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골목길에서 정일근  (Homepage) 2013-11-24(일) 08:07:29, 3901

도시에서 골목길이 많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추억을 더듬어 여기저기를 기웃거려 봐도 옛날의 골목길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도시가 반듯해져 버렸다는 이야기도 될 수 있고, 세상 살기가 좋아졌다는 이야기도 될 것입니다. 골목이 있던 자리는 허물어졌고 그 자리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지 오래입니다. 저도 도시의 골목에서 유년을 보냈습니다. 사람 한 사람이 다닐 만한 좁은 골목길이었습니다. 어른 키보다 낮은 담들은 골목길을 따라 꾸불꾸불 굽어지고, 다닥다닥 붙은 집들의 손바닥만한 마당이 골목에서 환히 들여다 보였습니다. 그대도 골목길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던 그 낮은 지붕의 집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여름이면 태양이 양철지붕을 데워 찌는 듯한 무더위를 이기지 못해 피신하는 곳이 마당이고, 골목이었습니다. 골목에는 언제나 바람이 불었습니다. 이 골목 저 골목 바람이 불어왔다 불어가고, 어머니들은 골목길 그늘에 나와 앉아 고구마줄기나 푸성귀 같은 가난한 저녁 찬거리를 다듬으며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쩌다 누군가의 집에서 연탄화덕 위에 고등어라도 한 마리 굽는 날이면 그 냄새가 이 골목 저 골목을 타고 번져, 아이들은 자기네 집에서 고등어를 굽는지 알고 와와 하고 달려갔다가는 허탈해 엉엉 울기도 했습니다. 우연히 저 골목길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시간은 남루함 쪽으로 끝없이 굽어지고 전선들은 하늘 위로 어지럽게 얽혀 있었습니다. 제가 저를 만날 것 같았습니다. 덥다고 머리 빡빡 밀고 얼굴에 마른버짐이 핀, 혹시 우리 마당에서 고등어 굽는지 몰라 신이 나 집으로 달려가는 열 살쯤의 제가 저 골목을 돌아 힘차게 달려올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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