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에 밤잠을 설치다. - 형에게 보낸 메일들 김동희  (Homepage) 2006-10-07(토) 19:37:10, 14959

재작년, 존경하는 형에게 보낸 메일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 <1> 2004.09.08. 05:13 철모르는 모기 형! 안녕하세요? 어떻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신지요? 지금 이 순간을 어찌 쫌 즐기고 계신가요? 아니면 뭔가 짓누르고 있는 느낌이 드는지요. 사법고시 2차 발표가 엄청 늦게 나는 것이 고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모기 땜에 잠을 설쳤습니다. 이불을 덮어써도 틈새로 들어와 덤벼들고, 윙윙거리는 소리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어요. 일어나서 한바탕 모기를 잡고 나도 모기가 없어지지 않아, 에라이 모르겠다. 그만 자자 하고 방에서 내려왔지요. 이럴 줄 알았으면, 모기약도 뿌리고, 메트도 켜고 잘 걸 그랬습니다. 잠을 설치게 한 건 모기가 주범이지만, 오늘 고민하던 일이 꿈에까지 나타났고, 잠을 자다가 의식을 차릴 때면 그 고민을 했으니, 이 놈에 고민꺼리도 잠을 설치는데 한 몫한 것 같습니다. A라는 애가 있습니다. 정서장애아지요. 감정표현이 미숙하고, 한 눈에 어리숙함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지능엔 문제가 없습니다. 놀랍게도 한자능력시험2급 자격을 소지하고 있습니다. 때론 A가 궁금증이 많아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그 질문들이 엉뚱하고,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 귀찮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C란 놈이 있습니다. 그 놈은 자기보다 힘 약한 아이를 자기 심심함을 달래주는 장난감 정도로 여기는 모양입니다. 1학기땐 어떤 아이가 나를 무시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며, 그 얘를 눕혀놓고 때린 적이 있어, 크게 혼을 낸 적도 있습니다. 특별실로 이동할 땐 교과서를 가지고 와라... 매점가서 뭐 좀 사와라 하는 심부름을 힘 없는 아이에게 자주 시킵니다. 요즘엔 뜸한가 싶더니, 이젠 B들과 같은 아이를 동원해서 A를 괴롭힙니다. C가 A에게 말합니다. B보고 "씨발놈아!" 한 번 해봐라. 머리를 한 대 때려봐라... 시키는대로 안 했다간 C에게 맞을까봐 A는 시키는대로 합니다. B는 참다못해 A에게 쥐어박습니다. 저런 일이 최근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제 추측엔 C를 비롯한 그 외 아이들, 심지어 B 까지 이를 즐기는 것 같아, 괘씸하고 막막합니다. 저 이야기를 들은 오늘, 내일가서 어떻게 지도할까 고민이었습니다. C도 문제지만, A도 문제고, B도 문제고, 그걸 즐기는 구경꾼들도 문제입니다. C는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정을 못받아 소외감과 불신속에서 자랐습니다. 눈빛을 보면 섬뜩하기도 하고, 그냥 가까이 가기 싫은 친구입니다. 눈빛도 잘 안마주치려 합니다. 하는 이야기 건성으로 듣습니다. 그래서 불쾌합니다. 그런데 C의 행동이 굉장한 관심을 통해 나아짐을 느껴왔습니다. 그래서 좀 인내심을 가지고 C에겐 눈에 띄는 행동도 때론 모른 척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너무도 괘씸해서 내일 가서 일단은 된통 혼쭐을 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은데,,, 그것은 C를 제외한 나머지 얘들을 바로 잡아주기 위함이고 C는 마음을 더 닫아버릴지 염려됩니다. 아무래도 일단은 내일 C와 B 몇몇을 개별적으로 불러서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습니다. <2> 2004.09.08 17:04 결국엔...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아침조례하러 학급에 들어갔습니다. 일단은 껌을 쫙쫙 씹고 있는 얘를 된통 뭐라하면서 분위기를 잡은 뒤에, 오늘 새벽에 말씀드린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 뒤 자기가 A, B, C, 이를 지켜본 D중 어디에 속하는지 쓰고,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써라. 그리고 지금 느낌을 쓰라고 종이를 나눠주었습니다. 거둬보니, C와 B가 제가 알고 있는데로 나왔고, D라 답한 상당수 아이들이 그 장면을 분하지만, 어쩌지 못하고 꾹 참았다고 하더군요... 그들이 풀지 못한 분을 제가 매를 흠씬 때림으로써 아이들과 제 분을 풀고 싶은 마음이 치밀어 올랐는데, 결국엔 그러지 못했습니다. 종례때 일단 매를 들고 갔지만,,, 한 번만 더 참아보자... 관심을 더 기울여 보자 ... 하며 때리지 못했습니다. 마치고 남아 대화라 할 수 없는 말을 말하고 보냈는데, 여전히 찜찜합니다. 그래도 오늘, 아이들의 정의롭고 따뜻한 다수의 마음을 알 수 있어 흐뭇했습니다. "내가 말리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그냥 지켜본 것이 후회된다." "후회스럽고 선생님께 죄송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힘과 용기가 없는 게 한심하다." "경찰서에 신고하고 싶었습니다. 그 상황을 말리지 못하고 보고만 있는 제가 한심했습니다." "내가 아직까지 몸은 건강해도, 마음은 더럽게 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온갖 자멸감, 부끄러움, 분노, 지금도 C는 우리에게 협박하고 있다." "힘이 없어 도와주지 못해 진우에게 너무 미안하다." "내가 도와주지 못한 것이 내가 너무 한심하고 밉다."....... 그들의 글을 읽고, 그래도 푸근해진 마음에 보냈던 메일을 형에게 보내드립니다. 에구구, 가르친다는 거 참 어렵습니데이~~~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 메일은 우리반 모두에게 보내는 메일이 아니다. 몇몇에게만 보내는 메일이지... 불의를 보면 용감히 나서진 못해도, 그 불의를 보고서 침묵을 지켰던 자신에 대해 한심함, 모멸감을 느끼는 너희들에게 보내는 메일이다. 마음이 따뜻하고, 마음이 여린 친구들이지... 난 그런 너희들이 있기에, 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사람 모습을 하면서 굴러가고 있다고 본다. 만약 너희들이 힘만 좀 가진다면, 그 힘을 매우 훌륭하게 쓰리라 확신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힘을 자기를 편하게 하기 위해 쓰고, 어떤 사람은 정의를 지키기 위해 쓴다. 난 너희들이 훗날 그런 사람이 되어 있을 줄 믿는다. 아마도 폭행을 당하고 있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덤벼들어 폭행범을 잡았다는 뉴스가 들려온다면, 그 주인공이 다름아닌 너희들 중에 한 명이길 기대해본다. 나 역시 자신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선뜻 나설 수 있을지는... 하지만 분명한 건, 나 역시 마음 여린 놈에게, 마음 편하게 그런 장면을 지켜보진 못한다는 것... 그런 마음이 이 세상을 아름답게 지켜내는 힘이라 믿으며, 그 마음 잃지 않길 바랄 뿐이다. 난 너희들이 사회에 중요한 역할을 맡기를 바라고 있다. 지금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요직에 앉은 사람은 매마른 감성을 지닌 사람들이 많다. 난 따뜻한 마음을 지닌 너희들과 같은 사람이 사회 구석구석에서 힘을 발휘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그러기 위해서 힘을 키워라! 독서도 열심히 하여 지혜를 기르고, 공부도 열심히 하거라. 그리고 곧은 정신은 건강한 육체에서 싹튼다. 몸도 튼튼하게 가꾸기를... 나약한 갈대 줄기도 뭉치면 탄탄한 막대가 되듯이, 너희들의 정의로운 마음이 우리 반 전체적인 분위기가 되어, 너희들의 시선을 통해 저열한 행동들이 견제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주절주절 기대만 많이 쓴 것 같구나. 10년 뒤에 훌륭하게 성장해 있는 너희들을 흐뭇한 마음으로 지금 내 가슴 속에 품어본다. <3> 2004.09.09 09:48 우유부단 형! 지금쯤 거제도 오지에 가 계실까요? 강원도 오지라하면 금방 매치가 되는데, 거제도 오지는 글쎄요... 선뜻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네요. 다음에 기회를 "만들어" 찾아가봐야 겠습니다. 아침에 그렇게 아이들 글을 받고서, 종례때 C를 비롯한 몇몇 얘들을 불러 대화를 해 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오후 어느 수업시간에 C가 A의 뺨을 때렸다는 밀고를 듣고, 대화할 마음이 싹 가셔버렸습니다. 속에서 뜨거운 불길이 쏟는 느낌이었어요. 다른 선생님에게 매를 빌려서 종례 들어갔어요. C의 말과 태도를 보고 여차하면 때릴 생각이었습니다. A를 앞으로 불러내어, 오늘 누구에게 맞은 적 있냐고 물었습니다. 몇 번 주저하더니, C에게 맞았다 그러더군요. C를 불러내어, 왜 때렸댜고 물으니, 자기 슬리퍼를 신고 있길래, 벗어라고 하니 기분나쁘게 발로 던져 주어서 화가 났다고 합니다. 그것이 뺨을 때리는 명분은 되지 못하지만,,,, 결국 매를 놓아버렸어요. 오늘 조회때, "사람이 사람을 때려선 안된다. 어떤 이유로도... 사람이 받을 상처와 모멸감은 평생을 두고 갈 수 있다. 그 심정 때리는 사람은 모른다..." 뭐 저런 말을 했습니다. 아직도 찜찜함은 남습니다. 그 찜찜함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제 어정쩡한 태도 때문에 더더욱 크게 남는 거 같습니다. C에겐 제가 가진 분노와 증오가 여과없이 드러났을테고, 단호한 응징, 보복을 바라는 아이들에겐 물렁한 담임으로 비춰지지 않았을까, 그래서 다음 번에도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남습니다. 그런데 말 입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C에겐 어느정도 마음을 나눌 여지를 만들어 둔 셈이고, C를 앞에서 몰아세웠고, 아이들 글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표출했으니, 아이들의 직성도 좀 풀어준 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래저래 찜찜하고, 단호하지 못한 제 모습이 아쉽기도 합니다. 이 아이, 저 아이 마음을 다 생각하려다 보니, 그리고 저의 감정을 의심을 하다보니, 쉽게 결단 내리기 어려운 장면이 남습니다. 당분간 이렇게 디디하게 나아가는 것이 적절한 것 같습니다. <4> 2004.09.09 10:17 사람은 본디 우주다. 어제 술을 한 잔 하면서, 제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발견되었습니다. C의 본래 마음은 우주마음인데, 가정과 학교에서 C에게 소외감과 분노, 적대감, 불신을 키워줬기에, 그것이 C가 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C에게 엄하게 대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은 교육적 필요/교육적 전략에 따른 것이여야 할 것 입니다. 그러나 제 마음 아래엔 C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깔려있었습니다. C의 행동도 아닌, C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C의 본래마음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제 마음 아래엔 C에 대한 동정과 애정이 깔려있었어야 했는데, C의 본성을 보지 못하고, 지금 C를 봤기에 저런 분노와 증오만이 자리했던 것 같습니다. 31명 중 어제 제가 메일을 보냈던 15명은 정말 착하고, 마음도 열려 있고, 제가 한 마디 하면 눈빛부터가 달라집니다. 무슨 일을 어렵게 부탁하면 방과후에도 남아서 도와주는 친구들입니다. 그런데 제 관심과 에너지는 그 15명이 아닌 그 외의 "문제아"들에게 많이 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15명들에게 미안하고, "문제아"들이 미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99마리의 선한 양에게 관심을 의도적으로 많이 보여야 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1마리의 악한 양에게 보낸 에너지와 그 결과, 99마리의 선한 양에게 보낸 에너지와 그 결과를 경제적으로 따져보면 훨씬 후자가 경제적입니다.   1마리에게 관심이 가는 것도, 어쩌면 그 관심의 바닥엔 획일성과 자존심이 깔려있는 듯 합니다. 어떤 기준을 가지고 아이들을 보는데(뭐 그 기준이라는 것이 별 다른 게 없습니다. 지각, 조퇴, 결과, 결석, 흡연, 수업시간에 떠드는 것... 뭐 저런 것이지요) 그 기준에 튀어나오는 아이가 있으니, 유독 눈에 띄는 건 당연하지요. 그런데 그 기준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 다시 말해 학생들이 지켜야 될 최소한이냐 뭐 그런 의문도 듭니다. 그런데 그런 기준이 선생님들, 그리고 제 속에도 내면화되어 있다보니, 그런 아이들이 많다는 것이 제가 잘 못하고 있다는 자책과 직결되니, 자존심과도 관련이 있어요... 아~~ 오늘 A가 늦길래, 지각이 잦은 A인지라 혹시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냥 넘기고 있었는데, 학교오기가 무서워서 "전학을 보내달라고" 어머니께 이야기 했다더군요... 이렇게 그냥 넘어가선 안될 일이지 싶습니다. A가 그렇게 힘들어하는데 말이죠.... <5> 2004.09.09 17:13   형! 오늘 오전 날씨가 많이 우중충했는데, 오후에 들어서 비가 오네요... 오늘 거제도 오지에 가셔서 비는 만나지 않으셨는지요. 비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으셨다면, 고생 좀 하셨을텐데... 오늘 A가 학교에 오지 않았습니다. 평소에도 지각이 잦아 그려러니 했는데, 특수학급 선생님께서 집에서 연락왔는데, A가 학교가기 무서워 집에 있다고 하더군요. 몇몇 얘들이 괴롭혀서 전학가고 싶은 심정이랍니다. 그 말씀을 듣는 동안, A의 상처가 더욱 가슴 속에 파고들었고, 그냥 이렇게 넘어가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교실로 올라가 수업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C와 그리고 C의 친구인 K를 불러내었습니다. (어젯밤 K는 저에게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알고보면 C 괜찮은 친구니, 조금만 더 참고 관심을 보여줬으면 고맙겠다고... 친구로서의 의리가 물씬 느껴져서 흐뭇했습니다. ) 그러고선 C에게 A가 얻은 상처에 대한 책임을 어떤 식으로 질 거냐고 하면서, 만약 C가 책임질 방법을 제안을 하면은 교칙에 따른 처벌은 가능한 피해볼 테고, 그렇지 않으면 형평에 따라 처벌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제안한 바는 C, K, P, L과 제가 A 부모님을 찾아뵙고 사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정도를 할 수 있다면 그 사과에 진정성이 담겨있다고 봐도 좋을 듯 싶고, 부모님의 아픈 심정을 느낀다면 이후에 다른 아이들을 이렇게 쉽게 괴롭히진 않을거란 기대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음 시간 우리반 수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아까 암울했던 표정은 온데간데 없고 짝지와 장난을 치고 있던 C를 보고 있으니, 화가 치밀어 오르더군요. 몇 번이고 시선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계속되자, 그만 그 화를 참지 못하고 "야이~ 개새끼야!" 고함치며 "그래, 웃음이 지금 나오냐.. .A가 왜 지금 학교에 있질 못하고 집에 있는데!" 하며 쏘아붙이고 말았습니다. 순간 교실을 얼어붙었습니다. 거의 남은 20여분동안 아무말도 없이 침묵을 지켰습니다. 찜찜함이 한동안 가시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저런 욕은 참았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가슴속이 시원해지는 느낌도 들었는데, 그만큼 많이 참았던 모양입니다. 종례때 남겨서 물으니, 부모님 뵐 면목은 없어서 다른 방법을 생각했다더군요. 제 직감은 면목이 없기 때문이 아닌, 난처한 상황을 겪기 싫어서가 큰 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A에게 사과하고, 앞으로 A를 괴롭히는 아이들을 제 나름으로 보호하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으론 안된다며, 내일 아이들 앞에서 공개사과해라고 했습니다. 직접적인 피해자인 A뿐아니라 그 폭력을 지켜보며 모멸감을 느꼈던 다른 아이들에게도 사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 선뜻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내일 사과에 얼마나 반성의 빛이 보이는지 보고서 판단을 하겠다 했습니다. 주사위는 C, P, L에게 던져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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