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의사 김영국  (Homepage) 2017-01-18(수) 07:22:35, 3116

화불단행이라 했던가. 늘그막의 병마는 넝쿨처럼 밀려온다고 했던가. 구완와사 치료 중에 간염이 들이닥쳤다. 2월 말쯤에 실시한 건강검진에서 멀쩡했는데 6월 말쯤에 소변색이 좀 이상해서 검사를 받았더니 빨리 인근 응급실로 가라는 연락이 왔다. 간 수치가 2000을 넘어섰다고 했다. 침과 병행한 6 개월간의 한약을 의심했다. 며칠을 지켜본 주치의가 간 이식을 준비하라고 했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길 수 있으니 자제분들 미리 와서 1차 검사를 받으라고 재촉했다. 어이가 없었다. 이렇게 멀쩡한데 간 이식이라니. 나는 코웃음을 쳤다. 이식 센터 만들어놓고 건수 올리려고 애쓰는구먼. 그리고 자식들 몸에 칼 대어 가며 더 살 생각이 없었다. 입원실의 환우들이 다 서울로 가보라고 했다. 서울과 부산의 의술은 적어도 10 년 이상은 차이가 난다고 구체적 경험담을 들려주며 등을 떠밀었다. 간은 A병원이라고 해서 예약을 부탁했더니 외과에 예약이 되었다. 외과의사에게 수술보다는 내과 치료를 받겠다고 했더니 내과로 보내주었다. 그날 진료 일정이 느슨한 의사를 찾다 보니 막내의사에게 배당이 되었다. 이식 안 할 거면 다시 내과로 예약하고 며칠 기다리라면 어쩌나 걱정하던 차라 무조건 고마웠다. 찾아간 A과장은 4~50대쯤으로 짐작되는 여의사였다. 미인인데다 인상도 좋았다. 발병 경위를 설명하고 수술할 생각이 없어 내과를 찾아왔다고 내 뜻을 밝혔다. 내 얼굴에 담긴 긴장과 간절함을 읽었는지 느닷없이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알겠습니다. 한 달 내지 두 달이 걸릴 수도 있는 장기전이 되겠네요. 지금은 상급실밖에 없으니 응급실로 일단 가 계십시오,” 진료실을 나서는 나의 눈에 눈물이 괴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내가 천사를 만났구나. 이런 병원에 저렇게 따뜻한 의사가 있다니. 내내 걱정했던 것이, 수술을 거부하는 달리 말하면 돈도 안 되는 환자를 장기간 치료해줄 것인가였는데 기다렸다는 듯 선선히 받아주다니. 건성 건성 또는 까칠 까칠 차가운 카리스마 의사들만 모여있는 병원인 줄 알았는데 저런 천사 같은 의사가 있고 또 그분이 나를 맡아주다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입원 중에도 한결같았다. 오전에 회진을 오면 먼저 내 손을 감싸 쥐고 눈을 맞추었다. 새벽마다 몇 대롱씩 뽑아간 혈액검사 결과를 보고 왔으련만 거기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었다.  잘 주무셨어요. 식사는 많이 하셨어요. 운동 많이 하셔요. 그런 말만 반복했다. 걱정하는 아내 손도 잡아주며 느긋이 기다려보자고 다독여주었다. 남편의 손을 덥석 덥석 잡는 미모의 젊은 여인, 그 여인을 매일 간절히 기다리는 남편을 아내는 질투하지 않았다.^^ 토요일이 되면 이틀간 보지 못한다는 것이 내내 안타깝기도 했다. 휴일인데도 내게 무슨 이상이 있으면 득달같이 나타나 살펴보고 안심시켜주었다. 레지던트는 매일 아침 찾아와 수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위급상황을 대비해 자제분들이 일차 검사를 받아두어야 한다고 부산의 의사와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절대 안 하겠다고 말하면 혹시 조기 퇴원을 시킬까봐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미루었다. 애들도 검사를 받겠다고 야단이었다. 레지던트와 애들이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 그런데 천사 의사는 수술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어쩌다 혈액검사 결과를 물으면 그냥 웃으며 괜찮다고, 수치의 등락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식사 많이 하고 운동 꾸준히 하며 기다려보자고만 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검사를 하고 약병은 거치대에 번갈아 달렸다. 문제의 핵심은 황달인 모양이었다. 그 수치는 인위적으로 어떻게 할 수 없어 기다려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간이 자력으로 회생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의사만 믿기로 했다. 수치가 어찌 되는지 이 검사는 왜 하는지 검사 결과가 어떤지 묻지 않았다. 약을 달면서 간호원이 설명해주어 대강 짐작할 뿐이었다. 병원의 앱을 스마트폰에 깔아간 아들은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자기들끼리 돌려보고 엄마에게도 간간히 알려주는 모양이었다. 아내도 일일이 내게 설명하지 않았다. 나는 아내와 의사의 표정을 살피며 무관심한 척했다. 그리고 실제로 조금씩 덤덤해지기도 했다. 의사분이 저렇게 애쓰는데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하는 심정이 되어갔다. 예약을 대신해준 큰사돈이 면회 와서 의사를 바꾸어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일언지하에 사양했다. 천사 의사에게 내 운명을 맡기기로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회진을 마친 의사가 아내를 바깥으로 데리고 나갔다. 아무래도 수술 준비를 해야겠다고 종용한 모양이다. 아내와 터놓고 다시 의논을 했다. 아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남편을 위하자니 자식이 걱정되고, 자식을 생각하니 남편이 죽게 생겼고. 간 이식 환자를 위한 사전 교육을 받아보기로 했다. 걱정할 것 전혀 없다 안심하고 수술 받으라는 내용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는데 반대였다. 전체적으로는 위험하지 않다는 것이었는데 일어날 수 있는 갖가지 부작용을 열거하고 있었다. 수술 후에 환자가 겪어야 할 일들도 끔찍했지만, 공여자도 만만치 않았다. 애들은 흉터가 매우 작고 팬티 아래라고 했는데 그들이 나를 속인 것이었다. 교육장을 나오며 아내에게 나의 최종 결심을 밝혔다. 아내도 공감하는 것 같았다. 둘이 손을 잡고 맹세했다. 애들이 어떻게 다그쳐도 절대로 흔들리지 말자고, 그리고 의사에게도 최종 결심을 밝히자고. 그렇게 굳히고 나니 나는 오히려 마음이 더 편안해졌다. 아내는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회진 온 의사에게 내 뜻을 밝혔다. 내 자식이지만 이제 그들은 엄마 아빠이고, 아내이고 남편이다. 그리고 남의 집 며느리고 사위다. 내 몇 년 더 살겠다고 그들을 수술대에 눕힐 생각이 전혀 없다. 선생님에게 내 모든 걸 이미 맡겼다. 만약 안 되면 내 운명이 거기까지라 생각하고 기꺼운 마음으로 부산으로 내려가겠다. 평소에 지은 복도 없는데 선생님을 만난 것만도 내게 과복이다. 밤새 생각한 대사를 줄줄이 읊었더니 의외로 그 표정 그대로 들어주고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뇌사자의 간을 기다려보자고 했다. 2년 3년을 가다렸는데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절망하는 환자를 여럿 보았는데 그저 나를 달래는 말일 터였다. 나를 대하는 태도에 변함이 없었다. 검사도 계속되고 약물 투여도 그대로였다. 운동한답시고 공원을 걸으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가워졌다. 그만큼 황달이 심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산책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천사 의사를 만난 적이 세 번 있었다. 세 번 다 내가 발견한 것이 아니고 그분이 먼저 보고 다가온 것이다. 환자가 다가가 인사를 해도 짜드라 반가워하지 않을 상황인데 세 번 다 환하게 웃으며 운동하고 오냐고, 잘한다고 알은체를 해주었다. 자기의 간곡한 수술 권유를 뿌리치고 스스로 저승의 문턱으로 나아가고 있는 벽창호 환자에게 그분은 그렇게 관심과 사랑을 거두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세 번째 만난 직후 간호원이 바쁘게 오더니 점심부터 금식이라고 통보했다. 점심으로 호박죽을 사 온 아내도 어리둥절했다. 어쩌면 오늘 수술할 수 있다고 했다. 의사는 아내를 불러 너무 기대하지 말라고 만약 안 되면 다음 기회가 또 있지 않겠냐고 하더란다. 불난 호떡집처럼 병실이 부산해졌다. 각종 검사를 잇달아 받고 약을 바꾸어 달고 장을 세척하고 샤워를 했다. 제모 작업을 할 때 비로소 실감이 났다. 사실 나는 뇌사자의 기증을 기대하지도 않았고, 또 바라지도 않았다. 수술 받고 난 뒤의 삶이 삶 같지 않았고, 또 비용도 마음에 걸렸다.(사실은 생체 이식보다 비용이 적었다. 공여자의 치료비가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개인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너무 바쁘게 진행되었다. 입원한 지 채 한 달도 되기 전인 8월 8일 저녁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수술실로 실려 갔다. 눈을 뜨니 다음 날 격리실이었다. 면회 시간에 아내와 둘째가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인터폰을 통해 모든 게 잘 되었다고 엄지 척 들어 올리며 기뻐했다. 격리실에서 무균실로 그리고 일반 일인실로 옮겨졌다. 그 동안 그 의사분은 볼 수가 없었다. 그분은 내과이기 때문에 퇴원 때까지 만날 일은 없다고 했다. 돌이켜보니 지난 며칠간이 꿈만 같았다. 내게 일어난 일을 두고 내과 환우들과 가족들이 의아해 했다고 한다. 뇌사자 간 이식 차례가 ‘위급 정도’에 따르지 않고, 간수치, 황달수치 등 네 가지 수치를 합산하여 줄을 세우게 규정이 얼마 전 변경된 것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내 주치의는 내 몸 상태를 언제든지 이식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점수가 나보다 높은 O형 환자 한 분이 있었으나 그분은 체력이 수술을 감당할 수 없어서 내게 기회가 왔다고 했다. 입버릇처럼 많이 먹어라 운동 열심히 하라고 강조한 것도 그 일환임을 알 수 있었다. 퇴원을 앞두고 선생님 진료실을 찾아갔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주책없이 눈물만 났다. 반가이 손을 잡으며 그 동안 내 상황을 차트를 통해 보고 있었다고 했다. 외래로 병원에 오면 언제든지 오라고 했으나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전처럼 조우할 수 있을까 하여 그 엘리베이터 앞을 서성거려보기도 했다. 설사 이식의 기회가 없었다 하더라도 내 생의 끝자락에 그 따뜻한 의사를 만난 것을 추억하며 보다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분을 떠올리며 나는 과연 교직 생활 중에 얼마나 따뜻했고, 그래서 몇 명의 제자들에게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을까 하고 되돌아보기도 한다.

로그인을 하셔야 코멘트(덧글)을 쓰실 수 있습니다.

이전글 :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의 이야기-나누고 싶은 글20
다음글 :	GRIT 그릿-이 책2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