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너그러워지는가 김영국  (Homepage) 2018-09-07(금) 16:45:45, 2052

공자는 예순에 귀가 순해졌다고 했다. 어떤 말도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니 그만큼 너그러워졌다는 것이다. 범인도 나이가 들면 너그러워질까. 나를 돌아보면 공자만큼이야 언감생심이지만 젊어서보다는 많이 너그러워진 것 같다.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는 일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업무가 없어졌고 대인관계가 단순해진 것을 감안하더라도 내가 옛날의 나 같지가 않다. 툭 하면 ‘어째 그럴 수가 있어?’ 하고 흥분하던 일도 ‘그럴 수도 안 있겠나.’ 생각하게 된다. 내가 갑자기 성인군자가 된 것도 아닐 테고 어떻게 이렇게 편안해졌지 생각해본다. 예능 프로에서 누가 좀 발칙한 얘기를 했다. 마흔에 혹하지 않게 된 것은 그 무렵부터 남성 호르몬이 급격히 감소하므로 자연히 이성에 홀리지 않게 되고, 쉰에 천명을 알게 된 것은 그 시대는 그 나이에 많이 죽었으므로 사람의 운명에 대해 자연히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순쯤 되면 눈과 귀가 많이 어두워져 서운할 일이 적어졌고, 일흔이면 법도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만한 체력이 아예 없었을 것이라고 해 웃음을 자아냈다. 공자에게는 무엄한 얘기지만 내가 별다른 수양 없이 너그러워진 까닭을 천착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해준다. 그러니까 내가 정신적으로 성숙해서가 아니라 육체적으로 노쇠해져서 자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는 얘기다. 화를 내어보니 젊을 때와 달리 힘이 많아 든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 버릇 안 고치면 내가 제 명에 못 죽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주위에 일어나는 일에 눈 감고 귀 막은 것이다. 그리고 굳이 애쓰지 않아도 나이가 드니 눈과 귀가 알아서 필터링을 해주었다. 나이 들어 시력과 청력이 떨어지는 것은 살아남기 위한 궁여지책인 셈이다. 기억력도 한 몫 해준다. 속상한 일이 있어도 웬만한 것은 금방 잊어버린다. 뒤끝 꽤나 있던 내가 툭툭 털고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가 때가 되면 자동으로 지워버리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실수의 경험이 쌓이고 부끄러운 일도 저지르게 되고 여러모로 내가 모자라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것이 남에게 거는 기대 수준을 낮추고, 남을 재단하는 잣대의 눈금을 느슨하게 해주는 것 같다. 옛날에는 고속도로의 지체 이유가 차량사고 때문인 걸 알게 되면 많이 흥분했다. 피해자에게만 보상할 게 아니라 길이 막혀 시간과 기름을 낭비한 간접 피해자에게도 보상해야 한다고 핏대를 세웠던 것이다. 그러다 내가 텅 빈 야밤의 고속도로에서 사고를  낸 뒤부터는 관대해질 수밖에 없었다. 불법정치자금이나 뇌물을 받은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에게 분노하다가 내가 촌지 받은 것을 떠올리고는 머쓱해한다. 그것이 거듭되니 그런 기사가 주는 자극이 옅어졌다. 매사 야무지지 못하다고 아버지와 아내한테 줄곧 책망을 들어온 터라 사소한 방심으로 대형 사고를 낸 사람에게 분노보다 동병상련의 감정을 가지게 된다. 나이가 들면 너그러워진다. 보통 사람의 경우, 그것은 마음을 닦은 결과라기보다 육신의 생존전략과 경험의 축적에 따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필연적이고 본능적이고 그래서 자연스런 현상이다. 따라서 범사에 관대해진 자신을 크게 뽐낼 일도 아니고, 그런 늙은이를 짜드라 존경의 눈으로 바라볼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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