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감력(鈍感力) 김영국  (Homepage) 2017-09-05(화) 06:16:26, 2288

나는 감각이 둔한 편이다. 적어도 아내보다는 많이 무디다. 난이 모처럼 꽃을 피워도 나는 알아채지 못한다. 아내가 먼저 향기에 반색하면 나는 눈으로 그것을 확인하고 가까이 다가가서 킁킁거리고 나서야 어설픈 리액션을 한다. 아내는 코에 거는 안경이나 보청기는 안 만드나 하며 놀린다. 미각도 그렇다. 나는 고기 많이 넣어주는 국밥집이 좋은데 아내는 그 집은 국물 맛이 영 아니란다. 또 어떤 집은 MSG를 많이 쓴다고 고개를 흔든다. 도저히 내가 범접할 수 없는 경지다. 애써 골라온 상품에서 하자를 귀신같이 찾아내어 교환하거나 환불받아와 잘난체하는가 하면 TV를 혼자 보고 있으면 이웃집까지 들리겠다며 볼륨을 낮춘다. 민감한 아내 앞에 둔감한 내가 내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 의견이 맞서면 다 내가 둔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순순히 물러섰다. 내 무딘 감각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왜 예민하게 태어나지 못했을까. 진화심리학까지 끌어와, 여자는 수렵시대부터 음식을 만들고 집을 지킬 때 그의 감각에 가족의 생명이 걸려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달래어봤지만, 민감과 날카로움에 대한 주눅은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바깥의 소음 때문에 잠을 설쳤다고 불평하는 아내를 나는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천둥 번개가 쳐도 세상모르고 자고 나서는 “간밤에 비왔어?” 묻는 나를 아내는 짐승 바라보듯 한다. 여행지에 가서도 베개에 머리만 대면 나는 잠이 드는데 아내는 잠자리가 바뀌면 애를 먹는다. 맛집을 찾아가서도 소문과 다르다고 투덜거리고 택시를 내리면서 당신은 담배 냄새 안 나더냐고 묻는다. 아, 그렇구나! 민감한 게 좋은 것만은 아니고, 나의 둔감이 꼭 나쁜 것만도 아니구나. 일본의 한 의사는 ‘둔감력’이라는 말을 썼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좀 둔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TV 화면에 넘쳐나는 저 일들 하나하나에 감각을 곤두세우면 다들 신경쇠약에 걸리고 말 것이다. 적당히 둔해지면 교감신경이 흥분하는 대신 부교감신경이 주도권을 잡게 되고 그래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혈액순환이 잘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둔감력이 재능을 키우고, 연애도 잘하게 한단다. 실패의 상처를 덜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나. 반면에 민감증후군에 빠지면 노르아드레날린이라는 공격성 물질이 과도하게 분비된다고 한다. 이 물질은 개체 생존본능을 위한 호르몬으로서 꼭 필요할 때 분비되도록 일정량이 보존되어야 하는데 너무 자주 많이 분비되면 시도 때도 없이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성향을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이 호르몬이 부족한 상태가 되면 매사에 힘이 나지 않고 우울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고 하니 예삿일이 아니다. 이제 냉장고도 있고, 유통 시스템도 발전하여 상한 음식 때문에 가족들의 생존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치안도 세계 최고 수준이고 아파트의 보안도 이중삼중이다. 가족의 안전을 개인이 그것도 여자가 걱정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이제 여성들도 그 예민한 감각들 좀 쉬게 할 때가 되었다. 아니 더 둔하게 만들어 이 좋은 세상 더 편안하게 살 수 있게 해드려야 한다. 그런데 감각을 둔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긴 있나. 세계평화 인류 건강을 위해 역안경, 역보청기 따위는 누가 안 만드나.^^

최영도		교장선생님 글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이 글에 알맞은 사진으로 깊은 잠은 아닌 것 같은데 평온하게 잠든 아이의 얼굴을 찾아보았습니다. 예민한 사람이 무딘 사람은 될 수 없어도 무던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평온해질 수는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며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2017-09-05 07:02:13
김영국		사진 참 좋습니다. 더할 나위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2017-09-05 10:2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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