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문항은 1번핀일까 5번핀일까 김영국  (Homepage) 2023-07-24(월) 07:13:28, 48984

볼링의 재미는 역시 스트라이크다. 한 방에 10개의 핀이 차례로 쓰러지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통쾌하다. 스트레스 해소용으로는 제격이다. 그런데 스트라이크를 위해 맨 앞 중앙의 1번핀을 노리면 맨 뒷줄 양끝의 7번과 10번이 남게 된다. 고수는 앞에 보이는 1번이 아니라 그 뒤에 숨어있는 5번을 노린다. 1번과 3번을 스치면서 5번을 때리면 핀이 다른 핀을 넘어뜨리면서 스트라이크가 된다. 그 5번핀을 킹핀이라 한다. 무슨 일에든 초보와 고수가 있기 마련이다. 초보는 눈에 금방 띄는 변죽을 두드리다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는 반면, 고수는 단숨에 숨은 핵심(킹핀)을 찔러 문제를 쉽게 풀어나간다. 윤석열 정부를 두고 무식한 초보 정부라고 비아냥거린다. 그 주제에 욕심은 많아서 교육개혁, 노동개혁, 연금개혁을 하겠다고 덤비고 있어 불안해하는 사람이 많다.(이 중 한두 개는 문재인 정부에서 해냈어야 했다.) 그런데 얼결에 노동개혁부터 손을 대더니 나름 성과를 보이고 있다. 과격은 하지만 아킬레스건이 노출된 화물연대가 나섰다가 힘도 못써보고 주저앉았고, 철도 지하철 노조도 덩달아 싸움을 포기했다. 비리의 온상이었던 강경 건설노조도 여론전에 밀려 백기를 들고 말았다.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민주노총 한국노총의 리더십에 금이 갈 수밖에 없었다. 본의든 아니든 정부의 수순이 절묘했다. 킬러 문항이 교육개혁의 1번핀인지 5번핀인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입시를 눈앞에 두고 대통령의 입으로 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부정적인 여론이 우세했다. 시기도 적절치 않고, 만기친람하는 대통령의 통치스타일과 수능의 변별력을 걱정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사안에 대한 여론이 달라지고 있다. 이 문항 때문에 사교육비 부담이 치솟고, 학생들의 고통이 커질 뿐 아니라 빈부격차에 의한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지적에 일리가 있다고 평가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여기가 끝이라면 킬러문항 지적은 하수의 1번핀이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 논란 이후에 수능의 존재이유 등 대학입시 전반으로 이슈가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킬러 문항이 5번핀이 되기 위해서는 킬러 문항 문제가 대학입시 개혁의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 교육 현실에서 교육개혁의 킹핀은 대학입시다. 어떤 석학이 어떤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어떤 정책을 내놔도 대학입시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그것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대입제도를 바꾸면 고교교육만 바뀌는 것이 아니다. 중학교도, 초등학교도, 유치원까지도 그에 따라 발빠르게 따라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것을 내다보고 대통령이 만인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킬러 문항을 대입 손보기의 마중물로 이용했다면 이는 신의 한 수다. 지금 대입의 핵심은 수능이다. 이 수능이 오늘 우리 교육현장을 오도하고 있다. 수능은 기억력을 측정하는 시험으로 변질되었다. 이 때문에 초중고 학생들은 쓰잘데없는 지식을 암기하는 기계로 전락하고 있다. 지식의 유효기간은 해마다 짧아지고 있다. 지금의 인류는 좌뇌 우뇌에다 ‘외뇌’를 휴대하고 산다. 그리고 수능은 정답을 골라내는 시험이다. 현재와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력 문제해결력을 지닌 인재를 길러내지 못하는 한참 뒤떨어진 방식이다. 인생에 정답이 있던가. 수능의 비중을 낮추어야 한다. 킬러 문항이 없어지면 변별력이 없어진다는 걱정에 대해, 만점이 천 명이 나와도 괜찮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참에 수능을 대입 자격고사로 격하시키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아주 바람직한 발상들이다. 학생의 선발기능을 수능과 내신에만 의존하지 말고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를 기를 수 있고, 그런 인재를 뽑을 수 있는 제도를 개발하면 된다. 맨땅에 헷딩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정량평가 定量評價로 전국의 수험생을 한 줄로 세워 ‘우수한’ 학생을 대학서열 순서대로 뽑아가는 제도를 포기하면 된다. 각 대학에서 또는 각 학과에서 그 대학 건학이념이나 그 학과 특성에 ‘적합한’ 학생을 뽑도록 하면 된다. 그걸 점차 늘려가면 된다. 이명박 정부에서 이를 과감하게 시작했다. ‘수시’, ‘심층면접’, ‘입학사정관’ ‘숨은 원석 原石’이라는 말이 그때 떠오르며 ‘정성평가 定性評價’ 시대를 열었다. 당연히 생소한 제도에 대한 저항이 들불처럼 번졌다. 박근혜 정부에서 ‘쉽고 단순하게’로 변질되더니, 문재인 정부에서는 조국 사태의 원인을 제도에 돌리며 ‘정시定時’를 강요하여 수능의 비중을 높여버렸다. 포항공대를 제외한 모든 대학이 고분고분 정량평가로 회귀했다. (이것이 조국 사태가 우리에게 끼친 가장 뼈아픈 폐해라고 생각한다.) 공정을 앞세워 ‘정량’을 고집하면 교육개혁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 ‘정성’의 비중을 높이면 입시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면서 여론이 들끓을 것이다. 입시제도가 다양해지면 복잡해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역시 원성이 치솟을 것이다. 온갖 괴담이 정권을 흔들 것이다. 그걸 두려워하면 어느 정부도 손을 못 댄다. 지금의 이주호 장관은 이명박 정부의 교육부 장관이다. 경제학자 출신이다. 내가 볼 때 어느 교육학자보다 우리 교육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그래서 기대를 건다. 새로운 대학입시제도는 적어도 두 가지를 지향해야 한다. 첫째는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를 기르고 골라낼 수 있어야 한다. 둘째는 초중고 학생들이 지금보다는 더 행복하게 수험준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각자의 꿈과 재능에 따라, 급우들과 경쟁하지 않고 자기의 길에 맞추어 공부할 수 있으면 보다 재미있고 의미 있게 수험준비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역시 공정을 문제 삼을 것이다. 이래도 저래도 공정은 불가능하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주의가 얼마나 불공정하고 위험한지를 밝히고 있다.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자매도 그 능력이 각각인데 어떤 제도로 모두에게 완전히 평평한 운동장을 만들 수 있겠는가. 나라를 살리고, 학생들이 보다 행복하게 공부할 수 있는 입시제도를 고안하는 것이 지금의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수는 없다. 입시부정에 대해서는 가혹하다 할 정도로 처벌규정을 만들어 감히 부정을 생각하지 못하게 하고, 국민들을 안심시키면 된다. 가담한 교사, 학부모, 조력한 사람, 그리고 대학과 교수까지 걸리면 패가망신시켜야 한다. 꼭 덧붙이고 싶은 것은 수험생도 처벌해야 한다. 이미 그들도 성인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킬러 문항 지적이 1번핀인지 5번핀인지는 곧 드러날 것이다. 수능의 난이도 조정, 사교육비 절감, 공교육 정상화, 제도의 공정성 제고 운운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격인 1번핀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에, 수능의 성격과 비중을 근본적으로 검토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공부, 보다 재미있고 의미 있는 공부를 하게 하는 방향으로 근본적 변화를 꾀한다면 그것은 5번핀 곧 킹핀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정성평가의 비중을 높이면서 학생선발권을 대학에 점차적으로 이양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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