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알면 행복할까-이런 생각8 김영국  (Homepage) 2022-07-03(일) 07:50:35, 30603

큰딸이 결혼 후 한동안 임신을 하지 않아 은근히 걱정하던 차에, 손아랫동서가 애를 가졌다는 소식에 화들짝 마음이 바빠졌다. 그 힘들다는 인공수정을 생각할 무렵, 집사람이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았다. 걱정하지 마라, 올해 안에 소식이 있다, 부적도 필요 없다는 말을 듣고 기다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희소식이 날아왔다. (그 아이가 올해 대학을 갔다.) 하도 신기해서  두어 번 더 찾아갔는데 맞추지 못했다. 그 뒤로 발길을 끊었다. 20대 대선에서 무속 문제가 쟁점이 되었다. 미신을 믿는 사람에게 나라를 맡길 수 있느냐 하고 몰아세웠다. 그런데 그렇게 열을 올린 그 후보도 그 도사를 찾아갔다는 것이 밝혀졌다. 사실 말이지 우리나라 정치인 치고 점집에 안 가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미국 레이건 대통령도 출마를 앞두고 아내 낸시에 이끌려 점성술사를 찾아갔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1986년 소련 고르바초프와의 회담 준비 과정에서도 점성술사에게 조언을 구했다는 사실이다. 국가 대사를 예언에 의존한 역사는 오래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키케로의 다음 말은 저간의 사정을 웅변한다. “신탁을 받지 않고 그리스가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삼은 적이 있는가.”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인간은 다양한 방법을 줄기차게 고안했다. 위에 언급된 것 말고도 해몽, 징조 풀이(길조 흉조 등), 사주명리학, 토정비결, 궁합 등 끝이 없다. 최근에는 과학기술에 기대어 비교적 적중률이 높은 예측 방법이 등장하여 인간의 예지豫知 욕망에 부응하고 있다. 일기예보는 이제 일상이 돼버렸다. 이 기술 덕택에 인간은 예전보다 훨씬 안전하게 생활하고 있다. 요즘 정치인들은 선거를 앞두고 점집보다 여론조사기관을 찾는다. 코앞에 다가온 결과를 좀더 빨리 알고 싶어 출구조사를 하기도 한다. 시뮬레이션이나 빅데이터를 예측 도구로 활용하는 방법도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과학의 발달로 일식 월식을 정확하게 예측하게 되었다. 천둥 번개의 원리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런 자연현상에 허무맹랑한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이제 없어졌다. 이번 대통령 취임식 날 무지개가 떴다고 길조라며 떠벌이던 목소리도 메아리 없이 잦아들었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다는 것은, 알고 싶어 한다는 것은 미래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생각을 전제하고 있다. 하느님, 전생의 업보, 사주팔자 등에 의해 이미 다 정해져있다는 결정론 내지 운명론을 깔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미래를 인간이 알게 된다면 인간은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까. 먼저 불확실성에 따른 불안이나 공포에서 인간이 해방될 것이다. 혹시나 했다가 역시나 하고 실망하는 희망 고문을 겪지 않아도 될 것이다. 예상치 못한 횡액을 당하여 멘붕에 빠지는 일도 없어지겠다. 우리 애들이 살판나겠다. 어느 대학 무슨 과에 갈지 아는데 어느 바보가 죽자 살자 공부하겠는가. 부모도 지금처럼 그렇게 애태우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심신을 좀먹는 걱정에서 해방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걱정 가운데 96%는 쓸데없는 걱정이라 하지 않던가. 개인 간의 싸움이나 나라 사이의 전쟁도 많이 줄어들거나 덜 치열할 것이다. 어차피 승부를 알고 있으니 말이다. 남녀 관계가 지금보다는 쿨할 것 같다. 배우자가 될지 안 될지를 서로 알고 있는데 굳이 질척거릴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죽을 날짜를 알고 있으므로 그에 맞추어 인생설계를 하고, 버킷리스트도 조정할 것이므로 지금보다 훨씬 더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여유롭게 살아갈 것이다. 자기 분수 내지 운명을 알고 거기에 맞추어 주어진 길을 고분고분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아등바등 애면글면 이런 단어도 없어질 것이다. 꿈 같은 세상에서 꿈같이 살아갈 것 같다. 미래를 안다고 모두가 꿈 같은 인생을 살게 될까. 문득 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푸스가 생각난다. ‘테바이 왕 라이오스는 어렵사리 얻은 아들 오이디푸스의 운명을 신전에 물어본다. ‘친아버지를 죽이고 친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이다.’는 예언을 듣고 아들을 멀리 산 속에 버리게 한다. 이 아이를 목동이 발견하고 후사를 걱정하고 있는 코린도스 왕 폴리보스에게 바친다. 세자로 장성한 오이디푸스는 자기 운명이 궁금하였다. 위와 같은 끔찍한 신탁을 듣고는 그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라를 떠난다. 타국 땅에 이르러 그곳의 백성들을 괴롭히는 스핑크스를 처치함으로써 신망을 얻는다. 궐위 상태인 왕위에 추대되고 왕비를 아내로 맞아들인다. 세월이 흘러 오이디푸스는 길에서 우발적으로 죽인 그 남자가 친부이고 지금의 아내가 친모임을 알게 된다.‘ 이 신화를 두고, 인간은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정신분석학에서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개념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런데 나는, 미래를 알려고 덤비는 인간에게 울리는 경종이라 볼 수는 없을까 생각해본다. 아버지나 아들이 미래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미래라는 신의 영역을 인간이 넘보다가 일어난 불상사가 아닐까. 미래를 알게 되어 오히려 나빠진 경우는 비단 오이디푸스만은 아닐 것이다. 가령 미리 알아버린 프로포즈와 전혀 예상치 못한 프로포즈를 비교해보라.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 이렇게 인간이 미래를 알고 있으면 이른바 깜짝 쇼(서프라이즈)는 없어질 것이다. 설렘, 기쁨, 감동, 감격 등의 감정이 반감되고 말 것이다. 소설, 영화, 드라마 등 서사 위주의 예술이 쇠퇴할 것이다. 결말을 알고 반전의 묘미가 사라진 이야기에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같은 이유로 경기, 게임, 도박 등 승부를 가르는 놀이가 사라지지 않을까. 올림픽, 월드컵 등이 없어지고 프로 야구, 프로 축구도 없어질 수밖에 없을 테니 세상 참 재미없어지겠다. 사고나 병마를 갑자기 당하는 것도 황당하겠지만, 그것이 닥쳐올 날짜를 미리 알고 몇 년 몇 달 전부터 긴장하고 걱정하는 것이 훨씬 더 고통스러울 것 같다. 줄빳다를 맞을 때 차라리 먼저 맞는 것이, 동료들의 비명을 들으며 차례를 기다리다 맞는 것보다 낫지 않던가. 그리고 미래를 알게 되면 인간의 많은 능력과 미덕들이 사라질 것이다. 이를테면 상상력 창의력 추리력 판단력 등이 퇴화할 것이고, 용기 도전정신 열정 끈기 인내심 등도 점차 식어갈 것이다. 선거에서 당선될지, 사업이 번창할지, 시험에 합격할지 등의 미래는 누구나 알고 싶어 한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죽을지를 미리 알기를 바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소설이나 영화의 결말, 경기나 게임의 결과도 모르고 보아야 재미가 있다.(깐족거리는 스포일러가 얼마나 얄밉던가.) 나의 레일 위에서 미래를 훤히 내다보면서 순명하며 살다 가는, 편안하지만 재미없는 인생이 좋을까. 지금처럼 한치 앞도 모르면서 내 길을 내가 열어가며 사는, 힘들지만 재미있는 인생이 좋을까. 각자의 인생관 가치관에 따라 선택이 달라질 것이다. 나는 인생에서 재미와 의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처럼 닥치는 대로 사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다만 아무도 모르는 미래를 나만 살짝 한시적으로 알 수 있다면 그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엉큼한 생각은 가끔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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