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가뭄에 단비(완성^^) 김동희  (Homepage) 2006-10-21(토) 11:54:47, 14625

외부상황과 자기 마음과는 어떤 함수관계가 있을까?  어느 것이 독립변인이고 어느 것이 종속변인일까? 딱 뭐라 말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부처나 예수처럼 수심이 깊은 사람은 자기 마음이 독립변인일테고(그 마음은 평온함, 빔 자체였다고 합니다), 전혀 수심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은 외부상황이 독립변인이겠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가운데 어느어느 지점에서 상황대로 마음이 변했다가, 그 마음대로 상황을 보고... 이러쿵 저러쿵 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학급담임 4년차, 어느 한 해 기쁨만 가득한 경우는 없었지만, 올해는 유독 힘들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무엇을 배우겠다는 마음가짐이 부족한 아이들, 자유분방하게 놀고 싶은 욕구 가득한 아이들에게, 강제로라도 학생다운 행동을 요구했어야 했나 싶습니다. 몇몇 아이들의 특별한 집안사정, 아이마음 수용하다보니, 그 행동이 다른 아이들에게도 전염되어 학급전체분위기가 어수선하고 산만합니다. 공부하는 쪽으로 조성되는 것이 아니고 노는 쪽으로 조성되고 있으며, 교실도 여기저기 휴지도 많이 떨어져있고, 각자 맡은 구역 청소도 안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이 아이들의 핵심에 있는 아이 몇몇은 시선이 공격적이고, 말도 함부로 하며, 제 제안에도 사사건건 따지고 듭니다. 자라온 배경을 생각하면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마주대할 때 긴장이 됩니다. 이 아이들 학교수업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학생이라면 지켜야될 규칙을 지키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고등학교는 졸업시켜야겠다는 마음이 있어 보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자니 학급전체에 똑같이 적용해야될 규칙이 이 아이들로 인해 흐지부지되는 경우도 생기도, 공부하고자 하는 아이들 마음도 어수선하게 만들고 있으니,, 이것을 지켜보는 제 마음이 심란하고, 때론 속상하고 괴롭습니다. 제 마음상태가 그렇다보니,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여유롭지 못할 때가 잦고, 좋은 모습보다는 안좋은 모습에 눈이 많이 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런 와중에 제 마음을 훈훈하게 한 일이 있어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저께 N과 B가 몸살로 조퇴하면 안되겠냐고 내려왔습니다. 한 번도 지각, 조퇴, 결석이 없는 아이들이었어요. 몇몇이 조퇴한 상황에서 또 조퇴하려니 미안한지, 말을 제대로 못하고 쭈뼛쭈뼛하고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같이 따라온 C가 틱틱 내뱉는 말투로 "선생님, 이 애들 조퇴시켜주세요!"라고 제게 말했습니다. 버릇없는 말투도 거슬리고, 담임이 결정할 일을 아무리 친한 친구이지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언짢아서 화를 내었습니다. 한바탕 꾸짖고 C는 교무실에서 내보내고, N과 B에게 많이 아프냐고 물으니, 대답을 못합니다. 결국 그냥 참아볼께요 하고 올라갔습니다. 어제 N과 B가 다시 내려왔습니다. 얼굴을 보니 몸살기운이 심해진 듯 합니다. 그래서 5교시 시작전 조퇴를 허락해주었습니다. 그런데 5교시 마치고 교실올라가니 아직 안가고 있습니다. C가 청소는 같이 하자고 해서 5교시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7교시는 특활(적응활동) 시간이니 6교시만 더 하고 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조퇴 처리는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6교시마치고 아픈 N과 B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7교시마치고 뒷정리하고 퇴근하는데 N이 학교 진입로를 따라 본관으로 걸어오다가 나와 마주치자 놀라서 어쩔 줄 모릅니다. 곧장 집에 가지 않고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랬다는 것은 그만큼 아프지 않았다는 증거가 된 셈이지요. 아픈데 어서 집에 가라고 하고, 교문을 나왔습니다. 집에 오니 삐삐 음성메시지가 연속해서 3통이 옵니다. "선생님, 저 N이예요. 오늘... (끊김)" "선생님, 저 N이예요. 오늘 저 때문에.. 많이.. 실망하셨죠? 그런데 선생님... (끊김)" "선생님, 저 N이예요. 오늘 저 때문에 많이 실망하셨죠? 그런데 선생님, 사실은 진짜 아팠는데 C가 7교시 빨리 마칠 것 같다고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학교 근처에서 조금 더 기다리는데 C와 길이 엇갈리고, 그러던 차에 K가 혼자 학교에서 공부한다고 하여... (끊김)" 삐삐는 메시지를 입력하다가 도중에 송화기를 놓아도, 지금까지 입력한 메시지가 그대로 보내집니다. 그러니깐 3번씩이나 죄송함과 해명이 담긴 메시지를 나에게 보내려다가, 결국 말을 끝맺지 못하고 송화기를 놓은 셈입니다. N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를 하니, N이 울먹거리더니, 그만 울어버립니다. 집에 돌아와서 선생님 실망(오해)하셨을 거 생각하니 걱정이 돼서, 괴로웠다고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N에게 무슨 다른 사정이 생겨 아직 집에 안가고 있겠다 여겼다고 했더니,, 더욱 울먹거립니다. 통화를 마치고 제 마음도 감동이 일더군요. 교사와 학생이 만나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의 토대위에서, 서로에게 적절한 기대를 하고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애쓰고 하는 것이 서로가 성장하게 되는 바탕인 것 같습니다. 교사가 자기를 어떻게 보든 아랑곳없이 자기 마음대로 해버리는 아이들을 보다가, 내가 실망했을까 안절부절 못하는 N을 보니, 오랜 가뭄에 단비를 맞은 듯 시원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언제나 평온하지 못하고, 문제가 있으면 속상하고 낙담하다가, 기쁜 일 있으면 기분 좋아하고,,, 이렇게 아이들의 모습에 제 마음이 시시각각 영향을 받으며 휘둘리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그들로 인해 제 마음이 이렇게 많이 휘둘리고 있음을 아마도 모르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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