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의 흠결2 김영국  (Homepage) 2018-09-24(월) 14:21:15, 2094

지인의 실수가 마냥 안타깝지만은 않다. 남모르는 실수 경험을 흉터처럼 감추고 사는 사람에게 남의 실수는 적잖은 위안이 된다. 더구나 위인의 흠결을 발견하는 것은 결점투성이 범인에게 더 큰 위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위인의 흠결을 들추어내는 의도는 그런 값싼 위안을 위해서가 아니다.   위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많은 문제를 안고 있으며 그래서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다른 노력과 능력으로 위대한 일을 해내었으면 사람들은 그 위업을 기리어 위인으로 추앙한다. 이 너무도 보편타당한 이치가 유독 우리나라 현대사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이 안타까워. 쓰기도 읽기도 불편한 이런 글을 쓰는 것이다. *버트란트 러셀 90 평생 러셀의 염문은 끊이지 않았다. 결혼을 무려 네 번이나 했으니 연예인 세계에서도 드문 기록이었다. 네 번째는 80세에 마흔 살 연하와의 결혼이라 세상이 떠들썩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두고 도덕적으로 문제 삼지는 않았다. 그런데 사후에 믿기 힘든 사실이 밝혀졌다. ‘황무지’(The Waste Land)의 시인 T.S, Eliot은 하버드 시절 러셀의 제자였다. 부모가 반대하는 여인과 결혼하는 바람에 생계 자체가 어려워졌다. 신혼부부는 영국으로 건너가 러셀을 찾아갔다. 러셀은 취업 주거 문제 등을 자상하게 보살펴주었고 엘리엇 부부는 러셀을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기댔다. 한 전기 연구자에 따르면 이 무렵 러셀이 엘리엇의 아내를 범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엘리엇도 알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철학, 수학, 과학, 역사, 교육, 윤리 등 다방면에 걸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친 불세출의 지식인이자, 반전 반핵 운동으로 두 번이나 투옥되고, 여성운동에 남다른 열정을 보인 행동하는 지성으로, 그리고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서의 그의 면모에 치명적인 오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가 이룬 생전의 위업을 재평가하자는 움직임은 찾아볼 수 없다. 러셀은 영국인은 물론 세상 사람들로부터 여전히 위인으로 존경받고 있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 신유사옥(1801)은 천주교 탄압 사건이다. 남인을 제거하기 위한 노론의 책략이었다. 남인이었던 정약용은 매부인 이승훈을 따라 형 약종과 함께 천주교에 입문했었다. 형틀에 묶인 정약용은 이 사실을 완강히 부인했다. 부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승훈을 비롯한 다른 교도들의 행각을 폭로하고 그들의 은거지도 밀고했다. 이승훈과 정약종은 순교했으나 정약용은 적극적인 배교 행위에 힘입어 죽음을 면했다.  유배지에서 그렇게 많은 저서를 남겼으나 그 어디에도 그 날의 일을 언급하지 않았다. 정약용은 에도 시대의 일본 유학을 접하고 그 수준에 감탄했다. 그것을 근거로 그런 나라가 남의 나라를 침략할 리가 없다며 일본을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의 사후 70여 년 만에 경술국치를 겪었다. 안타까운 일은 또 있다. 그가 ‘일천즉천’(一賤則賤 : 부모 중 한 쪽이 노비면 그 자식은 무조건 노비가 되어야 한다) 법을 주장한 것이다. 종모법(從母法: 어머니가 노비면 그 자식도 노비) 때문에 노비 수가 줄어든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것이다. 그리고 다산은 소설 유해론을 펴며 그 퇴출을 주장하기도 했다. 동시대 박지원을 의식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산 정약용을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칭송하고, 사상가로서는 원효 이황과 같은 반열에 올려 추앙하고 있다. 대학교 유학과 학생들의 졸업논문의 태반이 정약용 연구라는 통계도 있다. 베트남의 영웅 호치민(胡志明)의 머리맡에 다산의 ‘목민심서’가 떠나지 않았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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