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나무보다 행복하십니까? 정일근  (Homepage) 2013-03-08(금) 05:44:45, 3700

제주 비자림(榧子林)에 와서 스콧 니어링(1883-1983)의 삶에 동감합니다. 급진주의자였던 스콧 니어링은 45세에 뉴욕을 떠나 숲으로 돌아가 은둔하며 살았습니다. 숲 속에서 그는 평생 채식을 하며 살았으며 100세가 되는 해에 스스로 곡기를 끊고 지극히 평화로운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문명을 거부하며 자연에 은둔했던 스콧 니어링은 실천적 자연주의자로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그는 숲으로 돌아가 자연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비밀이지만 그 비밀의 문을 열고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용기 있는 사람의 몫입니다. 비자림에 와서 나는 또 한 권의 좋은 책을 생각합니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가 쓴 <오래된 미래>입니다. 그녀는 오래된 것들에서 우리들의 미래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나는 비자림 에서 그녀와 같은 답을 얻습니다. 숲은 우리가 돌아갈 미래입니다. 비자림을 거닐며 나는 몇 시간만이라도 자연이 되고 나무가 되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었습니다. 또한 그런 푸른 즐거움으로 북제주군 구좌읍 평대리에 있는 14만여 평의 비자림에 섰습니다. 수령이 500∼800년이 된 비자나무가 2천5백70 그루가 밀집해서 숲을 이루고 있는데, 단순림으로는 세계 최대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비자나무들의 높이는 7∼14m, 지름은 50∼110cm가 되며 수관 폭은 10∼15m나 되는데 곧게 자란 비자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그렇게 장엄할 수가 없습니다. 비자림은 제주의 숨어 있는 아름다움입니다. 발품을 파는 부지런한 사람들만이 찾을 수 있는 '비밀의 화원' 같은 곳입니다. 나는 비자림이 제주와 똑같은 무게와 한라산과 똑같은 높이를 가진 숲이라 생각합니다. 비자림에 와서 숲 속을 거닐어 본 사람은 누구나 나의 비유에 동의할 것입니다. 사실 제주 관광이 통속적이 되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요란하고 화려한 곳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몰려오는 것이 제주 관광이 되어 버렸습니다. 울산공항을 떠날 때 유난히 많은 골프채가 비행기에 실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토록 무거운 짐을 들고 떠나는 것은 여행이 아닙니다. 여행은 내 속의 나를 찾아가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건 들끓는 시간의 길이 아니라 고요하게 가라앉는 길의 시간입니다. 제주에 그런 시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길이 많습니다. 오름들 사이로 달리는 중산간 도로들, 해안선을 따라 가는 해안도로들, 물이 빠지면 들어 나는 해변 화산암 사이의 작은 길들, 그 길들은 보면 그냥 걷고 싶어지는 길입니다. 비자림을 찾아가는 길도 그런 길입니다. 제주시 봉개동에서부터 비자림까지 가는 길이 지방도 1112호인데 몇 해전 그 당시 건설교통부가 정한 제1회 '아름다운 도로'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비자림 안에도 아름다운 길이 있습니다. 약 1.8km의 친환경적인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비자림 산책로는 화산 현무암의 붉은 가루(송이)로 꾸며져 숲 속의 붉은 길을 보면 마음 참 설레는 길입니다. 비자림 속의 길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가야 하는 길입니다. 나무가 품어주는 피톤치드를 가슴 깊숙이 호흡하고 비자나무와 더불어 숲을 이루는 친구들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비자림에는 나도풍란, 콩짜개난, 흑난초, 비자란 등 희귀한 난과 식물이 자생하고 있으며, 산딸나무, 천선과나무, 자귀나무, 아왜나무, 머귀나무, 후박나무 등 다른 나무들도 사이좋게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시림의 매력이 듬뿍 넘쳐나는 귀한 숲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비자림 붉은 길이 끝나는 곳에 그 숲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최고령 비자나무가 서있습니다. 어이쿠! 수령이 8백17년이나 된다고 합니다. 키는 14m나 되고 가슴둘레는 6m나 됩니다. 그 나무 곁에 서니 시를 쓰고 시를 가르치는 마흔 후반의 내 나이가 덧없습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신생할 수 없지만 고령의 비자나무는 자신의 몸에 어린 가지와 연초록 새잎을 피우며 숲의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이 나무가 되기 위해서 '나-무(無)'가 되어야 합니다. 나를 버리지 않고서 자연의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나는 가슴에 단 허울 좋은 이름표들을 떼어버리고 돌아갈 비행기표와 신용카드, 주민등록증이며 주머니 속에 든 모든 것들을 버리고 맨몸으로 비자나무 곁에 서봅니다.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비자나무보다 행복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모만호		제주 비자림 참 좋은 곳이지요. 비자나무(작은잎이 한자의 "아닐 비(非)"자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옛날에는 열매를 구충제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우리에게 아주 소중한 나무지요.	2013-03-08 18:3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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