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의 역설2 김영국  (Homepage) 2023-02-17(금) 06:19:31, 44354

성공한 경영자에게 기자가 물었다. “성공의 비결을 한 마디로 말씀해주신다면?” “올바른 선택 덕분이었소.” “올바른 선택은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좋은 경험 덕택이었습니다.” “좋은 경험은 어떻게 할 수 있었습니까?” “그건 잘못된 선택 덕분이었지요.” 미 항공우주국은 우주 비행사 후보를 뽑을 때, 성공의 탄탄대로를 걸어온 탁월한 사람, 그러니까 한 번도 실수나 실패를 해보지 않은 사람을 배제한다고 한다. 망망한 우주공간에서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실수 실패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 위기 대처 능력이 뛰어나다는 걸 그 사회는 알고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 사회는 실수 실패 경험자를 백안시한다. 기초과학연구원 초대원장을 역임한 오세정 박사는 우리나라 학자들의 연구과제 성공률이 98%에 달한다고 개탄한다. 기초과학연구원은 노벨과학상 수상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한 기관이다. 지원금을 받은 과학자들이 성공할 만한 연구, 고만고만한 과제만 골라서 매달리는 걸 보고 안타까웠다고 한다. 겁 없이 어려운 과제에 덤볐다가 실패하면 연구비를 물어내거나 다음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실수와 실패를 용인하지 않거나, 그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창의성이 싹틀 수 없고, 도전정신이 발붙일 수 없다. fast follower는 양산할 수 있어도 first mover는 기대할 수 없다. Pratfall effect는 실수효과로 번역되는 심리학 용어다. 그냥 글자 그대로 엉덩방아 효과로 번역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실수가 오히려 호감도를 높이는 현상을 이른다. 실수라고는 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대중 앞에서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거나, 터무니없는 실수를 하면 거리감이 줄어들면서 더 좋아하게 된다는 것이다. 선생님의 실수를 학생들이 얼마나 좋아하던가. 연단을 오르던 처칠이 계단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다. 청중들의 폭소가 터졌다. “여러분이 웃을 수 있다면 나는 한 번 더 넘어질 수 있습니다.” 우레 같은 박수가 터졌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이 영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 유서 깊은 길드홀에서 열린 한영 경제인 모임에 참석했다. 자못 엄숙한 분위기였다. 남색 한복 차림의 박대통령이 차에서 내리다가 치마를 밟는 바람에 휘청거렸다. 도열했던 환영객들이 당황하고 긴장했다. 정작 박대통령은 환하게 웃으며 한 마디 했다. “Dramatic entry!" 환영객들이 안도하며 박수를 쳤다. 실족은 두 분에 대한 거리감을 줄였을 뿐 아니라, 두 분의  유머감각과 만만찮은 내공을 확인시켜 주었다. 돼지는 평생 하늘을 볼 수 없다. 코로 땅을 파기에 편하도록 목이 아래로 향해 있기 때문이다. 돼지가 하늘을 볼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넘어지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평생 파란 하늘의 존재를 모르고 갈 수밖에 없다. 우리도 살다가 넘어질 때가 있다. 넘어지고 나서 생각지도 못했던 ‘하늘’을 발견할 수 있다. 노를 젓다가 노를 놓치고 나서야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게 된다고 시인 고은이 말했다. 콜럼버스는 길을 잃어 신대륙을 발견했다. 우리가 살아오는 동안에, 넘어지고 놓치며 산다. 그 바람에 하늘을 보고, 물을 보고, 뜻밖의 절경을 만난 경험이 더러 있을 것이다. 이쯤에서 그런 경험을 되짚어 음미해보는 것도 재미있고 의미 있을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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