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말과 백년대계 김영국  (Homepage) 2018-04-19(목) 11:33:25, 2273

나는 우리 대통령이 진중한 분이라고 생각했다.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하고 있을 때 있는 듯 없는 듯 처신했다. 비서실장의 전범을 보여주었다. 대통령 장례식 때도 다들 완장 차고 껍죽거릴 때 조용한 카리스마로 의식을 주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가벼운 입 때문에 구설에 오르기도 했으나 문대통령은 그런 일은 없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낚싯배 전복 사고가 있었을 때 나는 귀를 의심했다. 그걸 대통령이 나서서 전적으로 국가의 책임이라고 했다. 어째서 그게 국가의 책임인가. 그렇다면 국가가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앞으로 일어나는 안전사고는 다 국가가 책임질 것인가. 다음 날 청와대 회의에서 대통령을 비롯한 참석자가 묵념을 했다. 앞 정부와 다르다는 걸 보여주려는 의도는 짐작되지만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하는 행동인가 걱정했다. 아니나 다를까 제천 화재 등 사고가 잇달아 일어났으나 묵념했다는 생색 기사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대학입시가 도마에 올라 나라가 뒤숭숭했다. 적용 시기를 부랴부랴 일 년을 미루고 무슨 위원회를 만들었다. 그 출범식에 대통령이 인사말을 하면서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단순’과 ‘공정’이 그것이다. 대학입시를 손볼 때는 선발 기능과 교육 방향 제시 기능 두 가지를 고려하여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후자에 무게중심을 두지 않으면 안 된다. 대학입시 제도가 바뀌면 고등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저 유치원까지 교육의 방향을 거기에 맞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학입시는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를 기르는 방향으로 개편되어야 한다. 전 정부에서 수시를 늘리고 학종의 비중을 차츰 높여간 의도가 거기에 있었다. 수능의 비중을 줄이지 않으면 학생들은 종전대로 암기에 매달리게 되고 결국 기억의 양에 따라 수험생을 한 줄로 세우게 된다. 시대는 기억력이 아니라 창의력 문제해결력 각종 인성을 두루 갖춘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다 보니 입시가 복잡해지고, 정량이 아닌 정성으로 선발을 하게 되고 그래서 객관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 많은 부작용이 노출되었다. 시간이 흐르면 조금씩 제 자리를 잡아가게 되어 있다. 그런데 느닷없이 대통령이 ‘단순’과 ‘공정’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였다. 교육부 관계자나 위원회에 참가한 전문가들은 시속말로 멘붕이었을 것이다. 단순하고 투명한 입시제도를 요구하는 것은 결국 수능과 학교 내신 등 옛날의 정량 평가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교육의 패러다임이 서서히 변화하고 있는 터에 찬물을 끼얹어 버렸다. 저 피 끓는 학생들을 다시 책상 앞에 묶어놓고 쓰잘 데 없는 쓰레기 지식 암기하는 기계로 만들어버릴 심산이다. 매우 정략적인 판단이다. 다음 세대가 아닌 다음 선거를 의식한 것이다. 엔간히 무식하고 무모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짓이다. 결국 교욱부에서 단일안을 내놓지 못하고 선다형으로 내놓았다. 교육부 폐지론까지 나왔다. 그들이 무능해서도 무식해서도 아니다. 대통령이 갑자기 역주행을 하라고 하니 따를 수도 거역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터무니없는 요구에 따르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고, 거역하면 명령불복종 죄를 면할 수 없으니 일단 폭탄을 여론이나 저 위원회에 넘긴 것이다. 애먼 실무자만 좌천을 시켰다고 하던데 모든 책임은 그 두 마디 말을 인사말에 넣은 비서와 그것을 그대로 읽은 대통령에 있다. 얼마 전 교육차관이 갑자기 대학에 전화를 걸어 정시를 확대하라는 지시를 했다. 이건 역주행에 가속 페달을 밟은 것이다. 장관의 평소 뜻과 배치된다. 전후사정으로 미루어 보건대 청와대 비서진의 요구가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회의도 없이, 공문도 없이 차관이 부랴부랴 전화기를 돌린 것으로 보아, 아마 꽤 험악하게 다그친 모양이다. 운동권에서 운동만 하던 그들이 무엇을 알겠는가. 편향된 신념과 갈고닦은 전략만 가득 찬 그들을 누가 막으랴. 천하의 김상곤도 어이가 없는지 요즘 꿀 먹은 벙어리다. 국가 백년대계를 그들이 그렇게 주무르고 있다. 이 일을 보며 나라의 모든 정책이 그들에 의해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전 폐지, 공무원 증원, 최저 임금, 문재인 케어, 세금 퍼주기 남북 대화 등 어떤 것도 정상적인 관료라면 섣불리 내놓을 사안이 아니다. 시끌벅적한 청문회를 통과한 장관들이 다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다 그들의 아바타 노릇이나 하고 있나 보다. 돌아보면 최순실은 주위 두리번거리며 열매 몇 개 따먹다 걸린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내놓고 나무 둥치 나아가 뿌리까지 마음대로 손대고 있다. 그런데도 이들은 비서 신분이라 그 행태를 농단이라 할 수 없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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