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망 교육의 추억10-촌지 김영국  (Homepage) 2018-04-03(화) 17:44:25, 2263

교직 40 년을 돌아보아 가장 민망한 추억은 단연 촌지다. 촌지의 첫 경험은 담임 첫 해 가정방문 때였다. 그때 가정방문은 학년 초 학교의 큰 행사였다. 며칠 간 오전 수업만 하고 누가기록부를 들고 학생 한 명을 대동한 채 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가정방문 중에 해야 할 일은 학비 면제 대상과 육성회 임원을 가리는 것이었다. 영도에서 주로 면제자가 나오고 대신동에서 임원을 물색했다. 영도에서는 대개 계란 빵 탄산음료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안 먹고 나오면 학부모가 많이 서운해 했다. 그게 고역이었다. 대신동에는 외제 커피 과자 바나나 등이 나왔다. 내게는 다 낯선 것들이었다. 익숙한 것처럼 연기를 하며 조금만 먹는 게 힘들었다. 문제는 일어서 나올 때 일어났다. 뒤따라 나오던 어머니가 불쑥 봉투를 주머니에 찔러주는 것이었다. 당황한 내게 입을 가리는 시늉을 하며 내 등을 밀었다. 다음 집을 안내하기 위해 따라 나오던 학생이 볼 때도 있었다. 그는 태연했다. 선배 선생님한테 어떻게 처신해야 좋을지 물었다. 조용히 받으라고 했다. 거기서 실랑이를 하면 모양이 더 이상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따라 해보니 미상불 훨씬 자연스러웠다. 고맙다는 뜻의 목례까지 하게 될 즈음 나는 고등학교로 갔고 거기는 가정방문이 없었다. 가정방문 말고도 촌지의 통로는 있었다. 학부모 총회가 그 마당을 제공했다. 강당에서 회의를 마치고 나면 담임 면담이 각 교실에서 이루어졌다. 뜻있는(?) 학부모는 교실에서 담임을 기다렸다. 의례적인 대화를 하고 일어서면서 상호간 면구스런 장면이 연출되었다. 핸드백의 봉투를 만지작거리다가 잽싸게 서랍 속이나 장부 밑에다가 밀어 넣는 것이었다. 아주 자연스러운 사람도 있고, 쩔쩔 매는 사람도 있고, 당당하게 잡지(샘터 등)를 내놓으며 읽어보라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문화를 몰라 미처 준비하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학부모도 더러 있었다. 상담 명목으로 개인적으로 교무실로 찾아와 촌지를 주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 조용히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을 본 옆 자리 선생님이 편안하게 받으라고 조언했다. 만약 끝까지 거부하거나 학생을 통해 돌려보내면 그 학부모는 물론이고 학생마저 서먹서먹 멀어진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보답 내지 보상을 할 길이 막막했다. 전화로 답례를 할 수도 없고 학생을 따로 불러 격려를 하는 것도 낯간지러운 일이었다. 일주일에 수업 3~4회 들어가고 조종례하는 것이 전부인데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술자리에서 이 문제를 꺼냈더니 선배 선생님들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냥 잊어버리고 사는 길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상한 이론으로 촌지 문화를 설명했다. 씻김굿을 할 때 굿을 의뢰한 사람이 노잣돈, 밥값, 옷값 등의 명목으로 굿판에 돈을 놓는 행위와 촌지를 연결지었다. 그 돈을 놓으면서 가족들은 마음의 짐을 벗고 무당은 신바람을 더 낸다는 것이었다. 그런 얘기를 듣고 동료 선생님들의 처신을 곁눈질하면서 나도 시나브로 그 문화에 젖어들었다. 처음엔 2,3만원 수준이다가 5만원으로 인상되더니 10만원까지 올라갔다. 그 돈은 두 갈래로 쓰였다. 대부분 아내한테 상납했다. 외벌이로 애 넷을 키우는 아내에게 뜻밖의 봉투가 가뭄 끝의 단비처럼 반가웠을 것이다. 공무원의 아내로서 내놓고 기뻐할 수 없었겠지만 행복해하는 표정은 감추지 못했다. 촌지의 또 하나의 용처는 내 비자금이었다. 그게 없었다면 아마 나의 사교생활은 훨씬 더 위축되고 팍팍했을 것이다. 워낙 소심하고 숫기 없던 내게 그 작은 숨구멍마저 없었다면 동료들과의 술자리도 취미 생활도 넘보지 못한 채 은둔 외톨이가 되어 그 젊은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 시절의 촌지는 내게 고마운 옹달샘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샘의 물이 마냥 시원하지는 않았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촌지를 주고받는 광경을 학생이 볼 때도 있었고, 보지 않았다 해도 집에서 부모의 대화를 엿듣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선생님이 목에 힘을 주고 수업을 하고 훈화를 했다. 학생은 무슨 생각을 하며 내 얼굴을 보고 내 얘기를 들었을까. 형벌불소급의 원칙이 고맙다. 김영란법으로 그때의 행위를 재단한다면 .........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저 미투 운동이 촌지 더미로 옮겨 붙으면 ......... 아, 참으로 민망한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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