따르거나, 귀가 얇아 남의 말에 쉽게 휘둘리는 사람은 패가망신하기 십상이다. 한 탈북자의 얘기를 들어보면 우리가 참 간 큰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과수원에서 일하는 탈북자에게 주인이 말을 걸었다. 북한에서 제법 잘 나가는 당원이었는데 친척 중 하나가 탈북하는 바람에 감시를 받는 처지가 돼버렸다. 하는 수 없이 일가족이 탈북을 했다고 한다. “북한은 살기가 좀 어땠어요?” “상황 때문에 탈북은 했지만 북한이 훨씬 살기 좋았어요.” “남쪽의 어떤 점이 북한보다 힘들어요?” “선택이 힘들어요.” “?????” “북한에서는 선택이 필요 없어요. 당의 지시대로 살면 부족한 대로 집, 옷, 밥 걱정하지 않아도 됐거든요. 그런데 남한에서는 하나만 잘못 선택하면 쫄딱 망하잖아요. 그 스트레스가 너무 힘들어요.” 어릴 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 있다. ‘단디’가 그것이다. 안 그래도 소심한 터에 이 말은 나를 옥죄었다. 자라면서 이 말은 ‘심사숙고’와 ‘신중’으로 변신하여 나를 짓눌렀다. 깊이 생각하고深思 오래 살펴보고熟考 삼가 무겁게愼重 결정해야 한다며 나는 시나브로 우유부단한 사람이 되어갔다. 티셔츠 하나라도 한 가게 들어가서 종업원이 권하는 상품 덜컥 사지 말고, 시간을 들이고 다리품을 팔아 여러 가게 두루 둘러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오래 고민해야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어릴 때 또 많이 들은 말이 있다. ‘게리다 게리다 지게린다.’(’고르다 고르다 잘못 고른다‘의 서부경남 사투리) 턱없이 눈이 높아 이 남자 저 남자 다 싫다고 퇴짜 놓다가 결국 그들보다 못한 남자에게 시집가는 경우에 뒷담화로 하는 말이었다. 바둑에도 ’장고 끝에 악수 나온다.‘는 격언이 있다. 나는 8~9급 두다가 말았는데(나는 매사가 그랬다.) 아무리 오래 생각해봐도 결국은 거기가 거기였다. 그러다 “바둑 두는 사람 어디 갔나?”하고 재촉이라도 받으면 엉뚱한 곳에 덜컥 놓고 만 경우가 많았다. 대체 어쩌라는 것인가. 이성으로 계산하고 비교하여 결정하라는 것인가, 첫눈의 직관에 따르라는 것인가. 덜컥 샀는데 다른 점포에서 더 싸고 좋은 걸 보고 후회한 적도 있고, 망설이다 다음 날 가봤더니 팔리고 없는 경우도 있었다. 답을 고쳐 써서 좋았던 적도 있고, 고민 끝에 고쳤는데 오히려 처음 쓴 것이 정답이었던 경험도 있을 것이다. 한사코 매달리는 이성을 차버렸는데 여러 사람 만나보니 별놈(별년?) 없어 돌아보니 이미 임자 있는 몸이 돼있어 가슴을 치는 사람도 더러 봤을 것이다. 대체 정보의 양과 고민의 시간이 현명한 선택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까? 지내놓고 보니 디자인계의 황금률 KISS Principle(Keep It Simple, Stupid!)이 인생사에도 옳은 것 같다. 내가 사범대에 진학한 것이나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는 데 그다지 고민하지 않았다. 반면에 넥타이 하나 고르는 데 꽤나 신경을 썼던 것 같다. 그냥 단순하게 결정한 걸 크게 후회하지 않았고, 신중하게 골라서 크게 만족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한 번뿐인 짧은 인생, 그렇게 시간 쓰고 애쓸 필요가 있었을까. 늘그막에 살짝 후회가 된다. 다음 실험들을 그때 알았더라면 내 생이 덜 힘들지 않았을까? KISS 좀 하며 살 걸.^^ # 잼 고르기 잼 6종류를 진열해놓았을 때와 24종류를 진열해놓았을 때를 비교해보았다. 6종류일 때가 24종류일 때보다 매출이 무려 7배나 많았고 만족도도 높았다. 정보량이 한계를 넘으면 선택을 중지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Choice Overload Effect) # 중고차 고르기 중고차 4대 중 괜찮은 1대를 골라내는 실험을 했다. A 집단에게는 개별 차에 대한 정보 12가지와 충분한 시간을 주어 고르게 했다. B 집단에게는 4 가지의 정보(연비, 가격, 주행거리, 엔진 상태)만 주고 제한된 시간에 고르도록 했다. A 집단의 25%가 괜찮은 차를 고른 반면, B 집단은 60%가 골라냈다. # 동전 던지기 시카고 대학 경제학 교수 스티븐 레빗은 동전 던지기 사이트를 만들어 놓고, 결정 고민에 빠진 사람을 모집했다. 고민의 내용을 입력하고 모니터에 떠있는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실행하고 뒷면이 나오면 포기하게 했다. 1년 동안 4000여 명이 참가하여 그 중 63%가 동전이 나오는 대로 따랐다. 고민의 대부분이 이직, 결혼 등 심각한 내용이었다. 6개월 후 추적 조사한바 그렇게 결정한 사람들의 행복도가 높아졌다고 한다. # 불쌍한 파블로프의 개 조건반사 실험에 동원된 파블로프의 개도 불쌍한데, 그 뒤 여러 심리학자들이 각기 다른 버전의 실험을 했다. 가장 안타까운 실험은 원과 타원을 구별하게 한 것이었다. 원을 보여주고 먹이를 준 반면 타원을 보여준 뒤에는 먹이를 주지 않았다. 기특한 개는 원을 보는 순간 침을 흘리고 타원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런데 잔인한 실험자는 타원을 조금씩 원에 가깝게 변형시켜갔다. 어느 지점에서 개는 헷갈리기 시작했다. 실험을 계속하자 드디어 개는 낑낑거리거나 오줌을 지리기도 했다. 나중에는 주위 물건을 닥치는 대로 물어뜯었다. 불쌍한 개는 결국 신경증에 걸리고 말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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