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추도에서 정일근  (Homepage) 2013-01-05(토) 08:26:27, 4278

▶ 추도의 1월, 바다메기들이 빨래처럼 널린다. 추운 겨울날 문득 술 생각이 날 때가 있습니다. 눈이라도 무장무장 오는 날이면 그대도 술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눈 내리는 날에 술처럼 좋은 친구가 없지요. 그런 밤을 보낸 아침, 당연히 뜨거운 술국도 그리울 것입니다. 남쪽 바다가 고향이기에 나는 일찍 술국의 맛을 알았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애주가셨지요. 할아버지 술 드신 아침, 손맛 좋으신 어머니가 끓여 올리던 술국에 대구국도 있었고 바다메기국도 있었지요. 뜨거운 술국을 드시면서도 연신 시원하다고 하셨던 할아버지의 그 맛을 나도 술을 배우고 부터 알았습니다. 이 땅의 술꾼이라면 어찌 생선 술국의 깊고 시원한 맛을 모르겠습니까. 그 술국들이 지금 한참 맛있을 때입니다. 귀했던 '가덕 대구'가 요즘은 풍성하게 잡히고, 남쪽바다 어디에든 바다메기도 많이 잡힙니다. 통영시 산양읍 '추도'로 떠납니다. 통영바다에 떠있는 그 섬에 지금 바다메기가 제철입니다. 바다메기는 날이 추워지면 먼바다에서 돌아와 추도 근해에서 산란을 합니다. 추도 사람들은 바다메기를 잡아와 명태나 오징어처럼 말립니다. 그래서 겨울 한 철 추도에서는 바다메기 덕장이 만들어지고 빨래처럼 널립니다.   진해, 마산, 고성, 통영, 사천, 남해…남쪽바다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겨울철이면 바다메기로 즐겨 국을 끓여 먹지요. 바다메기를 적당히 토막내어 넣고, 무와 파를 듬성듬성 썰어 넣고, 굵은 소금으로 간을 하지요. 요리법은 평범해도 겨울 추위에 꽁꽁 언 오장육부를 단숨에, 이처럼 시원하게 녹이는 국은 없지요.   추도 사람들은 그 바다메기들을 정성스럽게 말립니다. 건어물로 만들어지는 바다메기가 바로 '추도 메기'입니다. 통영 인근에서는 그 '추도 메기'를 최고로 치지요. 같은 바다에서 잡히는 바다메기지만 추도에서 말려져야 최고가 되는 이유는 팔할이 추도 아낙들의 부지런한 정성 때문이지요. 추도 사내들은 아침 7시쯤 바다로 나갔다 오후 2시쯤 추도항으로 돌아옵니다. 사재들이 잡아 온 그 바다메기들을 추도 아낙들은 배를 따고, 맑은 물로 깨끗이 씻어 소금기를 빼고, 널어서 말리고, 말려서 편편하게 만들고, 그 다음에 10마리씩 한 축으로 포장을 해서 통영의 건어물 상회로 보냅니다. 바다메기가 추도 메기가 될 때까지는 7∼10일 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바다메기들이 추도 근해로 돌아오는 음력 시월부터 섣달까지, 한 해의 가장 추운 계절에 추도 아낙들의 바쁘고 정성스러운 손길로 추도 메기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통영사람들은 설날 전에 추도 메기를 장만해놓습니다. 설날에는 쪄서 찜으로 만들어 먹기고 하고, 겨울 내내 장독 안에 보관해서 손님이 오면 오징어처럼 굽거나 그냥 찢어서 술안주로 내놓습니다. 바다메기의 정확한 학명은 '꼼치'라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꼼치는 쏨뱅이목 꼼치과의 바닷물고기이랍니다. 정약전 선생의 <자산어보>에도 바다메기가 나옵니다. 선생은 '해점어'라 이름했는데 '고깃살은 매우 연하다. 뼈도 무르다. 맛은 싱겁고 곧잘 술병을 고친다'고 소개해놓았습니다. 곧잘 술병을 고친다는 소개에 즐거운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바다메기는 아주 오래 전부터 술꾼들의 친구였던 것이었습니다. 추도에 바다메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수령 5백년의, 우리 나라에서 몸이 가장 굵은 후박나무(천연기념물 345호)와 동백나무가 있습니다. 미조마을과 대항(한목)마을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바닷길도 있고, 푸른 바다와 아름다운 섬, 그 섬에 사는 착한 사람들 있어 따뜻한 인심으로 나그네를 반깁니다. 추도를 떠나며 튼실한 추도 메기 한 축을 샀습니다. 돌아가면 그놈들을 안주로 좋은 친구들과 함께 술 한 잔 할 것입니다. 그 날은 눈이 펑펑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로그인을 하셔야 코멘트(덧글)을 쓰실 수 있습니다.

이전글 :	문을 열면 봄이 오고 있습니다.
다음글 :	12월의 묵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