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과 이별할 때1-이 책6 김영국  (Homepage) 2022-06-07(화) 05:24:18, 29844

옛날엔 집 밖에서 죽는 것을 객사客死라 하여 흉사凶事로 여겼다. 어린 시절 진외가 할머니가 병원에서 돌아가셨는데, 시신을 대문으로 들이지 못하고 담을 허물어 집 안으로 모셨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이 밖에서 돌아가시고, 밖에서 장례를 치른다. 대부분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신다. 나도 어머니를 요양병원에서 보내드렸다. 저자 서석화도 어머니를 거기에 모시게 되었다. 시인이자 작가로서 그리고 시 창작 강사로 활동하던 저자는 간호조무사가 되어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에 취업을 한다. 3년여를 근무하는 동안 많은 사람의 삶과 죽음을 목도한다. 그 중 50 분의 얘기를 책에 담았고, 나는 또 그 중 12 분의 얘기를 줄여서 여기에 옮긴다. 죽음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시인의 산문에는 반짝이는 표현이 구석구석 숨어있기 마련이다. 덕택에 어둡고 무거운 내용을 그런 대로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발행 2019 10 18 글 서석화 그림 이영철 발행처 메가스터디(주) 간호조무사가 된 시인이 1246일 동안 기록한 생의 마지막 풍경 #1 꼭 집으로 퇴원하세요 요양병원에는 ‘퇴원’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간혹 요양원으로 ‘전원’을 하는 경우는 있어도 완치되어 집으로 퇴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99%는 죽어서 영안실로 옮겨진다. 작가의 표현을 빌린다면 요양병원은 배차시간표가 없는 터미널이다. 이승의 마지막 정거장이자 저승으로 가는 정거장이기도 하다. 병국 씨는 서른다섯 살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반듯한 이목구비, 훤칠한 키, 희고 맑은 피부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훈남이었다. H대학병원에서 이송되어왔을 때 병동의 직원들이 모두 “어쩌나 어쩌나” 하고 한숨을 쉬었다. 교통사고였으나 외상은 없고 의식불명의 상태였다. 2년 있다가도 깨어날 수 있다는 대학병원 교수의 말에 희망을 걸고 형의 눈물겨운 간병이 이어진다. 저자는 간호조무사로 이 환자 앞에만 가면 버릇처럼 말한다. “병국 씨, 꼭 집으로 퇴원하세요.” #2 의식 없는 엄마라서 얼마나 다행인데요 “자꾸 이렇게 안 사 오셔도 돼요. 의식 없는 어머니 보시는 것만도 힘드실 텐데” “아니에요. 의식 없는 엄마라서 얼마나 다행인데요. 엄마가 정신을 놓아버려서 얼마나 고마운데요.” 김갑순 할머니의 딸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저자는 잘 안다. 저자는 무남독녀이고 대학 재학 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16년 앓으시고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쓰러졌을 때 올린 첫 기도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 제발 아무것도 모르게 해주세요.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앞으로 어떤 시간을 살게 될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해주세요. 눈을 뜨고 있어도 저를 못 알아보게 해 주세요. 딸을 알아보면, 여기가 어디며, 자신에게 닥친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우리 엄마 불쌍해서 안 돼요. 우리 엄마 괴로워서 못 산다고요.’ #3 저 사람의 애인입니다 강성규 환자(68세)가 병원에 처음 왔을 때 50대 후반의 여인이 따라왔다. 통통한 얼굴에 소녀 적 순수함이 남아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는 말했다. “저... 매일, 종일, 병원에 있어도 될까요? 취침 시간엔 돌아갈게요.” “환자와 관계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이전 병원 기록지의 보호자 성함이 아니라서요.” “보호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저 사람 옆에 있어야 합니다.” “보호자의 동의 없이는 곤란합니다.” “저는 저 사람의 ‘애인’입니다. 왜 안 되나요?” 환자는 전립선암이 방광과 척추까지 전이된 상태였다. 3개월 시한부였다. 아내는 15년 전 이혼하여 뉴질랜드로 이민했고, 두 딸은 엄마를 따라갔다. 곡절 끝에 간병인 자격으로 환자를 지키는 것이 허락되었다. 환자는 예상보다 6 개월을 더 살고 세상을 떠났다. 임종하던 날 김귀희 씨는 겨울인데도 시폰으로 된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예쁘다, 우리 귀희. 웨딩드레스 입은 것 같네?” “맞아요. 나 자기한테 시집가려고요.” 그녀의 시폰 원피스는 비처럼 쏟아지는 눈물로 젖어갔다. “울지 마. 나, 당신 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니...” #4 하느님, 죽을 수 있는 자유를 주세요 의식 없이 15 년째 누워있는 환자를 간밤에 응급처치로 살려놓고 보호자를 불렀다. 아내가 헐레벌레 왔다. 자신도 일주일에 두 번 신장 투석을 받아야 하는 77세의 할머니가 병실에 들어서며 소리를 질렀다. “왜 자꾸 살려놓냐고요. 이제 가겠다는데, 저 세상 가겠다는데, 저 웅덩이처럼 파인 욕창 하나 아물게 하지 못하면서 왜 수액이다 산소다 온갖 약을 달아놓냐고요!” 중학교 교감 재직 중 쓰러진 환자는 178cm 100kg의 거구였다. 150cm 근방의 왜소한 몸으로 집에서 남편을 몇 년 간 간병하느라 할머니의 몸은 한 군데도 성한 데가 없었다. 군데군데 욕창에서 나는 냄새와 참혹한 모습은 가족도 견디기 힘들었다. 죽어가는 짐승보다 더 초라한 모습이었다. “선생님들 아버지 같으면 저러고도 살아있으라 그러겠어요?  제발 저 산소 기계 좀 떼줘요. 주렁주렁 달려있는 약도 이제 그만 빼주세요.” 중학교 교사라는 아들이 곁에서 어머니를 거들었다. “어머니 말씀대로 해주세요. 이제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정말 이젠 가셔야 합니다.” 가톨릭 신자인 저자도 감히 하느님 앞에  무엄한 기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하느님, 죽을 수 있는 자유를 주세요.’ #5 오늘도 사람을 묶었습니다 “도저히 안 되겠어요. 이거 좀 보세요. 기저귀만 뜯으면 갈아주면 되지만, 뜯어서 손으로 변을 주물러 침대고 이불, 베개까지 엉망으로 다 묻혀 놨어요.” “게다가 오늘은 콧줄도 두 번이나 잡아당겨 빼버렸어요. 옆에 가기만 하면 발로 차서 기저귀도 갈 수가 없어요. 저도 벌써 두 번이나 차였어요.” 김재민. 나이 마흔아홉, 전기 설비 기사, 미혼, 간암 말기, 돌발성 인지장애... 잔여 수명 3개월. 입원 때 따라온 누나가 보호자 자격으로 환자 상태를 설명했다. “묶어야 할 거예요. 풀어놓으면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으니 대학병원에서도 그랬는걸요. 그리고 갈 때는 그냥 가게 두세요. 어차피 선고받은 아인데 더 이상 갈비뼈 하나라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결국 오늘도 저자는 발버둥치는 재민씨를 누르고 그의 팔다리를 묶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6 엄마, 지금 좀 죽어주라 “제발, 제발, 엄마, 좀 죽어주라. 그렇게 고생하며 산 것도 모자라 딸 죽는 것까지 보려고 해? 나 없으면 누가 바보 된 엄마하고 눈이라도 맞춰 줄 건데? 나 없으면 엄마 죽을 때 누가 울어주는데? 나 없으면 누가 엄마 송장 치워주는데?” 명혜 씨는 유방암 말기. 온 몸 구석구석에 암 세포가 자리를 틀었단다. 어머니는 10 년을 그 모습 그대로다. “나는 길어야 5 개월이라는데... 그 안에 우리 엄마 죽을 수 있을까요? 저보다 먼저 가야 해요. 절대로, 절대로, 그 순서가 잘못되면 안 돼요” 무남독녀 외딸 명혜 씨. 아들은 외할머니를 엄마의 삶을 망친 사람이라고 보지도 않으려 한다. 남보다 못하게 멀어져버린 남편은 ‘부모라면 저 정도 되면 죽어줄 줄도 알아야지.’라고 진저리를 쳤던 사람이다. “엄마, 제발 이렇게 빌게. 나 먼저 죽어! 지금 좀 죽어주라. 그럼 내가 엄마 있는 곳에 꽃 들고 한 번이라도 갈 수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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