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고플 때 김영국  (Homepage) 2022-09-26(월) 07:59:18, 35259

깔깔 웃어본 적이 까마득하다. 손주들이 재롱을 부릴 때 온 가족이 손뼉을 치며 그야말로 박장대소할 일이 많았다. 이제 막내마저 쑥스러움을 알아버렸다. 모여 봤자 다들 스마트폰에 고개를 박고 있어 ‘조용한 가족’이 되었다. 친구들도 웃음을 잃은 지 오래라 모여 봐야 늘 건강 걱정, 답답한 세상 이야기뿐이다. 너나없이 웃음 근육들이 다 굳어 버렸나 보다. 웃으면 엔도르핀의 분비가 늘어나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분비가 줄어든다는 연구 보고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웃으면 NK세포가 증식되어 면역력이 현저히 증가한다는 연구도 있었다. 가짜 웃음도 진짜 웃음의 90% 효능이 있다고도 한다. 나무젓가락을 가로로 물고 책을 읽으면 더 재미있고, 그 상태에서 얼음물에 손을 담그면 대조군보다 코르티솔의 분비가 적다는 실험도 있었다. 입 모양이 미소 짓는 모습이 되면 뇌가 진짜 미소인 줄로 착각한다는 것이다.(알고 보면 뇌도 엉성한 구석이 많다.) 웃음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다. TV 리모콘은 본디 내 것이 아니고, 그 탈환을 노릴 만큼 나는 간 큰 남자가 못 된다. 유튜브가 나의 구명줄이었다. 가장 고마운 프로는 ‘책을 읽어주는 코너’다. 본디 머리를 베개에 대는 순간 코를 곤다고 딴 방으로 쫓겨난 처지지만 중간에 잠을 깨면 그 갭이 길어질 때가 많아졌다. 그때 이 코너는 수면 촉진제로 직방이다. 그러다가 웃음 화수분을 만났다. 먼저 만난 것이 ‘대화가 필요해’이고 요새 나를 웃겨주는 것이 ‘부시맨 크랭크’다. ‘대화가 필요해’는 지금은 폐지된 <개그 콘서트>의 간판 코너였다. 김대희, 신봉선, 장동민 셋이서 꾸미는 가족 코미디다. 식탁에 셋이 앉으면 가장인 김대희가 “밥 묵자.”로 수저를 들면서 극은 시작된다. 소재는 대체로 신봉선의 외모와 주접, 김대희의 허풍과 바람기, 장동민의 모자람이 주를 이룬다. 매회 작은 변주로 잔잔한 웃음을 자아내다가 마지막에 대반전으로 빵 터뜨린다. 이를테면 김대희가 신봉선의 외모를 트집 잡다가 그의 허점이 드러나 코너에 몰려 쩔쩔맨다. 애먼 장동민을 탈출구로 삼아 호통을 친다. “니는 요새 왜 학교 안 가노? 또 정학 묵었나? 어이!” “지금 방학인데요???” 같은 프레임이 거듭 되지만 셋의 연기와 케미가 워낙 좋은데다 작가의 아이디어가 탄탄하게 받쳐주어 한 번도 시청자를 실망시키는 일이 없다. 유튜브에서 한두 편씩 꺼내보면 하루치 웃음은 거뜬히 채울 수 있다. ‘부시맨 프랭크’는 이에 비하면 훨씬 단순하고 황당하다. 풀과 나뭇잎으로 온 몸을 가리고는 도로변의 화분에 나무처럼 앉아 기다린다. 사람이 지나가면 벌떡 일어서거나 슬쩍 팔을 내민다. 화들짝 놀라 달아나거나 주저앉는다. 그게 다다. 그런데 그게 재미있다. ‘대화가 필요해’에서 “큭큭” 웃었다면 여기서는 “낄낄” 아니면 “하하” 웃게 된다. 내 IQ가 모자라는지 매번 보아도 매번 우습다. 당하는 사람들이 다르고 당하는 사람들의 리액션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혼비백산해 놓고 화를 내는 사람은 없다. ‘몰래 카메라’인 걸 알고는 얼굴을 가리고 낄낄거리며 웃거나 부시맨을 돌아보며 엄지를 세워 격려해준다. 그리고 촬영팀을 발견하고 포즈를 취해준다. 여자들의 반응이 훨씬 재미있다. 그들은 동작도 크고 비명 소리가 하늘을 찌른다. 남자들이 놀래놓고는 쪽팔려하는 모습도 재미있다. 대체로는 같이 걷던 여자를 본능적으로 감싸지만, 가끔은 여자보다 더 놀라고 더 멀리 도망쳐 놓고는 겸연쩍어하는 모습도 웃긴다. 쭉쭉빵빵한 외모와 여유 있고 성숙한 태도들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이 한결 더 넉넉해진다. 미국 버전 말고 아프리카 가나 버전(nico pranks)도 있는데 그 또한 다른 재미가 있다. 서로 다른 문화를 비교하다 보면 문화인류학 공부도 덤으로 하게 된다. 어디 또 웃음 화수분이 없는지 똘래거리고 있다.

로그인을 하셔야 코멘트(덧글)을 쓰실 수 있습니다.

이전글 :	내가 꿈꾸는 죽음4 - 어디서 떠날까
다음글 :	내가 꿈꾸는 죽음3-언제가 좋을까2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