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 보내온 답메일들 김동희  (Homepage) 2006-10-07(토) 19:48:48, 19549

아래 메일들에 대해서, 형이 보내온 답메일들입니다. ------------------------------------------------ <1> 2004.09.08 18:07 나 역시 요즘 모기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있는지라 니 편지보고 동병상련을 느꼈다. 이제는 그 개체도 많아졌고 홈매트 를 피워 놔도 별 소용이 없을 정도로 저돌적이다. 다만 내가 알기론 9월까진, 어쩌면 9월에 더더욱 기승을 부린다고 한 다. 방금 네이버에서 검색을 해보니 암컷 모기가 산란을 위해 흡혈을 하는 습성이 있다고 나와 있는데 성충의 수명이 1, 2개월임을 감안하면 9월까진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조심을 해야겠다. 지난 일요일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법원행시 1차시험을 보았다. 최선을 다하지 못한지라 별 기대를 못하고(그래도 합격했으면 하는 요행은 바라고 있었다) 시험을 끝냈는데 의외로 잘 본 것 같아 처음엔 요행을 바랬었다. 그러나 역시 뿌린대로 거둔다고 다음날 채점을 해보니 예년의 합격점수에 훨씬 미달이어서 주위 어른들에게 어떻게 변명을 해야할 지 걱정이 되었다. 오늘은 혹시나 하는 마음과 약간의 지적호기심으로 정답가안에 대한 의의제기들을 둘러보았다. 괜한 트집을 잡는 듯 한 것, 공감이 가는 것, 간과하고 있었던 판례와 조문개정은 물론 법학에 대한 깊은 지식을 보여주는 좋은 글들을 접하 는라 머리가 찌근거릴 즈음, 네게서 온 메일을 읽게 되었다. 그 상태론 생각에 어떤 진전도 있을 것 같지 않아 주변 산책 에 나섰다. 약간 땀이 흐른 것을 씻고 맥주 한 병을 준비하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이글을 쓰고 있다. 어려운 문제다. 아마도 그런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는 것을 두려워한 것도 내가 학교를 그만둔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싶 다. 그래도 뭔가 말해본다면 난 에이의 편이다. 99마리의 선한 양보다 1마리의 집나간 양을 더 아껴야 한다지만 그것도 나머지 99마리가 혼자서도 충분히 올바른 삶을 꾸려갈 정도로 성숙할 때 인정할 수 있는 것이지 집나간 한마리에만 신 경을 써다가 나머지 99마리의 성장에 지장을 준다면 문제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그 한마리가 나머지 양들을 괴롭히는 상황이라면 그 때는 자비의 하나님보다는 정의의 하나님이 더 필요한 상황이 아닐까싶다. 나는 니가 심신이 미약한 아이들에게 베푸는 사랑에 대해서는 자랑스러움과 존경으로 찬동의 뜻을 표하지만 남을 괴롭 히는 습성을 가진 아이들에게는 일정정도 엄한 태도를 견지했으면 한다. 주변 사정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은 그를 징벌할 때 참작사유는 될 지언정 그의 무고한 이에 대한 폭력과 협박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 보다 중요한 것은 힘없는 피해학생을 최대한 보호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씨는 비를 비롯해서 다른 아이들에 게 나쁜 본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필요하다면 강경책도 구사해야하리라고 본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사안은 담배피우거 나 술마신다고 퇴학시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내일 아침엔 거제의 오지 몇 키로를 걸어볼 심산이다. 트래킹을 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내일 우리 아파트 동에서 실내 소독이 실시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난 늘 이런 식이다. 뭔가를 적극적으로 하고 싶어하기보다는 소극적으로 기회가 주 어지면 그 때서야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을 선택하는 것. 덕분에 내겐 아파트의 집단소독이 싫지만은 않다. <2> 2004.09.08 18:11 너의 추가 글이 와 있네. 너와 너의 반 다수애들이 불의를 참지못한 대목을 보고 나 역시 마음이 밝아졌다. 그래서 또한 교직을 계속할 수 있겠구 나 하는 생각이 든다. <3> 2004.09.10 00:02 니 말대로 오지라는 표현은 좀 오버인 듯하다. 다만 거제에서는 상대적으로 개발이 덜 된 어촌마을이라는 정도로 이해 해라. 그래도 한가지 논거를 들자면 내가 버스를 내린 곳은 시청소재지인 이곳 고현에서 하루 세 번, 다시 버스를 탄 곳 은 하루 한 번의 왕복편만 있는 곳 정도이다. 물론 그 마을에서 각각 30분 정도만 걸으면 하루 운행 편은 10여 차례 이상 으로 늘어나니 솔직히 오지라고 보기는 힘든 곳임을 부인할 수 없겠구나. 소독은 8시 40분부터 시작되지만 첫 차가 7시 45분이라 7시쯤에 일어났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잠들긴 했으나 그래도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잠들었던 것 같고 예의 모기놈들과 새벽에 퇴근하시는 어머니의 인기척에 각각 잠이 깨었기 때문 인지 몸은 조금 무거운 상태로 버스를 탔다. 게다가 버스 안은 통학생들, 방위병들, 심지어 단체 등산객들로 인해 4, 50 분 정도는 서서 가야했다. 도착한 곳은 남부면 저구리 홍포마을로 거제시 홈페이지에서도 구할 수 있는 거제시관광지도상으로는 왼쪽 아랫부분 에서 찾을 수 있다. 거기서 조금 더 아래로는 여차마을이 있는데 이 둘 사이는 대략 4키로 정도의 임도내지 군사도로로 연결되어 있는데 들리는 말로는 환경보존을 위해 일부러 일정 구간 포장을 하지 않고 있다는 구나. 바로 그 점이 오늘 내 목적지로 그곳을 택하게 한 주요 원인이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그 곳은 내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가끔씩 장사하시 는 아버지를 따라 다니면서 눈에 익은 곳이기도 하다. 그 때는 그곳까지 아예 버스 편이 없었었고 아버지의 장사 차는 마을 사람들에겐 필요한 일용품을 공급해주고 아이들에겐 자동차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거의 유일한 수 단이었기에 우린 꽤 귀빈 대접을 받았던 것 같다.   그러나 내가 그 두 마을을 잇는 험로의 존재와 그 사이에서 만끽할 수 있는 감탄스러운 전망을 알게된 것은 어른이 되 고나서였다. 가장 최근의 일로는 한 6, 7년 전에 윤효선배랑 아버지 트럭을 몰래 타고 거제도 여행을 나섰을 때이다. 계획은 찻길을 따라 걷는 것이었는데 막상 홍포에 도착하니 등산로안내판이 있어 읽어보고는 정상에 올라 능선을 따 라 바다쪽 경치를 감상하는 편으로 계획을 바꾸기로 했다. 고현에서 미리 준비해간 삼각김밥대신 종점의 가게(지난번 만 해도 그런 집이 없었다)에서 라면을 시켜먹고는 바로 산행을 시작했는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피곤하고 배부른 상태에서 바로 몸을 부린 탓인지 속도 불편해지고 땀도 비오듯 흐르기 시작하는데 산행을 예상 못했기에 손수건 한장 준비하지 않은 상태여서 2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쉬어야만 했다. 준비해간 신문을 뒤적이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니가 걱정한 비가 오기 시작하더구나. 우산도 준비하고 큰 비는 아니었지만 숲길에서 우산을 쓸 수도 없고 초행길에 대한 두 려움과 힘든 차에 잘됐다는 심정에서 다시 되돌아 내려와서 원래 계획대로 찻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날씨가 흐린 탓에 기대에 미치진 못했지만 그래도 역시 그곳의 경치는 훌륭했다. 지나가는 차도 거의 없기에 호젓한 맛 도 일품이고, 다만 차타고 갈 때의 생각보다 거리가 짧아서 아쉬웠다. 반면 여차에서의 출발시각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남은 덕분에 바닷가에서 한 숨 자고나서도 시간이 남아 예정보다 마을 하나를 더 걸어가서 버스를 탔다. 결론적으로 역시 경치는 네게 보여주어도 부끄럽지 않겠으나 그 두 마을을 걷는 거리는 너무 짧아 트레킹이라 부르기 엔 좀 낯간지럽겠더라. 법학에서 오래된 논쟁중의 하나로 사형제도의 존폐론 논쟁이 있다. 일반적으로 폐지론자의 논거로는 진범인지 여부에 대한 오판의 가능성과 함께 생명권의 절대성을 들고 존치론자의 논거로는 사형제도의 범죄억지력과 범인의 생명보다 희생자를 비롯한 타인의 생명과 사회의 안전이 더 중요한 법익임을 든다. 한편 학계와 고시생의 다수는 폐지론자인 반 면에 실무를 담당하는 판검사중에는 존치론자가 많은 걸로 알고 있다. 내 생각엔 전자들은 생명권의 절대성이라는 관념 적 善에 매료되는 반면 범죄자와 그 희생자들을 직접 대면하는 실무가들은 흉폭한 범죄자에 대한 분노와 희생자들에 대 한 연민의 감정(正義)에 매료되기 때문이 아닌가싶다. 아이들 하나하나가 우주의 마음이라는 말은 부정하지 못할 뭔가 대단한 진리가 담겨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수없이 많은 우주를 상대해야하는 입장에서 특히 하나의 우주가 다른 우주의 완전성을 파괴하는 상황에서도 그를 우주 와 같이 고귀한 존재로 대해야한다거나(가능하다면 이는 놀라운 공력일 것이다) 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세상 의 모든 교사에게 너무나 큰 짐을 지우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문이 든다. 그리고 혁명의 와중에서 수반되는 폭력행사의 경우에도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심지어 살의없이 순전히 혁명의 대의만 을 생각하며 스러지는 적을 위해 울어줄 수 있는 순수한 혁명가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아니 존재한다면 과연 그들 만으로 혁명이 존재하거나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자기의 작은 잘못에도 엄격한 것은 권장할 만한 일이나 반성의 시기나 정도에 있어서는 현재 보다 큰 문제해결의 올바 른 방향설정에 지장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씨에게 에이와 그의 부모, 가능하다면 반 친구들에게 공개사과를 하는 선에서 문제해결을 꾀하겠다는 너의 처방에 찬 동한다. 단, 거기엔 중요한 전제가 있다. 씨가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난 뒤 자의로 사과를 행해야만 한다. (참고로 불법행위자로 하여금 피해자에게 사과광고를 강요하는 법은 불법행위자의 양심의 자유에 위배된다는 헌법재 판소결정례가 있다-법으로 처벌은 할수 있되 인간내면의 양심은 그가 비록 범법자라 하여도 외부에서 이를 침해할 수 없다-) 니가 그럴 수 있게 도울 수 있다면 최선의 길이겠으나 만약 그가 결국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 땐 너의 무능을 질책하기 앞서 여전히 가해자의 가능성을 가진 씨로부터 에이와 다른 선량한 반 친구들을 어떻게 보 호할 것인가 하는 문제해결에 매달려야 한다고 본다. 물론 어려운 문제고 그래서 좋은 교사는 아무나 할 수 없는 법이 다. 그러나 늘 하는 말이지만 한꺼번에 너무 많은 진전과 결과물을 의욕하진 말아라. 넌 아직 젊고 무엇보다 생각이 올 바른 청년이니까. 그걸 믿는 나로서는 니가 선택한 모든 해결책에 포괄적 지지를 보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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