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集 “그리운 곳으로 돌아보라”(序文) 정일근  (Homepage) 2018-11-12(월) 07:46:57, 6610

몰래 복사본이나 손으로 직접 옮겨 적은 판금된 시집을 읽던 시절이 있었다. 숨 죽이며 시도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노래하던 시절이 있었다. 시인이라는 빛나는 관이 희망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가난한 머리맡에 두고 싶었던, 내 이름 적힌 한 권의 시집이 꿈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들 그리 오래 지나지도 않았는데 시여, 나는 추억을 반추하는 무덤덤한 세월을 살고 있다. 혁명은 벌써 끝나고, 20대 여린 사유의 등뼈를 꼿꼿하게 일으켜 세우던 혁명전야의 분노도 사라졌다. 차갑게 식은 저 잔치 끝의 국밥 한 그릇처럼. 그러나 나의 시여, 나는 늘 너에게 감사한다. 상처뿐인 내 삶에 너는 언제나 좋은 친구다. 처음 시인이 되길 꿈꾸었던 국민학교 5학년 때부터, 시인이란 이름표를 단 11년 동안 너는 변함없는 좋은 친구다. 하여, 나에게는 어느새 세 번째 시집이 되는, 쓸쓸함과 슬픔뿐인 상처를 감추지 않고 세상으로 내보낸다. 9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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