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없는 정의의 굴욕 김영국  (Homepage) 2020-02-09(일) 08:37:57, 10486

#1. 군대에서 군에서 초소장을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트럭이 막무가내로 들어가려 한다고 연락이 왔다. 내려가 보니 보안부대 x상병이었다. 싱글거리며 헐렁한 경례를 했다. 그때 보안부대원의 위세는 대단했다. 병장이 대대장과 맞먹었고 대위가 연대장과 같이 놀았다. 그러나 그들에게  ROTC 출신 초급장교들은 버거운 존재였다. 진급을 포기한 장교가 그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어디 가려고?” “과장님 심부름 갑니다.” “화목(火木 땔나무)은 안 된다.” “걱정 마십시오.” 그런데 오후에 그 트럭은 화목을 잔뜩 싣고 차단기 앞에 서있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실랑이를 하다가 초병한테 차단기 열어주지 말라고 지시를 하고 돌아섰다. 그런데 금방 초병의 목소리가 들렸다. 억지로 차단기를 올리고 차가 출발하고 있었다. x상병은 차 문에 매달려 있었다. 권총을 쏘았으나 미치지 못했다. 초병의 칼빈을 빼앗아 타이어를 조준해 연발 사격을 하였다. 얼마 가더니 차가 멈추었다. 그리고는 후진하여 초소로 들어왔다. x상병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초소 연병장에 화목을 하차시켰다. 착한 소대원들이 도와주려는 것을 못하게 했다. 운전병과 둘이서 다 내려놓고 떠나면서 x상병이 말했다. “실탄이 바로 귀 옆을 몇 발 지나갔습니다. 죽는 줄 알았습니다.” 소대원들이 나를 보는 눈이 달라진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화내는 걸 처음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보안부대원을 휘어잡는 카리스마와 불타는 정의감을 존경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오후 늦게 직속상관 정보과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왜 그랬어?” “화목 반출은 안 된다고 말씀하셨잖습니까?” “장교가 똥오줌도 구분 못 해? 차 보낼 테니 다시 실려 보내!” 금방 차가 왔다. 눈치를 챈 소대원들이 내려와서 실었다. 이번에는 운전병과 x상병은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 꼴을 볼 수 없어 막사로 돌아왔다. 고생하고 올라온 소대원들을 볼 낯이 없었다. #2. 지하철에서 경로석에 앉아있는데 할머니 두 분이 내 앞으로 왔다. 내 옆에 빈자리 하나가 있었다. 서로 양보하다가 한 분은 앉고 한 분은 섰다. 맞은편에 빈자리 하나가 있었으나 망설이다가 포기하고 동료 앞에 서서 얘기를 나누었다. 덩치가 1.5인분이 되는,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사람이 다리를 쩍 벌린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빈자리에 있는 비닐봉지를 치울 생각도 않고 앉아있는  품이 미상불 여자가 비집고 들어갈 엄두를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 자리를 권하고 내가 그 빈자리로 향했다.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했다. 사람이 왔다는 기척을 하고 비닐봉지를 물었으나 그는 눈을 감은 채 대답이 없었다. 비닐봉지를 내려놓고 비집고 앉았다.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다리로 다리를 밀어보았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말을 해볼까 했으나 금방 터질 것 같은 험상궂은 인상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할머니들의 시선이 의식되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0.7인분의 좌석에 나는 찌그러들었다. 문득 드라마 <열혈사제>의 김남길이 떠올랐다. 그 실력 반에 반만이라도 있다면 그의 귀에 대고 속삭여주고 싶었다. “다리 오므렷. 이 xx야.”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못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주위에 지인이 없고, 마침 코로나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3. 뱀발[蛇足] 나는 태생적으로 소심한 사람이다.(눈이 큰 사람은 간이 작다고 들어왔다.) 완력과도 한참 거리가 멀다. 그러니 의협심 따위는 내 사전에 아예 없다. 그런 분수를 알고 뒷전에 숨어서 그저 조심조심 살아왔다. 그게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있는 삶의 비결인 셈이다. 사실 위 두 예화를 두고 정의 운운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도 이 참담한 경험을 소개하는 것은 나라를 책임진 사람들이 이 평범한 진리를 모르고 설쳐대는 것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나라, 누구도 흔들지 못하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죽창가를 외치고 “신에겐 아직 열 두 척.......” 하며 국민을 선동하는, 무지하고 무책임한 사람들이 나라를 이끌고 있다. 죽창 들고 조총에 맞섰다가 몇 만 명이 희생되었는지 그들은 모른다. 발틱함대를 격침시켜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토고 제독을 누가 이순신에 견주자 그는 정색하고 사양했다. 넬슨이라면 몰라도 그분에겐 어림도 없다고 했다. 무엄하게도 저들은 자기들도 그럴 수 있다고 국민을 현혹하고 있다. 나라에 힘이 없으면 정의도 신의도 조약도 한낱 종이 쪼가리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사까지 펼칠 것 없이 우리의 과거가 그렇지 않았는가. 국력의 기본은 GDP와 군사력이다.  그러므로 국가지도자는 부국강병을 국정의 최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만고불변의 진리다. 그런데 이들은 정의의 탈을 쓰고 거꾸로만 가고 있다.

로그인을 하셔야 코멘트(덧글)을 쓰실 수 있습니다.

이전글 :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이 시4
다음글 :	아니라고 한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