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즈음에♬♬-이 노래 김영국  (Homepage) 2018-01-15(월) 15:35:42, 2290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나의 애창곡 목록에 올랐다. 재작년 말부터 노래 가사집을 하나 만들었다.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데 내 안색을 살핀 기사가 자기 투병기를 늘어놓았다. 백약이 무효인 난치병을 노래로 이겨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손님만 없으면 시도 때도 없이 노래를 부른단다. 어느새 기분이 좋아지고 입맛도 살아나고 기운도 되찾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더러 하루 무조건 10 곡 이상을 목청껏 부르라고 권했다. 걸으면서 부르기로 했다. 그러나 자막 없이는 한 곡도 온전히 부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작은 노트에 땡기는 노래부터 가사를 적기 시작했다. 완전히 익혀졌다 생각되면 또 하나를 추가하고 그렇게 거듭하는 동안 수십 페이지를 넘겼다. ‘울고 넘는 박달재’ ‘번지 없는 주막’ ‘비 내리는 고모령’ ‘추억의 소야곡’ 등 대체로 50년대 전후에 나온 노래들이다. 내 어릴 때 어른들이 부르던 노래들이 웬일로 편안하고 흥겨웠다. 그런데 최근 김광석의 노래가 많이 나오면서 ‘서른 즈음에’가 다가왔다. 용기를 내어 덤벼들었지만 역시 트로트보다 훨씬 어려웠다. 즐겨찾기에 올려놓고 듣고 또 듣고, 부르고 또 부르기를 반복하니 서서히 입에 익어 걸으면서 흥얼거리다가 이제는 소리 내어 끝까지 부르게 되었다. 가사 외는 데 신경 쓰지 않고 가사를 음미하며 멜로디에 젖어 부르다 보니, 이 노래는 서른 즈음의 노래가 아니라 일흔 즈음의 노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를 ‘무얼 채워 살아 왔는지’로만 바꾸면 영락없이 일흔 즈음의 노래였던 것이다. 대체 김광석은 어떤 심정으로 이 노래를 서른 즈음에 불렀을까. 첫 소절부터 생뚱스럽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는 담배연기처럼.’ 이건 단연코 앞날이 구만리 같은 30대가 부를 가사가 아니다. 떠날 날을 눈앞에 둔 70대가 한숨 섞어 불러야 제 맛이 날 것이다.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에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도 그렇다. 감정도 사랑도 꿈도 다 메말라 텅텅 비어버린 가슴은 분명 70대의 가슴이다. 30대가 그런 가슴이라니, 말도 안 된다. ‘조금씩 잊혀져간다, 머물러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이건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사랑도 생물인지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 잊혀져가는 것이 순리이고 그것을 깨치는 아픔 또한 그들의 몫일 수 있다. 그러나 70대의 입장에서 보면 조금씩 잊혀져가는 것이 어찌 비단 사랑뿐이겠는가. 그들은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떠나가고 잊혀져가는 것을 몸소 매일 매순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노래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는  일흔 즈음인 내게 더 자연스럽게 그리고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이 가사가 두 번 반복되면서 노래가 끝나는데 나는 두 번째에 이르러 매번 목이 멘다. 이 노래를 음유가객 최백호가 눈 지그시 감고 읊조리듯 부르면 이 노래가 서른이 아니라 일흔 즈음의 노래라는 나의 주장에 머리를 끄덕일 것이다. 그러나 그분에게 어떻게 이 노래를 부르게 하지? 이 노래를 서른 즈음에 절창한 김광석이 조숙 내지 조로한 것인가. 이 노래를 일흔 즈음의 노래라고 부득부득 우기는 내가 주책 내지 망령을 부리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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