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망 교육의 추억11-인사 사양 김영국  (Homepage) 2019-02-21(목) 08:17:07, 2268

승진을 앞두고 근평 관리를 위해 중학교에서 잠시 근무하게 되었다. 양운중학교는 해운대 신도시 신설학교라 학교 내부 시설이 학교가 아니라 호텔 수준이었다. 그보다 생글거리는 중학교 1학년은 한 명 한 명이 꽃이었고, 교실은 한바탕 꽃밭이었다. 어물전의 맛이 간 생선의 눈 같던 고3의 눈빛만 보다가 막 건져 올린 생선의 반짝거리는 눈동자를 대하니 모처럼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래, 이제 문제집 풀이 수업 말고 내 수업을 해보자. 언어 능력 신장을 위한 사고력 훈련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수능에서 측정하는 사실적 사고력, 추리 상상적 사고력,  비판적 사고력 등의 공부는 고등학교 특히 고3 교실에서는 언감생심이었다. 중1에서 시작해보자. 그래서 나의 교재연구는 이런 사고력을 겨냥한 질문 만들기가 중심이 되었다. 학원에서 선행 학습한 것으로는 대답을 재깍재깍 할 수 없자 처음엔 반응이 시큰둥했다. 차츰 익숙해지자 교실에 활기가 살아났다. 가끔은 논술을 대비해 자기 생각을 발표하는 시간도 가졌다. 어떤 대답 어떤 생각도 존중해주어 편안하고 자유롭고 즐겁게 참여하도록 유도하였다. 국어 공부 이렇게 하면 수능과 논술에서 고득점 할 수 있다고 부추겼다. 할배 선생(만수무강하라는 덕담을 얘들로부터 처음 들었다.^^)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초등학교나 학원에서 접해보지 못한 수업에 흥미를 느낀 것이다. 나도 신이 났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우리 집이 학교와 가까운 대림1차였다. 북좌동의 중심지는 우리 집 앞 대동상가이고 그 주위에 학원이 밀집해 있었다. 퇴근 후 늘어진 추리닝 바람에 슬리퍼 끌고 상가에서 검은 비닐봉지 들고 나오는데 막 학원에서 나오는 학생들과 마주쳤다. 어디서 “선생니임~” 하며 한 떼거리가 달려들었다. 또 한 떼거리가 “국어 선생님이다~아” 하고 달려왔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걸음을 멈추고 멀거니 바라보았다. 이 생소한 상황에 어쩔 줄을 모르고 쩔쩔매기만 했다. 6차선 도로 건너편에서 떼창으로 “선생니임 안녕하세요오.” 하여 얼결에 손을 들어 답례를 하니, 같이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일제히 신기한 듯 나를 보기도 했다. 어떤 때는 같이 나온 엄마를 데리고 다가와 “엄마 우리 국어선생님이야.”하고 ‘인사를 시키기도 했다. 그 엄마도 나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엄마의 눈빛에서 간혹 ’웬 노인?’ 하는 실망을 읽을 때도 있었다. 가족들과의 외식도 자유롭지 못했다. 할 수 없이 수업에 들어가서 간곡하게 호소했다. 제발 학교 바깥에서 선생님 보고 인사하지 말라고. 선생님 정말 쪽팔린다고. 애들도 이해가 되는지 고개를 끄덕였고 그 뒤에 잠잠해졌다. 지금 생각하면 참 아름다운 정경이었는데 그땐 그게 왜 그리 창피했던지. 그래 놓고 집에 와서는 지금 이 나이에 십대 소녀들의 환호를 받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나훈아 남진도 넘볼 수 없다고 너스레를 떨다가 아내한테 퉁을 듣기도 했다. 달콤하고  민망한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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