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력(孤獨力) 김영국  (Homepage) 2017-08-05(토) 05:49:40, 2536

내가 걷는 수영강변길에 왜가리 세 마리가 있다. 늘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서 있다. 계절이 바뀌어도 해가 바뀌어도 변화가 없다. 그 세 마리가 어울리는 걸 본 일이 없다. 한 500 미터 간격으로 떨어져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귀찮은 관찰자가 있으면 잠시 날아 자리를 옮기지만 이웃까지 가진 않는다. 서로 모르는 사이일까. 무슨 일로 원수지간이 됐을까. 가끔 만나 인사 나눌 친구도 없을까. 찾아오는 자식도 없을까. 아니 배우자는 어디 갔을까. 겨울이면 청둥오리가 떼를 지어 앞마당을 점령하는데, 그리고 보란 듯이 부부가 금슬을 자랑하는데 왜가리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의 턱밑까지 다가와 먹이를 잡는데도 오불관언이다. 숭어 치어들이 발을 간질여도 꿈쩍도 않는다. 자코메티의 조각처럼 빼빼 마른 몸매로 홀로 서서 대체 뭘 하는가. 생각에 잠겼는가. 멍 때리기라도 하는가. 왜 저렇게 사는 걸까. 노느니 염불이라고, 지천인 고기라도 부지런히 잡아먹어 살이라도 좀 올리지. 그것도 싫으면 가끔씩 날아올라 그 우아한 날갯짓을 자량해 보든지, 아니면 그다지 아름다운 소리는 아니지만 왝 왝 소리라도 질러보든지. 심심하지도 않을까. 대체 무슨 낙으로 사는 걸까. 저러다가 우울증에라도 걸리는 건 아닐까. 그러다 고독사라도 하면 어쩌지. 내가 별 걱정을 다해도 왜가리는 태연자약, 그 모습 그대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혼자 저렇게 사는 게 아무렇지 않은 것이다. 그래 그것도 살아가는 한 방식인 것이다. 아니 혼자 저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 아닐까. 낯선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말을 걸고 금방 친해지는 능력을 우리는 친화력이라 한다. 잘 참고 견디는 힘을 인내력이라 하고, 순간적인 충동을 스스로 억제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을 자제력이 강하다고 칭찬한다. 왜가리가 지닌 저 남다른 능력을 고독력이라 칭하면 안 될까. 고독력이 강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행복하고 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시회생활을 활발하게 하라고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혼자가 되어가는 게 인생 아니던가. 저 풍성한 나무도 계절이 바뀌면 잎을 떨구고 결국 앙상한 겨울나무로 혼자 서지 않던가. 왁자지껄 모임도 순간이고, 하하호호 가족들도 금방 돌아가기 마련이다. 어차피 혼자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라면, 근력을 키우고 기억력에 신경 쓰듯, 고독에 대처하는 힘을 평소에 길러둬야 하지 않을까. 고독력은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하나는 고독을 견디는 힘이다. 곁에 사람이 없으면 금방 외로워서, 심심해서, 지루해서 그리고 두려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은 건강할 수도 행복할 수도 없을 것이다. 고독의 시간을 견뎌내는 다양한 수단을 개발해두면 혼자의 시간이 덜 힘들 것이다. 혼자 할 수 있는 취미와 관심 분야를 넓혀두면 그것이 그 수단이 될 것이다. 혼밥 혼술 혼영 등을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할 수 있는 배짱도 그 수단이 될 수 있다. 고독력의 두 번째 유형은 고독을 즐기는 힘이다. 견디는 수준을 넘어 혼자의 시간이 더 즐거운 취미가 많은 사람은 고독력이 강한 사람이다. 독서광. 게임 마니아, 음악 애호가 또는 명상인은 고독이 불편하지 않을 것이다. 떠들썩한 여럿보다 호젓한 혼자가 더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라디오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휴게실에 있는 TV는 채널권이 없을 뿐 아니라 늦은 밤에는 볼 수가 없다. 혼자 깨어있는 밤, 산책하거나 쉬고 있을 때 라디오는 따뜻하고 편안한 친구였다. 그런 세계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돈 많은 사람 못지않게 노후가 든든할 것이다. 세 번째 고독력은 고독을 이용하는 힘이다. 고독의 시간에 뭔가를 해내는 것이다. 하찮은 이 글도 혼자의 시간에 쓰고 있다. 어떤 이가 ‘절대 고독의 강’을 건너지 않고는 어떤 창작물도 생산할 수가 없다고 했다. 한 편의 시, 한 곡의 음악, 한 폭의 그림 그리고 니체의 철학, 뉴턴의 만유인력도 절대 고독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사실 고독을 이용할 용기와 능력이 없었으면 오늘 인류의 문화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게 ‘교육사랑’이 고마운 것은 한 달에 한두 편이나마 졸문을 쓰게 해주는 것이다. 덕택에 고독의 시간이 힘겹지 않았고 오히려 그 시간에 생산의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저 왜가리는 고독을 견디고 있을까, 고독을 즐기고 있을까, 아니면 나름으로 고독을 이용하고 있을까. 그도 저도 아니면 고독 따윈 없는 것일까. 야윈 나를 닮아서일까. 마음이 쓰인다.

로그인을 하셔야 코멘트(덧글)을 쓰실 수 있습니다.

이전글 :	1교실2교사제
다음글 :	일상의 기적-나누고 싶은 글21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