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한국 과학사의 한 획을 긋다(박성래 선생님) 송성수  (Homepage) 2015-07-07(화) 09:10:35, 9318

한국 과학사의 한 획을 긋다 [원로와의 대화] 박성래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과학사) http://blog.naver.com/scienceall1/220308621370 박성래 교수가 TV에 자주 출연하고 신문, 잡지에 수많은 글을 발표하면서 일부에서는 전공 연구보다 ‘나들이 강연’에 더 치중하는 게 아니냐는 눈길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배운 제자들이나 친지들은 박 교수의 대중 강연이나 칼럼 등의 내용을 보면 늘 탄탄하게 다져진 학습과 연구가 깔려있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수십권의 저서와 1백여편에 달하는 논문은 그의 학문적 배경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가늠케 한다. 학자의 개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고고한 상아탑에 앉아 논문을 통해서 업적을 쌓아가는 이들도 있겠으나, 스스로가 연구하고 찾아낸 사실을 동시대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며 나누는 일도 가치있는 일로 평가될 수 있다. “대중매체에 많이 출연하고 글을 발표한 것은 역사가 짧은 과학사 분야를 알리자는 의도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공부를 해보니 잘못되거나 왜곡된 사실이 고쳐지지 않고 그대로 대중에게 전해져 있는 부분이 많고, 여러 사회적 이슈나 일상생활 등에서 과학적이며 합리적인 사고가 더욱 확산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또 내가 글쓰기를 싫어하지 않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박성래 한국외대 명예교수 부부. ⓒ ScienceTimes ‘우리는 왜 근대과학 수용이 늦었나’를 화두로 박교수는 학계에서 한국과학사 연구의 한 획을 그은 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과학사학자인 송상용 한림대 명예교수는 박 교수의 정년퇴임 기념문집에서 한국과학사 연구의 대표적인 학자로 홍이섭, 전상운에 이어 세 번째로 박 교수를 꼽았다. 송교수는 그가 ‘천문학사에서 두드러진 업적을 냈고, 사상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며 ‘동서양 과학사에 대한 든든한 기초를 바탕으로 한 눈 팔지 않고 한국과학사를 외골수로 연구했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귀국한 후 박 교수는 10년 동안 14편의 주요한 논문을 썼다. 1978년 한 해에만 ‘고려초의 역과 연호’, ‘정약용의 과학사상’, ‘한국 근세의 서구과학 수용’ 등 세 편을 발표했고, 이어 ‘홍대용의 지전설(영문)’(1979), ‘한중일의 서구과학 수용’(1981), ‘마테오리치와 한국의 서양과학 수용’(1983), ‘조선 유교사회의 중인 기술 연구’(1983), ’세종대의 천문학 발달‘(1984), ’한국 과학문화재 조사 보고‘(1985) 등을 내놓았다. 14편 중 10편이 실학자들의 과학사상을 포함해 서양과학 수용에 관한 것이었다. 사실 이 주제들이 이후 그의 학문생활을 이끌어나갔다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부터 항상 깊은 관심을 두었던 것은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앞서 있다가 근대과학 수용에서 뒤지는 바람에 식민지로 전락하는 비운을 경험했는데, 그 과정과 원인이 무엇 때문인지를 밝혀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뭐 거창한 민족적 소명의식이라기보다는 학문적 호기심에서 출발했다고 봐야지요. 그동안의 공부를 통해 내 나름대로 정리하고 밝혀낸 것도 있고, 이후 후학들이 뒤를 이어 열심히 진일보한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 제자는 ‘선행 연구가 거의 없는 가운데 선구자적인 연구의 길을 개척해 냈다는 점에서 박 교수는 높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며, ‘특히 한국과학사 연구자 가운데 과학사학계와 국사학계를 통틀어 박 교수의 논문이 가장 많이 인용되었고 또 인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 과학의 역사를 연대별로 기술한 홍이섭 교수의 『조선과학사』와 과학기술 내용을 주제별로 정리한 전상운 교수의 『한국과학기술사』에 이어 TV 공개강의 교재 형식의 『한국과학사』와 사이버강의를 묶은 『한국사에도 과학이 있는가』 등 두 권의 통사를 펴냈다. 이 두 저서는 대중을 위한 교양서이면서도 독자적인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과학사의 주요 논쟁점들을 모두 담아내 학계에서 한국 과학사의 또 다른 지평을 열어주었다는 평을 얻고 있다. “두 가지 통사는 정밀한 학술서로 쓴 것은 아닙니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자료를 모으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저서라고 할까요. 그런 연유로 이 책들은 기존의 통사 서술체제를 답습하지 않고 그동안 내가 의문을 가지고 연구했고 학문적으로도 논쟁이 있는 주요 이슈들을 모아서 담았습니다.” 이 책들의 또다른 특징은 한 주제를 국내적 이슈로만 국한하지 않고 중국과 일본 과학사 자료를 통해 상호연관성을 밝히려 노력함으로써 역사 상황을 좀더 입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과학사 운동’의 중심에 서서 1977년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후 박 교수는 과학사 연구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열심히 뛰었다. 아직 정식 학과가 생기지 않아 비록 교양과목 수준이었으나 서울대와 연세대, 이화여대, 성균관대 등 여러 대학에 강의를 나가 학생들에게 ‘과학을 이해하는 새로운 눈’을 가르쳤다. 국내에서는 박 교수에 앞서 송상용 교수(한림대)와 오진곤 교수(전북대)가 과학사를 가르치며 교양과목으로서 자리를 잡아나가기 시작할 때였다. 당시 과학사 전공자인 박 교수를 비롯해 그와 거의 동시에 귀국한 김영식 교수(서울대)가 합류하며 교양과목으로써 과학사 위치는 더욱 확고해졌다. 과학사학계에서는 80년대를 전후해 과학사 과목을 여러 대학에 확산시키고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일련의 노력과 움직임을 ‘과학사 운동’이라 부르고 있다. 박 교수는 당시 대외활동도 활발했던 송상용 한림대 교수에게 ‘과학사 운동의 기수’라는 호칭을 붙여주며 학회 활동 등에서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전두환 정권시절인가 교수들의 민주화운동에 송상용 교수가 앞장서다가 성균관대에서 쫓겨난 적이 있어요. 송 교수는 교류범위가 넓고 정의감도 높은 분인데 중심인물로 몰리다보니 교수직까지 박탈당한 거지요. 남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나도 좀 연루가 됐다 해서 처벌을 받기는 했는데 외국에 나가지 말라는 정도였어요. 당시 송 교수가 강의를 할 수 없게 되자 과학사 과목 자체가 위축될까봐 송 교수가 강의하던 인하대 강의까지 맡아 힘들게 뛰었던 기억이 납니다.” 1980년대 초까지 교양과목 수준에 머물던 과학사는 1984년 서울대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주임 김영식 교수)이 생기면서 처음으로 대학원 교육이 시작됐다. 이 협동과정에는 송상용 교수를 비롯해 박성래 교수, 서울대 물리학과 장회익 교수 등이 교수진으로 합류했고 그 후 박사과정까지 개설되면서 과학사, 과학철학, 과학사회학 등 여러 부문에서 다수의 학자들을 배출하기에 이르렀다. “서울대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약칭 과사철)이 생기면서 나도 첫 해에는 서울대로 강의를 하러 다녔지요. 당시 과학사를 정식으로 전공하고 학위를 받은 사람이 국내에 몇 사람 안됐고, 서울대에서 한국과학사를 가르치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 출퇴근 길이 좀 멀기도 해서 대학원 학생들을 일주일에 며칠씩 우리 집으로 불러 강의를 했습니다.” 비교적 넓직했던 박 교수의 아파트 거실 한 쪽은 그대로 대학원 강의실이 되었다. 많을 때는 10여명이 참석했다. 부인 이미혜 여사가 학생들에게 계란이나 커피 등 다과를 챙겨주기도 하면서 분위기도 오붓했다. 이 ‘아파트 대학원’은 5~6년 지속됐다. “내가 서울대에 적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애매하기는 한데 과사철의 박사 과정을 가르친 학생이 40명 내외이고, 당시 우리 집을 오가며 공부한 제자가 열 명 정도 됩니다. 서울대에 문중양, 임종태 교수, 카이스트(KAIST)에 신동원 교수, 전북대에 김근배 교수가 있고 전공은 다르지만 이문규 전북대 교수와 송성수 부산대 교수, 서울역사박물관의 김성준 박사 등도 같이 공부를 했습니다.” 한국외국어대에서도 박 교수가 ‘고집을 부려’ 대학원 과정에 과학사 과정을 집어넣었으나 정작 학생은 뽑지 않았다. 과학사 전공으로 대학원 진학을 하는 학생이 많지 않은 터라 서울대와 중복돼 낭비가 심하고, 교수요원을 모시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쓸데없는 간섭 삼가야” 박 교수는 한국외국어대에 재직하는 동안 교무처장, 인문대학장, 도서관장, 부총장 등 총장과 학과장을 빼고는 주요 보직을 모두 거쳤다. 무슨 비결이 있었던 것일까. “대학 이사장과 특별한 관계가 있었던 것은 전혀 아닙니다. 아마 내가 매스컴을 통해 이름이 알려지고 하니 학교 홍보차원에서 배려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비결이라면 내 할 일 충실히 하고 남의 일에 간섭 안하고 생활하다 보니 교직원 누구와도 갈등을 빚은 일이 전혀 없었지요. 그런 점에 매우 감사하고 있습니다.” 학부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평생 학문으로 역사를 전공한 박 교수는 대학 재직 시의 경험을 통해 볼 때 “이과와 문과의 구분은 없애야 하며 대학의 학생 선발권은 당연히 대학에 돌려주는 게 맞다”고 단언한다. 또한 여러 대학의 상황을 살펴볼 때 교수 채용에 문제가 있어 투명한 기준이 제시돼야 하며, 특히 각 대학마다 학과 내에서의 교수 간 갈등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의 지혜와 배려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사회적으로 지명도가 높았던 데다 강의를 재미있게 하는 교수로 소문나 많을 때는 3백명이 넘는 학생들이 몰려 대중강연 수준의 강의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교 강의를 포함해 초청 강의까지 바쁘게 불려다니던 그는 한 때 성대를 다쳐 2년 정도 강의를 쉰 적도 있다. 그렇게 쉬는 동안 그는 일본 교토대 연구교수로 가서 우리의 탁월한 역법인 <칠정산>을 일본 학자에게 전한 사람이 박안기(朴安期)란 인물임을 밝혀내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출처] ‘한국 과학사의 한 획을 긋다’|작성자 KOF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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