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열쇠3-비교는 행복의 도둑이다 김영국  (Homepage) 2023-03-26(일) 10:58:31, 45846

꽤 오래 전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평소에 말수가 적고 남의 말에 귀 기울여 들어주던 가장 연로하신 회원이 주뼛주뼛 봉투를 내놓았다. “자랑은 민폐인데, 미리 벌금 내놓고 손주 자랑 좀 하겠습니다.” 손녀가 미국의 유명 의과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이었다. 박수를 치며 축하해드렸지만 다들 좀 켕겼다. 그 동안 너도나도 벌금 한 푼 내지 않고 크고 작은 민폐를 끼쳐 왔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우리 모임에서 자랑은 금기가 되었다. 나이가 들 만큼 들었는데도 남의 자랑 듣기가 편하지가 않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송무백열松茂栢悅, 소나무가 무성해지면 잣나무가 기뻐하는 그런 경지는 아직 우리의 영역이 아니었다. 불행해지는 가장 빠르고 가장 확실한 방법은 비교다. 비교는 행복을 좀먹는 도둑이다. 행복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비교를 행복의 첫 번째 적으로 꼽았다. ‘비교’ 2행시 하나 비: 비참해지거나 교: 교만해진다 대개 교만해지기보다 비참해진다. 나보다 더 가진 사람만 쳐다보기 때문이다. 남의 외면과 나의 내면을 비교하기 때문이다. 남의 하이라이트와 나의 일상을 비교하기 때문이다. 옛날엔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팠다. 사촌도 제한돼있었고, 논도 자주 사는 게 아니었다. 지금은 배 아프게 하는 사람이 천지삐깔이다. 게다가 논이 아니라 자식, 사치품, 음식, 여행 등등 배 아프게 하는 것들도 헤아릴 수가 없다. 직접 보고 듣는 것도 모자라 각종 SNS를 통해 시도 때도 없이 밀려온다. 카페인 우울증이란 말이 생겨났다. 카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때문에 젊은이들이 집단으로 앓는 우울증이다. 친구가 올려놓은 사진이나 영상 아래 ‘멋지다’ ‘부럽다’ 댓글을 달아놓고는 ‘부러우면 진다.’며 정신 승리를 위해 이를 악문다. 배만 아픈 게 아니라, 속도 끓고, 머리도 아프다. 가수 장기하의 노래 <부럽지가 않어>는 이런 세속을 풍자하고 있다. 야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국가 행복지수 순위를 보면 항상 일본과 한국이 꽁무니 부근에서 도토리 키 재기를 하고 있다. 개인 GDP나 사회 여러 여건에 비추어 턱없이 낮은 지수에 나는 가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누군가의 말이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의 단서를 던져주었다. 일본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미움 받을 용기’라면 한국인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비교하지 않을 용기’라고 했다. 두 나라가 다 집단주의 사회였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며 살아왔다. 일본인은 남에게 폐 끼치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했고, 한국인은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살아왔다. 한국 대학생과 한국에 유학 온 미국 대학생의 비교 심리를 비교하는 실험을 했다. 시험을 치르고 학생들의 뇌를 fMRI로 관찰하며 점수를 알려주었다. 한국 학생에게 80점이라고 알려주었는데 뚜렷한 반응이 없었다. 그런데 평균이 65점이라고 하니 보상 관장 뇌 부위가 반응을 했다. 이어서 친구의 점수가 90점이라고 하니 그 부위의 반응이 현저히 낮아졌다. 반면 미국 학생에게 채점결과 성적이 80점이라고 했더니 그 부위가 활성화됐다. 그보다 낮은 평균 점수, 그보다 높은 친구의 점수를 알려줘도 반응에 큰 변화가 없었다. 지난번에 60점을 받은 아들이 오늘 70점을 받았다고 대문을 박차고 들어오면, 엄마는 대뜸 엄마 친구 아들의 점수를 물으며 찬물을 끼얹는다. 천신만고 끝에 100점을 받아 오면 오늘 반에 100점이 몇 명이었는지를 묻는다. 어제와 비교하지 않고 친구와 비교하는 습관을 어릴 때 엄마들이 붙여주었다. 그리고 친구를 경쟁자로만 보게 하는 학교 내신평가, 한 줄로 세우는 대입제도가 그 습관을 강화 심화시키고 있다. 거기다 피 터지는 SNS 경연장이 펼쳐진다. 젊은이들이 헬 조선을 외치는 이유 중 하나가 이 지긋지긋한 경쟁 때문이라 생각한다. 차라리 아무도 나를 모르고, 비교 대상 자체가 없는 그런 세상을 그들이 꿈꾸는 것이 아닐까. 학교 성적을 절대평가로 바꾸고, 여러 줄로 세우는 대입제도로 개선하는 것은 국민의 행복감을 높이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젊은이들은 SNS 다이어트를 하고, 어른들은 모임에서 자랑 벌금 제도를 법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비교 환경에 덜 노출되도록 제도나 문화를 고쳐보자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개인의 노력이다. 담배를 끊듯 용기 있게 비교 중독에서 벗어나야 한다. 비교하고 싶으면 어제의 나와 비교할 일이다. 그보다 더 상수는 장기하의 노래처럼 친구의 자랑을 부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그보다 더 고수는 소나무의 번성을 기뻐하는 잣나무의 내공을 끈기 있게 쌓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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