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과 이별할 때2 - 이 책6 김영국  (Homepage) 2022-06-19(일) 11:04:55, 30342

얼마 전 어떤 기관에서 안락사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을 조사하였다. 놀랍게도 76%가 찬성이었다. 그리고 한 국회의원이 조력존엄사법을 발의했다. 드디어 안락사가 공론의 장에 등장하게 됐다. 다만 막 발의한 법의 문제점 하나가 눈에 띈다. 환자 본인의 명백한 의사 표현이 있을 때를 허용 조건의 하나로 넣은 것이다. 치매나 의식 상실 환자의 안락사를 막아놓았다. 그 질환이 빠진 법안은 의미가 없다. 사전의료의향서를 확장하여 거기에 안락사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미리 밝혀놓도록 하면 해결된다. #4에서 15년째 누워있는 남편을 응급조치로 살려놓은 의료진을 향해 “왜 또 살려놓았느냐?”고 80을 바라보는 아내가 원망을 한다. #6에서 시한부 무남독녀가 10 년을 누워있는 엄마에게 지금 좀 죽어달라고 애원을 한다. 누가 이 아내와 딸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누가 이들을 천하에 몹쓸 죄인으로 만들고 있는가. #12에서 90의 노인이 간호조무사에게 푸념을 한다.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는데 어째서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냐고. 짐승보다 더 추하게 죽어가는 환자를 보고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노래하겠느냐고.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며 떠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차마 못 할 생각, 해서는 안 될 말  하지 않고 정중히 보낼 수 있도록 나라가 배려해줘야 한다. 하루 빨리....... #7 창수와 미화의 끝사랑 두 분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미화 할머니가 입원하던 날 병실 입구에서 서럽게 울고 있었다. 복도를 걷고 있던 창수 할아버지가 그 광경을 보고는 할머니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어서 와요. 이젠 안심하고 살 데를 왔는데 울긴 왜 울어요? 아직 애기네, 애기야.” 환자복 소매로 얼굴에 묻은 눈물을 닦아주었다. 할머니가 고개를 들어 할아버지를 보았다. 시선이 마주쳤다. 할머니의 울음이 어느새 그쳐 있었다. 따라온 가족들이 안도했다. 두 분 다 치매였다. 말기는 아니었다. 할머니는 무릎이 불편하여 휠체어를 타야만 했다. 하루에 두 번은 할아버지가 할머니 휠체어를 밀고 병동 복도를 산책했다. “봐요. 아무리 봐도 당신이 제일 예쁘지? 김지미도 최은희도 당신보단 안 예뻐요.” 할머니는 함박꽃처럼 환하게 웃었다. 식사도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로 가서 부부처럼 마주보고 먹었다. 두 분의 치매 증세가 현저히 좋아졌다고 가족들이 좋아했다. “창수 어르신 대단하세요. 지금  미화 할머니랑 연애하시는 거 맞잖아요? 그런데 할머니 어디가 그렇게 예쁘세요? 같이 손잡고 걸을 수도 없고, 휠체어 밀어주시려면 힘도 많이 드시잖아요?” “이 사람아 두 다리 못 쓴다고 마음까지 못 쓰는 게 아니야. 사랑은 병들지 않아. 사람이 병드는 거지,” #8 칭찬 공장 사장님 “또 치료해주려고? 고마워서 어쩌나? 늙은이 살 보는 거 싫을 텐데도 내색 안 하고. 그것도 하루 세 번씩이나... 고마워.” “아유, 어르신 고맙기는요. 저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요.” “그래서 고맙다는 거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도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게 예뻐서 말이야. 세상에 어째 이렇게 착한 이들이 많을까. 여기 보호사들도 얼마나 다들 순한지 기저귀 갈면서도 손길이 찬찬한 게 진심으로 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 경희 어르신은 올해로 100세이시다. 고관절을 다치신 거 말고는 편찮으신 데가 없다. 기억력도 좋으시고 피부도 고우시다. 표정도 밝으시고 칭찬을 입에 달고 계신다. 식사 시간에는 맛있다고 식당 직원을 칭찬하시고, 주사를 맞을 때는 안 아프게 놓는다고 솜씨가 좋다 하시고, 목욕이나 이동을 도와 드리면 일일이 손잡고 거듭거듭 고맙다고 인사하신다. “어르신은 어찌 그렇게 칭찬을 잘하세요? 저희들 평생 들을 칭찬을 지금 어르신께  다 듣고 있어요. 그래서 모두들 힘이 나요. 어르신은 정말 칭찬 공장 사장님 같아요. 매일매일 칭찬을 만들고 계시잖아요?” “칭찬 공장 사장님? 거 참 좋은 공장일세. 그래서 하느님이 입을 만들어주신 거야. 남한테 좋은 말 많이 하라고, 그게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온 이유야.” #9 내 자식들 소문난 효자효녀들이야 부모가 되면 나라 하나를 다시 세운다. 거짓말 공화국. 그리고 헌법 1조는 똑같다. 자식을 효자효녀로 세상에 남기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거짓말 공화국에 우리들의 부모들이 있다! “아니야. 이것저것 해온다는 걸 내가 말렸어. 올 때마다 뭘 그렇게 해오겠다는 게 많은지. 그거 말리는 것도 귀찮아 죽겠어. 안 먹을 거 해오면 돈만 아깝지 안 그래? 내가 원래 입이 좀 짧아.” “저 노인네 거짓말하는 거야. 어제 무슨 딸이 왔다는 거야? 나 여기 입원하고 한 번도 저 집 자식들 본 적도 없는데.” “아들이 집에서 모시겠다고 사정하는 걸 내가 우겨서 왔다니까. 왜 그걸 거짓말한다고 매번 핀잔주는 거야? 자기가 자식들한테 끌려 왔으니 다 그런 줄 아는 거지.” ‘야 이 영감탱이야, 내 자식들은 사방 백 리에 소문난 효자효녀들이야. 이 전화기도 큰아들이 사준 거야.“ #10 제발 저분 좀 김문환 씨. 65세. 공기업에 입사해 승승장구하다가20년 전, 쉰도 되지 않은 나이에 뇌경색. 왼쪽 다리와 팔 편마비. 치매 등 다른 질환 없음 10여 년을 집에서 요양하다가 아내가 척추관협착증으로 석 달 전 입원. “정말, 저분 좀 퇴원해 다른 병원에 갔으면 좋겠어요,” 김문환 씨 병실에서 기저귀 케어를 끝내고 나오는 요양보호사가 오늘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인상을 쓴다. 이미 그는 소문난 공공의 적이 되어있었다. 환자로는 별로 손 갈 일 없는 무난한 환자다. 그러나 우린 그가 싫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받는 모멸감이야말로 몸에 돋은 소름이 더  길고 더 넓게 뻗치게 한다는 걸, 우린 그로 인해 알았다. 그는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사람이었다. 의사나 수간호사에게는 고분고분하고 예의와 경우를 차린다. 그러나 간호사,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미화부 여사님들에게는 경멸과 얕봄의 눈길과 말투를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그 사람의 나이가 얼마든 따지지 않고 반말이다. “어이, 이리 와봐.” #11 내가 가장 겁났던 건 김영복 어르신. 82세. 아내는 산후풍으로 죽고, 두 아들 미국으로 이민. 7년 전부터 파킨슨으로 고생하다 본인의 의지로 요양병원 입원. 보행이 자유롭지 못하고, 얼굴 근육이 경직되어 웃는 건지 우는 건지 구별 안 됨. 두 아들이 번갈아 귀국하여 모셔 가려 애원했으나 한사코 거절. “내 나라에서 이런 꼴 보이는 것도 싫은데, 내가 왜 멀쩡한 나라 두고 남의 나라 가서, 다른 나라 사람들한테 이 꼴 보이며 살아? 사실 여기 들어오기 전 혼자 있을 때, 아무것도 겁나지 않는데 딱 한 가지가 겁납디다.” “혼자 돌아가실까 봐서요?” “아니야.” “그럼 보고 싶은 자식들 못 보고 갑자기 돌아가실까봐서요?” “그건 운명이니 어쩔 수 없지 않소?” “그럼 딱 한 가지가 뭔데요?” “혼자 죽었는데, 아무도 그걸 모를까봐... 아무도 모른 채 내가 상해갈까봐... 그래서 신문에 나고 뉴스에 나올까봐... 그래서 우리 자식들 가슴에 큰 못을 박게 될까봐...여기 못 들어오고 나 같은 걱정하는 노인들 바깥에 천지삐깔이야. 처음으로 우리 병원에 입원해 계신 많은 어르신들이 가엽지 않은 날이었다. 처음으로 요양병원에서 떠나보낸 어머니에게 죄스런 마음이 조금은 옅어지던 날이었다. #12 부모 요양병원에 모신 거 그거 잘한 일이야 정훈규 어르신. 90세. 복합질환으로 한 달 전 입원. 두 살 연상인 아내와 동반입원, 아내는 위중하여 중환자 병동에 입원. “여 와보니 진짜 사람만큼 질긴 생명도 없다 싶다. 누가 그랬노?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이렇게 지 맘대로 죽지도 못하는데 이기 무슨 영장이고? 그라고 그 뭐꼬? 제목이 참 웃긴 노래 안 있나? 맞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그거 새빨간 거짓말이다. 늙어보지도 않고, 병들어보지도 않은 젊은 것들이 만든 노래지. 우째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노?  늙고 병들면 사람만큼 더럽고 추잡시런 짐승도 없대이. 영장은커녕 사람만큼 불쌍한 짐승도 없다 말이다.” “아프지 말거래이. 너무 오래 살지도 말그래이. 니는 딱 예쁘게만 살그래이.” “몸태도 말 태도 고운 사람이 맨날 피 보고, 고름 보고, 정신 줄 놓은 양반들 악다구니 받고, 한시도 앉을 여가 없이 새 다리 같은 다리로 종종거리는 거 보믄 안씨러버 못 보겠더마. 와 돈 벌어야 되나? 그래 보이지 않는데... 혹시 부모를 요양병원에 모셨다고 맘 쓰지 말거래이, 그건 잘한 일인기라. 늙으면 지 몸도 지가 못 씻는데, 마누라고 남편은 같이 늙었으니 힘 빠져 못 씻겨주고, 아들이고 딸이고 며느리고 씻겨준대도 민망해서 못 맡기는 기라. 그런데 여기 오니 간병하시는 저 여사님들이 얼마나 잘 씻겨주는지, 마 몸이 펄펄 날아가는 거 같더라. 늙고 병들면 그래서 남이 더 편한 기라. 핏줄은 건강할 때, 내 몸에서 냄새가 안 날 때까진 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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