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의 흠결1 김영국  (Homepage) 2018-08-17(금) 13:47:19, 2053

위대한 일을 해낸 사람을 우리는 위인으로 섬긴다. 우리나라는 근현대사에서 온 국민의 존경을 받는 위인을 찾기 힘들다. 진영논리에 따라 각기 반대쪽 인물을 애써 폄훼해왔기 때문이다. 위인이라고 다 성인일 수는 없다. 현미경 들이대어 흠결을 찾아내면 앞 다투어 난도질하여 천하의 악인으로 만들어버린다. 이제 이런 자학의 굿판을 걷어치울 때가 되었다. 백퍼센트 유능하고 백퍼센트 착한 인간이 있을 수 있겠는가. 순결주의 절대주의 흑백논리가 갈 길 바쁜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조선조 500년 동안 주자학의 올가미에 갇혀 그렇게 곤욕을 치렀으면서도, 지금은 한 줌도 안 되는 이념의 틀에 스스로를 가두고 밤낮없이 다투고만 있다. 자기 잣대 하나만 들고 세상만사를 재단하며 게거품을 물고들 있다. 세상에 선과 악, 흑과 백, 영과 백만 있는 게 아니다. 독선과 위선의 탈을 벗고 더 넓고 더 멀리 보자. 티가 있어도 옥은 옥이듯, 흠결이 있어도 위대한 일을 한 사람은 위인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불평등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같은 맥락에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 열등하다고 믿었으며 노예제를 옹호했다. 민주주의는 우중(愚衆)의 정치로 타락할 수 있다며 귀족정치를 주창했다. 무거운 물체는 가벼운 물체보다 공중에서 빠른 속도로 떨어진다고 했다. 심지어 남자와 여자는 이[齒]의 숫자가 다르다고까지 했다. 1998년 저명한 현대철학자들을 대상으로 ‘서구 철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가 누구인지 물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단연 1위였다. 디오게네스 인간은 자유로워야 한다며 발가벗고 다니기도 했고, 음욕이 동하면 대낮에 아고라 광장에서 자위행위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하의 알렉산더대왕을 무색하게 한 자유인 디오게네스의 광휘 앞에 모두 고개를 숙인다. 만해 한용운 아들 보국씨가 아버지 한용운을 두 번 찾아간다. 독립선언 사건으로 감옥에 있을 때 찾아갔고 출감 후 선학원으로 찾아갔다. “이미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하고 단호히 돌려보내고 만나주지 않았다. 홍성 신간회 회원 손지학이 한용운을 찾아와 홍성에 내려와 강연을 해달라고 간곡하게 부탁을 한다. 출가한 사람이 고향을 이유로 내려간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거절했다. 그런데 만해는 손지학에게 편지를 쓴다. 백수로 빈둥거리는 아들을 신간회 지회 간사로 삼아 허드렛일이라도 시켜달라고 ‘청탁’했다. 그때 만해는 신간회 서울 지회장이었다. 아들은 취직이 되었고  지역사회의 지탄은 사라지고 신임을 얻었다. 그의 사가 심우장을 지을 때 총독부가 보기 싫어 집을 북향으로 앉힌 일화는 유명하다. 그런데 그 집을 지을 때 만해에겐 그럴 돈이 없었다. 조선일보 방응모 사장 등 돈 많은 지인들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지은 것이다. <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는 입만 열면 만해 칭찬에 침이 마를 지경이었다. “칠천 승려를 다 합해도 만해 한 사람을 당하지 못한다.” “만해 한 사람을 아는 것이 다른 사람 만 명을 아는 것보다 낫다.” 불교계, 문단, 독립운동사학계 등 어느 쪽에서도 이 흠결을 들추어 벽초의  평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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