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꾸는 죽음3-언제가 좋을까2 김영국  (Homepage) 2022-09-15(목) 07:55:32, 34305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이형기 <낙화>에서 인생은 타이밍이다. 때를 아는 것도 어렵거니와 맞추어 실행하기는 더 어렵다. 특히 물러나야 할 때를 알고, 선선히 물러나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 ‘때’는 남의 눈엔 더 잘 보인다. 훤하게 보이는 그것을 본인만 애써 외면하고 욕심을 부리다가 패가망신하는 사람이 무릇 기하幾何던가. 대체 이 행성에서 내려야 할 때는 언제일까. 언제쯤 떠나야 그 뒷모습이 아름다울까. 이식을 포기할 때는 70이면 살 만큼 살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생각지도 않던 뇌사자의 간을 이식받게 되었다. 원래 받게 돼있던 환우의 건강에 문제가 생겨 같은 병원에 있던 내게로 넘어온 것이었다. 그렇게 기사회생하고 나니 내 생각이 달라졌다. ‘이렇게 소중한 장기를 적어도 10 년은 보존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기증자, 의료진, 가족에 대한 나의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 10 년의 절반을 넘기고 나니 어느 새 85로 연장되었다.  2~30대에 5~70대 선배들을 보며 저 나이에도 낙이 있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그 나이가 되어보니 그 나름의 재미와 의미가 있었고, 오히려 젊을 때보다 더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 지금 내 생각이 또 어떻게 변할지는 장담할 수가 없다. 적어도 지금 나는, 여든은 넘기되 아흔은 넘기지 말았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다. 그 나이 자체가 목표일 수는 없다. 기본전제는 건강이다. 그렇다고 지금 같은 체력과 건강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 나이까지 팔팔하다가 2~3일 앓은 후 잠자듯 가는 것은 모든 노인들의 로망이다. 로망은 로망일 뿐이다. 늙는다는 것은 시들어가는 것이다. 세월 따라 쇠잔해가는 것은 어절 수 없다. 나는 봄날의 꽃구경을 하다가 앞으로 몇 번 더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을까를 생각하곤 한다. 그 꽃구경도 전제가 있다. 방안에서 TV 모니터로 보는 것이나, 자식들의 승용차나 휠체어에서 보는 것 말고, 내 두 다리로 가서 보는 것을 말한다. 직립보행, 인간의 기본조건이 아니던가. 얼마 전 작고한 이어령 선생은 돌아가시기 전 두 번 울었다고 그의 부인이 전했다. 일어서서 걸어보려고 무진 애를 쓰다가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펑펑 울었다. 어느 새 내가 산길을 부담스러워 하듯, 언젠가 평지를 걷는 것도 어려워질 것이고, 결국 집에서도 직립보행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여기까진 받아들일 수 있다. 내가 꼭 피하고 싶은  마지노선이 있다. 그것은 내 변을 내가 뒤처리하는 것,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치매에 걸리기 전에 가는 것이다. 그것이 ‘아름다운 뒷모습’의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아내보다 내가 먼저 갔으면 좋겠다. 늙은 홀아비의 누추한 모습 때문만은 아니다. 깔끔까지는 아니라도 눈살을 찌푸리고 코를 막게 할 그런 노인은 안 될 것이다. 식은 밥이나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식들은 엄마 혼자 있는 것보다 아빠 혼자 있는 것을 훨씬 더 불편해할 것이다. 그것이 더 큰 이유다. 친구들이 다 가기 전에 갔으면 좋겠다. 맨 먼저도 아니고 맨 끝도 아닌 중간 어디쯤이면 좋겠다. 아무리 순서가 없다 해도 가족의 경우는 순서가 뒤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다. 찬물도 아래 위가 있는 법인데, 적어도 가족의 서열만은 무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만은 하느님께서 좀 배려해주셨으면 좋겠다.   죽음에 대한 나의 꿈이 지금 시험에 들고 있다. 아내가 내시경 검사를 하잔다. 친구 남편이 평소 건강했는데 위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내 위는 ‘장상피화생’이라 암 발생 가능성이 높단다. 그러나 현재 위나 대장에 아무런 불편이 없다. 암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드러나더라도 말기쯤이면 좋겠다. 그때까지 멋모르고 살다가 수술도 항암도 하지 않고 그 암을 안고 떠나고 싶다. 그런데  만약 지금 검사하여 암이 발견된다면 온 집안이 나서 수술과  항암을 밀어붙일 것이다. 그렇게 5년을 노심초사 투병하여 완치 판정을 받는다 한들 그때 내 나이 얼마인가. 그렇게 얻은 몇 년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나 나의 이런 생각을 아내나 자식들은 아예 듣지를 않으려 한다. 나와 달리 우리 가족은 ‘죽음’이라는 말을 아직도 사위스러워한다. 어떻게 설득하고 어떻게 버텨낼지 목하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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