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화만사성-다시 생각해볼 말2 김영국  (Homepage) 2018-11-07(수) 10:36:00, 1896

한때 가훈 바람이 불었다. 반상회 의제로 하달되기도 했고, 표구점에서 가훈을 판매하기도 했다. 모든 캠페인에 학교가 동원되던 시절이었다. 우리 집 가훈 급조하랴 학급 애들 가훈 조사하랴 정신없었던 기억이 아련하다. 그때 가장 많았던 가훈이 단연 ‘가화만사성’이었다. 家和萬事成은 그야말로 국민 가훈이었다. ‘집안이 화목하면 만사가 이루어진다.’ 지당한 말씀이다. 가족의 따뜻한 전송을 받으며 출근하는 남편과 붉으락푸르락 집을 나선 남편의 직장 생활을 비교 상상해보라. 화기애애한 집안의 학생과 불화한 가정의 학생이 어떻게 다른지 수없이 보아오지 않았는가. 그리고 가정은 국가를 구성하는 가장 작으면서 가장 중요한 사회이다. 따라서 화목한 가정은 개인과 가정뿐이 아니라, 직장 나아가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 당연한 가르침을 긴 세월 동안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사용하여왔는지, 그리고 그 관행이 오늘까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정의 평화는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 했다. 그랬으면 가화가 이루어지기까지 많은 진통과 긴 시간이 필요했겠지만 그래도 진정한 가화에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가화를 만사성의 수단으로 삼으면서 가화는 강요되고 급조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가화는 겉으로만 조용한 가짜 가화일 수밖에 없었다. 집안의 어른이 목에 힘을 주고 “가화만사성인데, 쯧쯧‘ 하면 온 가족이 숨을 죽였을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그 어른은 얼마나 편했을까. 어떤 짓을 해도 아무도 찍소리 않으니 정말 만고 땡이었을 것이다. 도모한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책임질 필요가 없었다. 그 원인을 사소한 불화하나 끄집어내어 그것 때문이라고 해버리면 애먼 아랫사람이 죄를 뒤집어쓰고 전전긍긍하며 속죄했을 것이다. 집안의 가장 아랫사람은 여자였다. 여자 중에도 아내나 며느리였다. 그러니 모든 실패의 최종 귀책자는 항상 그들이었다. “사람이 잘 들어와야 집안이 일어나는 법인데...” 하며 담뱃대 꽝뙁 두드리면 그저 고분고분 살아온 며느리는 몸 둘 바를 몰랐을 것이다. 바람을 피우고 들어와도 노름에 가산을 탕진해도 가화를 위해 입도 벙긋할 수 없었다. ‘암탉이 울면.....’, ‘여자 목소리가 담을 넘으면......’, ‘벙어리 3년......’ 이 따위 말들은 모두 가짜 가화를 위한 세뇌용이었다. 그때 그 가훈 바람에 편승해서 가화만사성을 가훈으로 걸어놓은 집이 있을 것이다. 가훈까지는 아니더라도 그걸 가정교육이랍시고 강조하는 가부장이나 가모장(?)이 있을 것이다. 가화가 중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가화가 무엇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이 가르침은 상대배우자나 자식을 억압하는 수단이나 자기 책임을 다른 가족에게 전가하는 핑계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진정한 가화는 가족 구성원이 평등한 자격으로 소통하고 조율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법이다. 지금 우리 집의 가화는 진짜 가화인지 가짜 가화인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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