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쓰세요 김민서  (Homepage) 2010-01-03(일) 01:11:30, 8056

몇달 전에 독일작가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란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한 며칠은 연애소설 읽고 가슴 설레어 하는 사춘기 소녀와도 같은 심정으로 지냈었지요. 책 전체가 두 사람이 주고받는 이메일로만 이루어진 독특한 소설입니다. 우연히 잘못 날아온 한통의 이메일이 그 시작이었지요. 이미 결혼한 에미와 실연의 아픔을 간직한 독신남 레오. 결국 그토록 기다리던 만남이 불발로 끝나면서 소설도 끝났는데 그 뒤에 두 사람의 사랑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라도 하듯이 이번에 그 후속작'일곱번째 파도'가 출간되어서 여간 즐겁지가 않았습니다. 때로는 도발적이고 때로는 절절한 심경 고백이 담겨있으며 사랑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재치있게 표현한 이메일들로 이루어진 이 책은 여전히 감성적이지만 보다 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었습니다. 소녀시절에 하이틴로맨스 시리즈의 독자였던 분들께 강추합니다. (물론 작품수준은비할 바가 아닙니다) 아,가슴 따뜻한 연애소설 한편 읽어보고픈 남성분들께도. 저는 오늘 이 책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제 메일 친구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요. 에미와 레오처럼 아줌마와 총각 사이라면 얼마나 로맨틱하겠습니까마는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된 이 분은 저보다 한살 위인 여성분이십니다. 그러나 일부러 언니란 호칭은 사용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마음먹었습니다. 언니 동생 사이라고 했을 땐 뭔가 평등하지 않은 관계가 성립될 것 같은 느낌때문이었습니다. 그 결과에 아주 만족하고 있구요.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관계. 이름을 잊고 살아가기 쉬운 아줌마들에겐 이것 역시 의미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처음엔 서로 필요한 문서 같은 것을 주고받는 일로 이메일을 사용했지만 지금은 서로의 안부도 묻고 즐거운 이야기도 나누며 좋은 시와 음악 같은 것도 보내게 되었습니다. 가끔 메일함을 열어보았을 때 잔뜩 와있는 스팸 가운데서 제 이름을 부르는 메일을 발견했을 때의 그 기쁨이란...... 답장을 쓸 때 그 떨림은 마치 연애편지라도 쓰는 것 같은 기분이랍니다. 전화로 수다떨고 문자주고 받을 때보다 얼마나 따뜻한 마음이 생기는지 모른답니다. 오히려 더 할 이야기가 많아지는것 같아요. 흉금을 다 털어놓을만큼 가까워지기엔 아직은 만남의 시간이 그리 많이 축적되지는 않았지만 적당한 거리와 적당한 예의로써 서로의 관심사를 조금씩 알아가는 이 관계가 저는 아주 맘에 든답니다. 빠르고 정확한 정보의공유, 이메일은 참 편리한 시스템입니다. 여러분들 모두 이메일에 생활이나 업무적 일처리에 많은 부분 빚을 지고 계시겠죠? 여기에 따뜻한 안부 한마디, 정겨운 인사 한마디 더한다면 좋겟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전화기를 들고 싶은 그립고 보고싶고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편지를 쓰세요. 겨울이 춥다한들, 이런 사람 사이의 온기로 겨울 추위 쯤 50미터는 날려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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