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사과를 기다리며 정일근  (Homepage) 2018-11-21(수) 06:03:00, 6916

밀양 얼음골 높은 지대 사과는 만추의 이즈음 출하됩니다. 큰 일교차 덕분에 사과의 정체성인 ‘새콤달콤한 맛’이 만들어집니다. 그런 맛이 꽉 찬 사과가 해마다 제가 기다리는 얼음골 사과입니다. 일찍부터 얼음골 사과를 맛봐온 사람들에게는 뜬금없는 이야기 같을 것입니다. 얼음골 사과가 두 가지 색깔의 상자에 담겨 팔리고 있는 사실을 안다면 그 답을 쉽게 찾을 것입니다. 산내면 남명리를 중심으로 재배되는 사과는 빨간색 상자에, ‘얼음골 옛길 번지’인 고지대에서 요즘 출하되는 사과는 초록색 상자에 담겨 나옵니다. 초록색 상자 얼음골 사과는 대략 700가구에서 연간 90만~100만ｔ을 생산한다고 합니다. 얼음골 사과를 재배지와 색깔에 따라 차별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맛보며 경험한 재미난 현상 이야기를 하려는 것입니다. 아침 사과를 즐기는 아내는 사과를 횡으로 자릅니다. 그러면 사과 속 씨방에 오각형의 별모양이 놀랍도록 선명합니다. 또한 별의 꼭짓점을 비롯해 10곳에 흔히 말하는 사과의 ‘꿀’이 오로라인 듯 박혀 있습니다. 아침마다 아내는 사과 속에 별이 들어 있다고 확신합니다. 저 또한 동의합니다. 아내는 사과를 꼼꼼하게 다 먹은 뒤 별모양의 꼭지를 만들어 보여줍니다. 마치 어린 시절 설탕 뽑기인 ‘달고나’에서 별표를 만들어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저는 사과 한 알을 다 먹을 때마다 제 안으로 별이 쏟아지는 즐거운 상상에 빠집니다. 우주의 미리내뿐만이 아니라 얼음골 골짜기마다 미리내가 흐르며 반짝이고 있을 것이라 상상해봅니다. 사과만큼 인류사의 극적인 장면에 자주 등장하는 과일은 없습니다. 모두 4개의 사과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첫 번째 사과는 ‘아담의 사과’입니다. 신이 에덴동산에 선악과로 사과를 심어놓고 따먹지 말라는 ‘금기’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유혹의 선악과가 왜 사과인지 궁금합니다. 그건 사과가 그만큼 유혹적인 맛의 과일이라는 걸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요. 처음 사과를 맛본 ‘원죄’로 인간은 파라다이스를 잃었습니다. 인간의 낙원과 바꿀 수 있을 만큼 빼어난 맛이 사과의 맛이라는 것입니다. 사과의 유혹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 많은 종류의 사과와 만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파리스의 사과’입니다. 그리스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사과입니다. 테살리아 프티아 국왕인 펠레우스가 아내인 안티고네를 비극적으로 잃고, 바다의 신 네레이스의 딸 테티스와 재혼을 합니다. 성대한 결혼식이 올림퍼스에서 열립니다. 모든 신이 초대받았지만, 불화의 여신 에리스는 제외됐습니다. 불화의 상징답게 에리스는 ‘황금사과’에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게’라는 문구를 써서 결혼식에 던져 놓았습니다. 당시 올림퍼스의 세 여신인 헤라, 아프로디테, 아테나가 있었습니다. 질투가 강했던 그들은 서로 황금사과의 주인공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판결에 신들도 나서기 싫어하자 결국 아킬레우스의 발뒤꿈치를 화살로 맞힌 영웅인 트로이 왕자 파리스에게 맡겨졌습니다. 파리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주겠다고 약속한 아프로디테의 손에 황금사과를 쥐어주었습니다. 아프로디테는 파리스에게 스파르타의 왕비인 헬레나를 넘겨주면서 난리가 납니다. 결국 파리스의 황금사과 때문에 트로이는 멸망합니다. 묘하게도 1, 2번 사과인 선악과나 황금사과는 사람에게 파멸을 선물합니다. 하지만 세 번째 사과인 ‘빌헬름 텔의 사과’는 스위스 독립운동의 상징이 되고, 시시비비는 많지만 네 번째 사과는 뉴턴의 사과로 중력의 법칙인 만유인력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영국의 전설의 록 밴드 비틀스가 자신들의 음원을 관리하기 위한 회사로 ‘애플 코어(Apple Corps.)’를 만들었습니다. 비틀스는 폴 매카트니의 아이디어로 초록색 사과를 애플 코어의 로고로 등록했습니다. 애플 컴퓨터의 스티브 잡스가 한 입 베어 먹은 무지개 사과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섯 번째 사과는 아직 등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사과의 시대가 끝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직 오지 않았을 뿐이라 생각하지만, 넓게 보면 우리 시대 다섯 번째 사과의 주인은 힘든 사과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라 믿습니다. 초록색 박스에 담긴 얼음골 사과를 받으면 비틀스의 연주가 들립니다. 사과를 꺼내 먹다 보면 미리내가 쏟아져 내립니다. 그런 황홀을 저만 맛보기 아까울 정도입니다. 위대한 서사시 같고 향기로운 서정시 같은 사과의 선물은 11월에 만나는 축복입니다. 아침에 사과 한 알로 몸속의 콜레스테롤이 40%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사람의 맛이 되고 건강이 되는 사과. ‘다섯 번째 사과’가 되기 위해, 지금 이 시간에도 사과는 만경창파 같은 사과의 바다에서 맛을 만들고 있을 것입니다. 시인·경남대 석좌교수 ☞ [국제신문 아침숲길] "다섯 번째 사과를 기다리며"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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