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꿈 최영도  (Homepage) 2012-05-08(화) 06:11:00, 3367

군대를 다녀온 대한민국 남성들은 군대 꿈의 악몽에 시달려 본 경험이 한두 번 쯤은 다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꿈 중에서도 전역 후에 입영통지서가 또 날아와 식은 땀을 흘리며 꿈에서 깨어난 사건이 가장 실감났던 사건이었을 것 같다. 그런데 며칠 전 교직을 떠난 지 두어달 만에 학교 꿈으로 잠을 설치게 되었다. 평소 학생들에게 수업 시간에 지각하는 것만큼은 특별히 엄하게 나무라던 내가 폭력근절에 대한 공문을 처리하다 깜박하는 바람에 수업에 늦게 되어 어쩔줄 몰라하는 악몽이었다. 아마 낮에 읽었던 학생 자살 사건에 대한 대구 교육감님의 인터뷰 내용 때문에 그런 꿈을 꾸게 되었던 것 같다. 작년 12월 말경에 있었던 대구 중학생 권모군의 자살 사건 이후 교과부는 여성가족부·법무부·경찰청 등 관계 부처와 함께 7대 분야에 걸친 84가지의 과제를 담은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마련하여 2월 중순 전국 16개 시도 교육청에 하달하였다. 각 교육청에 하달된 84개의 시행과제 중 대표적인 과제가 복수 담임제 도입과 체육 수업 시수를 50% 늘린다는 것이었고, 또한 각 시도 교육청 평가 시 84개의 과제 이행 실태에 대한 평가를 가장 비중있게 다룬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다 보니 진보 진영 교육감으로 분류되고 있는 몇 곳의 교육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교육청에서는 84가지의 과제에 대한 실적을 쌓기 위해 자체적으로 더 많은 공문을 생산하고, 또한 학교 평가 시 84개의 과제 이행 실태에 대한 평가를 가장 비중있게 다룰 것이라는 지침을 내려 교과부의 앵무새가 되기를 자처하고, 교장선생님과 선생님들 그리고 학부모님들에 대한 연수회를 개최하고, 생활지도담당 교사와 유관기관과의 협의회 및 합동지도를 강화하는 등 학생들의 자살 예방활동에 엄청난 노력을 쏟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초·중·고등학생들의 자살은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급증하고 있다. 지난 2월, 교과부는 이번 자살 사건 이전인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 동안 전국에서 자살한 초·중·고등학생의 총 수가 735명이며, 그 중 폭력에 의한 자살은 8명에 불과하다는 내용과 더불어 84가지의 과제를 담은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하였던 것이다. 5년동안 전국에서 자살한 청소년의 숫자가 735명이면 한 해 평균 147명의 학생이 불행한 죽음의 길을 선택했다는 얘기인데, 지난 해 12월 대구에서 권모군이 자살한 이후 4개월 만에 대구에서만 9명의 학생이 자살을 시도하여 7명은 사망하였고 2명은 중태에 빠져있는 상태이다. 그런데 대구 교육감님의 말씀에 의하면 최근 급증하고 있는 청소년의 자살 사건은 대구만의 문제가 아니라, 1~2명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전국 16개 시도에서 거의 같은 숫자의 자살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추세대로 나간다면 올 한 해 전국에서 학생 자살 건 수가 400여 건이 넘을 수도 있다는 말인 것이다. 84가지의 과제를 부과하는 것도 모자라 이 모든 과제에 대한 추진 실적을 평가하겠다는 지시까지 내려서 온 학교와 학부모 그리고 유관기관과 언론까지 총 동원 되어 학생 자살 예방활동에 매진하고 있는데 왜 자살 사건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급증하고 있단 말인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아무런 고민없이 순간적으로 들끓는 여론만 잠시 피해보자는 속셈으로 급조된 전시행정성 대책만 쏟아내던 구태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이상 현상은 아닌 것일까? 학생들의 자살 급증이라는 사회 병리현상에 대한 잘못된 진단과 잘못된 처방 때문에 공부 잘 가르치는 일을 통해 학생들과 더 가까워지고, 수업 시간을 통해 쌓은 신뢰와 존경심을 바탕으로 생활지도에 임해야 생활지도의 효과도 기할 수 있을 텐데, 급조된 대책에 따른 실적 부풀리기 공문처리와 전시성 행사에 시간을 빼앗긴 선생님들이 도리어 학생들의 신뢰와 존경심만 잃게 되어 선생님과 학교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된 것은 아닐까? 어떤 어려움이든 오늘의 이 어려움을 참지 못하고, 귀한 생명까지 포기해 버리는 이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내일에 대한 희망 일텐데, 급조된 전시행정성 각종 공문들이 이 애들에게 무슨 희망의 끈이 될 수 있단 말일까?

최재성		이 글을 읽어보니 며칠 전 김영국 교장선생님의 글 `학교선생님 vs 학원선생님`이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84가지나 되는 실천과제를 교과부에서 내려 보내니 일선 학교에서는 그 공문의 나비효과로 인해 모든 일손 다 놓고 84가지 실천과제에 전 선생님들이 올인해도 모자랄 것 같군요. 수업까지 하면서 그런 일도 하려면 결국 형식적으로 흉내나 내거나 엉터리 보고서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게 될 것 같네요. 학교샘들 정말 수고 많습니다. 능력있는 분은 처음부터 바로 학원으로 가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2012-05-08 11:19:28
박상배		군대서 제일 힘들고 하기 싫었던 일이 위에서 아무 생각없이 시키는 무의미한 사역이었죠? 땅을 파라! 도로 묻어라! 다시 파라! 까라면 까야지! 위에서 내려온 실천과제대로 열심히 실천하니까 자살은 2배 3배 더 급증하고....,, 곧 더 수정 보완된 실천과제 지시 사항이 다시 떨어지면 선생님들은 더 바빠 질테고 그러면 자살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 지겠고, 이런 악순환이 거듭되면 어쩌죠?	2012-05-08 11:48:50
정기홍		교사들의 잡무가 많다는 불만이 배부른 소리인 줄로만 알았었습니다. 이 글을 보니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이런 류의 다른 일들이 엄청 많을 것 같군요. 종합학원에는 선생님들이 수업에만 집붕하실 수 있도록 생활관리 담임제를 운영하여 상담이나 진로지도 생활지도 등은 생활관리 선생님들께서 전담하신다더군요. 현대 산업사회의 특징은 분업화를 통한 전문화인데 학교가 공부하는 곳으로 전문화 되지 못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2-05-09 15: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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