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자화상-우포늪 왁새 김민서  (Homepage) 2010-01-21(목) 08:43:43, 9178

많은 화가들이 자화상을 그리고 소설가들도 자전적 소설을 씁니다. 시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윤동주, 서정주, 유안진의 자화상이란 제목의 시는 널리 알려져 있죠. 언젠가 어느 문예지에서인가 시인들이 시로 쓴 자화상이라는 기획특집을 마련한 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시는 시인의 내면을 투영하고 있는 자화상 아닌 것이 없을 것이지만 저는 오늘 한편의 시를 외우면서 이 시야 말로 시인의 자화상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배한봉 시인의 '우포늪 왁새'라는 시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는 우포늪 지킴이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우포늪에 들어가 살면서 그 원시의 자연과 습지에 대한 경외감과 생명에 관한 시들을 묶어 한 권의 시집을 펴냈지요. 그 표제작이 바로 '우포늪 왁새'입니다 전문을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 득음은 못하고, 그저 시골장이나 떠돌던 소리꾼이 있었다, 신명 한 가락에 막걸리 한 사발이면 그만이던 흰 두루마기의 그 사내 꿈속에서도 폭포 물줄기로 내리치는 한 대목 절창을 찾아 떠돌더니 오늘은, 왁새＊ 울음 되어 우항산 솔밭을 다 적시고 우포늪 둔치, 그 눈부신 봄빛 위에 자운영 꽃불 질러 놓는다 살아서는 근본마저 알 길 없던 홀홀단신 텁텁한 얼굴에 달빛 같은 슬픔이 엉켜 수염을 흔들곤 했다 늙은 고수라도 만나면 어깨 들썩 산 하나를 흔들었다 필생동안 그가 찾아 헤맸던 소리가 적막한 늪 뒷산 솔바람 맑은 가락 속에 있었던가 소목 장재 토평마을 양파들이 시퍼런 물살 몰아칠 때 일제히 깃을 치며 동편제 넘어가는 저 왁새들 완창 한 판 잘 끝냈다고 하늘 선회하는 그 소리꾼 영혼의 심연이 우포늪 꽃잔치를 자지러지도록 무르익힌다 ********* 득음은 못하고 시골장터나 떠돌며 막걸리 한사발로 목이나 축이면서도 평생 폭포 물줄기로 내리치는 소리를 찾아 헤매던 소리꾼은 간절히 시와 문학을 찾아 분투하던 시인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이제 그는 그 아름다운 우포늪에 날개를 접고 솔바람 맑은 가락 속에서 찾아낸 소리로 한바탕 완창을 끝냅니다. 그 목소리는 맑지도 높지도 구슬프지도 않은 바로 판소리 동편제의 질팍하고 거친 듯 장쾌한, 그리고 바로 우리네 시골 촌부의 목소리인 것입니다. 그의 삶의 행보와 문학은 따로 떨어져있지 않습니다. 우포늪에서 나와 지금은 창원에서 감나무 농사를 짓고 계시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한 행사에서 선생님을 직접 뵈었습니다. 그 분 강연 중에 우포늪 시인이라는 이름이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나는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내 살아가는 이야기를 시로 쓸 뿐이다.'란 말씀이 기억납니다. 그래서 그 분의 시에서는 사물에 대한 깊은 통찰과 빛나는 사유가 느껴집니다. 막걸리 한잔 나누면 참 따뜻한 분일 거란 생각도 듭니다. 이 시는 김학주 선배님께서 자진모리 장단의 국악풍으로 시노래를 만들어 들려주셔서 알게 되었습니다. 빠른 시일 안에 노래를 발표하시어 두루 들려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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