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은 배알도 없는가 김영국  (Homepage) 2019-01-17(목) 08:46:31, 2201

베트남이 스즈키컵을 거머쥐고 열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거리로 나온 군중들이 들고 있는 플래카드에 박항서 감독에게 감사하는 한글이 많았다. 간혹 베트남 국기 옆에 우리 태극기를 그려놓고 ‘대한민국 감사합니다’라는 플래카드도 보였다. 한국 관광객에게 무료로 물건을 주는 상점도 있었고, 박항서의 고향 경남 산청이 베트남 관광객의 성지로 떠오른다는 소식도 있었다. 얼마 전 하노이에 갔다. 하노이의 랜드마크 구실을 하는 빌딩이 둘 있었다. 경남기업과 롯데의 건물이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고가도로가 건설되고 있었는데 포스코의 로고가 선명했다. 괜찮은 주거지역엔 어김없이 한국 회사가 지은 아파트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고, 거리엔 한국산 승용차가 줄을 이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한국의 회사명이 적힌 버스가 많은 것이었다. 출근 버스로 쓰던 것을 가져온 모양인데 일부러 한글을 지우지 않는단다.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인을 좋아하는 이유를 가이드는 몇 가지 들었다. 박항서 이전에도 제일 좋아하는 외국인이 한국인이었다고 한다. 한류를 첫 번째로 꼽았다. 아닌 게 아니라 TV를 켜니 오래된 우리 드라마가 여러 채널에서 방영되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의 기업들을 꼽았다. 특히 김우중은 영원한 그들의 은인이었다. 오늘의 한월 관계의 물꼬를 그분이 텄다고 평가했다. 끝으로 가이드는 라이 따이한을 거론했다. 우리 병사들이 버리고 온 후세들 수만 명과 그의 가족들은 민망하게도 한국을 아버지의 나라로 생각하고 있단다. 베트남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한국을 어찌 좋아할 수 있단 말인가. 남의 전쟁에 끼어들어 우리 국군이 그들에게 끼친 피해가 무릇 기하인가. 이를 테면 중부 빈딩성 한 마을에 세워진 ‘증오비’는 당시 베트남인의 한국군에 대한 감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비석 정면에 ‘미군의 꼭두각시 남조선 군대를 증오한다’라 새겨놓고 좌우 측면에는 426 명의 희생자 이름을 일일이 올려놓았다. 뿐인가. 복무 중 사귄 현지 여인과 태어난 자식을 팽개쳐버린 장병의 숫자는 무릇 기하인가. 현지 가이드 말로는 한국군이 두드러지게 무책임하다고 한다. 한국의 문인들이 그쪽 문인협회에 사죄단을 파견하겠다고 타진했으나 극구 사양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자기들만 정의로운 척 잘하는 패거리들이 꾸역꾸역 찾아갔던 모양이다. 감격할 줄 알았는데 반응이 영 시큰둥했다. 우리가 이긴 전쟁인데 뭐 그리 호들갑을 떠는지 갸우뚱해서 겸연쩍었다고 한다. 한 교수가 90년대 후반 베이징 대학에서 한 달 간 세미나에 참석했다. 거기에 하노이 대학 교수도 있었다. 낯이 어느 정도 익은 뒤에 한국을 미워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씨익 웃기만 했다. 한국군이 베트남 여자를 많이 건드리고 그래서 한국 사람을 닮은 애들도 많다던데 했더니 그가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우린 다 용서했어. 미워하는 건 힘든 일이야.” 거리에 다니는 베트남 청년들이 왜소해 보였다. 키도 작고 야위기도 해 볼품이 없었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마음씨가 선량하고 낙천적이어서 어찌 보면 좀 모자라 보인다고 했다. 그렇다고 얕보다간 큰코다친단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발딱 일어나고 똘똘 뭉쳐 대든다는 것이다. 그들이 누구인가. 중국과의 천년 전쟁 끝에 그들을 몰아내고, 천하의 프랑스와 미국을 손들게 한 나라가 베트남 아닌가. 지금도 중국과는 영해 문제를 두고 으르렁거리고 있다. 베트남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분쟁 중인 시사군도를 영해로 선포해버렸다. 게다가 중국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석유시추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영해를 침범하는 순간 육군이 중국 국경을 넘어가겠다고 으름장까지 놓았다. 트라우마를 가진 중국은 감히 어쩌지를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들이 한국을 좋아하는 것은 그들에게 배알이 없어서가 아니다. 왜소해서도 아니고, 모자라서도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우리보다 훨씬 크고 훨씬 깊고 훨씬 현명한 것이 아닐까. 배알을 부려서 반한 감정을 부추기고, 사과를 요구하고, 배상금을 청구하는 대신, 그들은 한국 기업을  불러들이고, 한국 관광객을 환대하고, 한국인을 축구 감독으로 영입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지금 전쟁의 흔적을 말끔히 지우고 희망과 자신감으로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우리와 같은 유교 국가였음에도 그들은 알량한 명분보다 국익을 취했다. 배알을 부릴 때와 국익을 챙길 때를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일본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대비된다. 돌 맞을 각오로 말한다면, 이제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 사과도 여러 번 받았고 청구권으로 고속도로도 만들고 공장도 짓지 않았는가. 그들에게서 배운 삼성전자와 포항제철이 오히려 그들을 넘어서지 않았는가. 그런데 민주화 이후 정부들은 한일 관계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어떤 대통령은 ‘버르장머리’ 운운하고, 또 어떤 대통령은 임기 말에 느닷없이 독도를 방문하여 지지도 만회를 시도했다. 위안부 욱일기 징용 등으로 끊임없이 갈등을 재생산하고 있다. 지금 정부는 아예 이참에 일본을 적국으로 만들 태세다. 종국엔 미군도 철수하게 할 심산인 것 같다. 중국과 북한은 저렇게 밀착하고 있는데, 그 두 나라를 머리에 이고 미국과 일본을 등진 채 어쩌자는 것인지. 우리네를 자기네의 속국이라고 공공연히 떠벌이는 중국에 기대려는 건가, 패륜아 김정은의 선의를 믿는 건가. 나라의 운명과 국민의 생명을 걸고 섣부른 도박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자못 불안하다. 현명한 나라는 강해지기 위해서 역사를 이용하고, 어리석은 나라는 분노하기 위해서 역사를 이용한다고 했다. 베트남과 대한민국 중 어느 쪽이 현명한가. 대일 외교만 두고 볼 때 민주화 이전 정부와 이후 정부 중 누가 바보인가. 언제까지 친일-반일의 프레임에 우리와 후손들을 가둬둘 작정인가.  독도를 지키고 구한말의 전철을 밟지 않는 길은, 질긴 배알에 있지 않고 강한 국력에 있음을 알 때도 되지 않았는가. 용일(用日)을 통한 극일(克日)이 우리와 후손들이 가야할 길이다. 지구상에서 일본을 얕보는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라고 한다. 칭찬이 아니다. 우리를 용서하고 우리를 이용하여 힘차게 비상하는 저 베트남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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