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재정 기여 추억 김영국  (Homepage) 2019-06-18(화) 20:05:02, 3224

교직에 있는 동안 내가 뭐 잘한 건 없을까 생각해본다. 민망 교육의 추억만 나열하다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좀 민망하다. 언뜻 떠오르는 것이 국가 재정에 새 발에 피만큼이라도 기여한 추억이 있다. 교감 새내기 시절이다. 교장선생님의 호출을 받고 교장실에 갔더니 교장선생님과 행정과장이 교실배치도를 펼쳐놓고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빨간 글씨가 빼곡히 적혀있는 것으로 보아 그동안 두 분이 꽤나 고민한 것 같았다. 교육청에 보고를 하기 전에 최종적으로 교감이 한번 살펴보라고 했다. 7차 교육과정을 위한 교실 구조를 개편하기 위하여 겨울방학을 앞두고 공사에 들어간다고 했다. 요지는 학생선택중심의 교육과정을 위해 일반교실을 대강의실 중강의실 소강의실 그리고 학년별 사물함실로 개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준별 이동수업에서 우수반 열등반은 소강의실, 보통반은 대강의실, 일반수업은 중강의실에서 한다는 것이다. 중강의실은 기존 교실, 대강의실은 1.5교실, 소강의실은 0.5교실 규모로 만들고 벽은 이동식 방음벽으로 한단다. 온 학교가 공사판이 될 큰 공사였다. 모든 중학교가 다 하느냐고 물으니 우리 교육청에선 두 학교만 먼저 실시한다고 했다. 교장선생님께 보고를 잠시만 미루자고 건의했다. 내년 2월이면 교장선생님은 퇴임하고 결국 내가 떠맡아야 할 처지인데 우선 내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교육청 중등과장에게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놀랍게도 중등과장도 모르고 있었다. 학교교육이 통째로 뒤집어지는데 중등과장이 모를 수가 있느냐니까 아마 교육부의 지시를 받은 시설과에서 추진하는 것 같으니 정식으로 항의 공문을 보내달라고 했다. 선생님과 학부모가 전혀 모르는 혁명적 교실 구조 변경은 있을 수 없다. 감당 못할 부작용과 저항이 예상된다. 우리 학교는 학년 당 5학급의 소규모 학교로서 영어 수학선생님이 각 5 명이어서 3개 학년 3개 등급 수준별 이동수업은 불가능하다. 급당 학생 수가 급격히 줄고 있는 추세이니 지금의 교실로도 대강의실 수업을 감당할 수 있다. 같은 이유로 사물함실을 따로 만들 필요가 없다. 따라서 교실 벽 허물지 않고도 학생선택중심 교욱과정을 시행할 수 있다. 다만 단체학습용 공간이 절실하다. 그 예산으로 체육관 겸 강당을 만들어 달라.(마침 서편 교사는 4층으로 남아있어 그 옥상에 만들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공사 시작 전에 이미 그렇게 신축된 학교(사상구 소재 개림중학교)를 방문해보자. 이런 요지로 공문을 올렸다. 교육청이 불난 호떡집이 된 모양이었다. 교육청 관계자, 우리 학교와 이웃 D중 관계자가 대거 개림중학교로 몰려갔다. 호화롭기는 소문대로 거의 호텔 수준이었다. 작년 연구학교 발표회에서 ‘대단한 학력 향상이 있었다.’는 보고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생님들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절대로 하지 말라. 별 효과도 없으면서 번거롭기 짝이 없다. 특히 기존 벽 대신 설치한 방음벽이 돈만 비싸지 방음이 거의 되지 않아 수업을 할 수 없을 정도다. 다시 벽을 만들어 옛날 교실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선생님과 학생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긍정적인 얘기는 하나도 없었다. 교육청 높은 분들이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며칠 뒤 계획 취소가 통보되었다. 그리고 서편 옥상에 강당이 올라갔다. 그곳에서 입학식 졸업식 체육 수업, 학년 별 단체학습, 목련 콘서트 등 다양한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교실 구조 개편 공사 취소가 다른 교육청 더 나아가 타 시도까지 파급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아무튼 그 이후로 그런 공사 없이 7차교육과정은 시행되었다. 그때 내가 반기를 듦으로써 적잖은 국가 예산을 절약할 수 있었고 학교의 혼란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었다. 장하지 않은가, 발령 3 개월의 초짜 교감의 용기가. 무식해서 용감했나 하고 혼자 으쓱하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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