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드니 KISS가 더 힘드네 김영국  (Homepage) 2022-12-25(일) 06:16:19, 44737

은퇴 무렵,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워낙 얇은 지갑이라 입이라도 닫아주겠다고 애들 앞에선 묵언수행을 시작했다. 그들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끼어들고 싶은 순간이 더러 있지만, ‘낄끼빠빠’(낄 데 끼고, 빠질 데 빠져라.)가 입을 막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이 없을 리 없다. 그러나 그들이 요청하지 않는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하지 말라는 말이 떠올라 역시 입을 다물고 만다. ‘충조평판’은 근 40년 동안의 밥벌이 도구였다. 그것을 놓는 일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십여 년 수행 끝에 이제 많이 편안해졌다. 등대는 못 되더라도 꼰대는 되지 말자던 당초 목표에 어느 정도는 접근했다고 스스로 믿고 있다. 문제는 친구들 모임이다. 모처럼 만나 민생고 해결하고 나면 담소가 시작된다. 주제는 늘 거기서 거기다. 건강 이야기, 그 시절 이야기, 누구 입원하거나 세상 떠난 이야기, 시국 이야기 등이다. 대개는 몇 번씩 화제에 올라 우려먹은 것들이다. 그래도 얘기하는 사람은 처음인 양 열을 올리고, 듣는 사람들도 또 그렇게 귀 기울여 들어준다. 그들도 다 집에서는 벙어리 행세를 하다가 같은 처지의 친구들 앞에서 마음 놓고 떠들어 보는 것이리라. 그런데 자리를 마치고 집에 와서는 번번이 자책한다. 내 말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들어주자. 들어주자.’ 다짐해놓고는 깜빡 놓치는 경우가 두 가지다. 상대의 말에 맞장구를 치다가 끼어들어 내 얘기를 해버리거나, 특정 주제가 나오면 내가 무슨 전문가인 양 장황하게 열을 내고 마는 것이다. 누가 말했듯, 아는 것 모른 척하는 것이 내게도 가장 어려운 일인가 보다. ‘그날’까지는 어찌 좀 나아지려나.ㅜㅜ Keep It Short & Simple(KISS)은 말하기의 만고불변의 진리다. 알고는 있는데 잘 안 된다. 나이가 들수록 KISS가 더 힘들어진다. 말이 고프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장의 훈화와 예식장의 주례사가 긴 이유는 교장과 주례는 대개 말에 한창 허기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학부모 총회의 핵심은 학년부장의 입시정보 설명과 담임과의 면담이다. 그런데 교장의 인사말이 시간을 다 까먹는다. 내가 교장이 되어 그 자리에 서보니 미상불 말이 자꾸 이어져 줄줄 나왔다. 수백 명의 젊은 어머니들이 눈 반짝이며 나를 집중하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잘 듣고 가십시오.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면 될 텐데 하고 불평했던 젊은 날의 기억을 그 순간 깜박깜박 잊고 만다. 교장의 훈화를 줄이는 방법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들에게 수업을 맡기는 것이다. 말에 스스로 질리게 하는 것이다.^^ 캘리포니아대학교 심리학과 메라비언 교수는 화자의 이미지에 미치는 커뮤니케이션의 요소를 연구하였다. 메라비언 법칙이라 하여 신입사원 교육에 지금도 활용되고 있다. 놀랍게도, 시각적 요인(외모 표정 태도)이 55%, 청각적 요인(목소리, 톤) 38%인데, 정작 언어적 요소(내용)는 고작 7%였던 것이다. 메라비언의 연구가 나오기 훨씬 전에 있었던 처칠의 옥스퍼드 졸업식 축사는 처칠의 비범함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위엄 있는 복장에 파이프를 물고 열광적인 환호를 받으며 연단에 다가간다. 모자와 파이프를 천천히 내려놓고 좌중을 둘러본다. 그리고 특유의 사자후로 식장을 흔들었다. "Never give up!" 그리고 또 한참 뜸을 들이며 청중을 긴장시킨 뒤, “Never, never, never, never, never, never, never" never를 톤을 바꿔가며 일곱 번 반복하였다. 숨을 고르고 나서 또 한 번의 사자후가 청중을 압도했다. ”Never give up!" 끝이었다. 굽힐 줄 모르던 그의 생애와 맞물려 온 세계인을 감동시킨 명연설이 탄생한 것이다. 교장이 되어 전체 조회를 월 1회로 줄였다. 말할 기회가 줄어든 것이다. 그래서 훈화에 담고 싶은 말이 더 많았을 것이다. 시간을 재며 원고를 줄이고 또 줄였다. 그러나 지내놓고 생각하니 민망하다. 그들에겐 역시 부질없는 장광설이었을 것이다. 노벨문학상의 필력, 타고난 달변의 처칠이 보여준 저 절제력은 가히 초인적이라 할 만하다. 누군가 ‘좋은 말’의 조건으로 세 가지를 내놓았다. ‘진실한 말’, ‘따뜻한 말’, ‘필요한 말’.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다. ‘짧은 말’

최영도		교장선생님, 새해에도 그 다음 새해에도....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지금처럼 좋은 글 많이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2-12-25 08:53:09
이순영		어머나!!! 꼬옥 이 시점에 졔가 읽어야할 글입니다. 진솔함이 가슴에 와닿네요	2022-12-25 09:41:26
김영국		말에 허기진 제게 교육사랑마저 없었다면.....상상이 안 됩니다 교육사랑은 저의 대밭입니다 교육사랑이여 영원하라 최샘 감사합니다.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새해에도 복 많이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실 겁니다^^	2022-12-25 17: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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