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질문에 긴 답 송길원  (Homepage) 2017-12-30(토) 06:11:28, 7669

모교로 부터 연락이 왔다. 학교에서 발행하는 매거진에 글을 소개하고 싶다고. 어떤 글이냐고 했더니 최근 하고 있는 일을 소개해 달란다. 학교 일이라 그러겠노라 해 놓고 고민하다. 제목부터 정했다. <짧은 질문에 긴 답> 그만큼 할 말이 많았던 걸까? 그냥 써내려 간 글이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은 끝내 파도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말이 있죠. 실제 그래요. 영도 캠퍼스를 끼고 돌 때 일몰은 환상 그 자체지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고신인들 만의 시크릿 일지 몰라요. 그럴 때 우리도 모르게 ‘와, 쥑인다’ 그래요. 솔직히 죽음을 감탄사로 쓰는 나라는 우리 밖에 없어요. 특히 경상도가 더 하죠. ‘죽여준다’ 그런데 어느새 늘 접하다보니 진짜 ‘죽(이)고’ 없어요. 웃기죠. 이런 현상을 ‘인식의 자동화’ 또는 ‘인식의 습관화’라 말해요. 러시아 형식주의 문학이론이죠. 그래서 ‘돌을 돌로 보이게 하는 것’을 예술(art)이라고 해요. 주기도문이 그랬어요. 하도 자주 외다 보니 그게 주문이 된 거죠. 아무 감흥이 없어요. 주기도문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천덕꾸러기가 되었나요? 주기도문은 ‘복음의 핵심’이고 ‘천국 교리의 체계’라 할 수 있죠. 중세에 교회가 길을 잃었을 때 종교 개혁가들은 ‘주기도문’에서 길을 찾았어요. 우리나라도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성공시대에서 성찰의 시대’로 접어들었잖아요. ‘추월’이 아닌 ‘초월’을 찾게 된 거죠. 그래서 나타난 현상 중의 하나가 자동차를 버리고 자전거를 찾는다는 거예요. 우리 주변을 둘러보세요. 온통 자전거 천국이에요. 그리고 생겨나는 것이 ‘올레길’이고 ‘둘레길’이고 ‘갈메길’이에요. 최근 강원도에는 ‘올림픽아라바우길’까지 생겨났어요. 교회가 이런 트렌드를 재빨리 읽어냈어야 한다고 봐요. 저희는 양평에 3만평의 야산에 길을 내고 산을 가꾸었어요. 그렇게 해서 <주기도문 영성의 길>을 만들었죠. 앞에 말한 예술과 주기도문의 조합으로 새로운 퓨전 형태의 프로그램이 된 거에요. 그랬더니 기독교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가톨릭에서도 위탁교육을 의뢰했어요. 불자(佛者)들도 찾아와요. 너무 흥미로워요. 땅 끝 해남에서도 버스를 대절해서 오고 서울대학의 최고위과정에서는 인문학 강좌의 현장 학습장소로 찾아오고.... 저희도 미처 예상치 못했어요. 길에는 르네상스 시절의 작가들 작품에서부터 시작해 17세기 개신교 작가들의 작품들을 사인보드에 새겼어요. 그리고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현장설치 작품을 내세웠지요. 자연스레 예술적 흥미를 자극해요. 작품해설과 함께 주기도문을 스토리로 전하죠. 일테면 이런 거예요. “스코틀랜드의 시골 마을, 어린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과부(한 부모)가 있었다. 남편 없이 살아가는 것이 하루하루 참 힘들기만 하다. 서럽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같으면 쌀독, 저들에게는 밀통을 긁는다. 그러다가 흐느끼고 만다. 이런 엄마를 지켜보고 있던 다섯 살 난 아이가 엄마 옆에 가 옷소매를 잡고 묻는다. ‘엄마, 왜 우세요. 하나님이 엄마가 밀통 긁는 소리를 못 들으실까 봐서요.’ 그러자 엄마가 아이를 붙잡고 엉엉 울고 만다.(잠시 멈추었다가) 주님이 말씀하셨다. ‘공중 나는 새를 보라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그러면 다들 눈물을 훔치기에 바쁘죠. 이 이야기를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에서 나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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