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묵언 정일근  (Homepage) 2012-12-21(금) 07:46:48, 3552

▶ 나무처럼 침묵하고 싶은 시간입니다. 스님네들 동안거에 들어간 지 한 달이 다 되어갑니다. 동안거란 겨울에 하는 절집 공부입니다. 음력 시월 보름에 시작해서 새해 정월 보름에 끝나는 치열한 자기 수행입니다. 동안거 동안 묵언으로 보내는 수행자도 있습니다.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물이 꽁꽁 얼고 눈이 내리는 그 긴 시간을 보내며 정신 삼매에 빠져 있는 그들이 나는 부러울 때가 많습니다. 계룡산 갑사에서 만난 절집 나무의 겨울도 묵언의 시간입니다. 나무에게 잎은 말과 같아 그 말들 다 떨쳐 버리고 동안거의 앉음새로 단단하게 앉았습니다. 절집의 수좌들도 나무들도 뜨겁게 침묵하며 12월을 견디고 있습니다. 문밖을 나서면 너무 말이 많은 세상입니다. 물이 끓는 주전자가 내는 소리처럼 요란한 말들이 끓고 있습니다. 그런 요란한 말로는 세상을 구원하기도 자신을 다스리기도 어렵습니다. 진정한 말이란 그릇 속에 담겨 편안한 수평을 유지하고 있는 물과 같습니다. 웅변은 은이고 침묵은 금이라는 옛말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빛나는 정신은 예나 지금이나 먼 미래에도 말이 당도할 수 없는 곳에 존재합니다. 말을 버려야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말이 많은 세상에 말이 상처를 만들기도 합니다. 말은 칼이 되어 남을 찌르지만 그 상처는 반드시 자신에게 남는 법입니다. 이 겨울 나도 한 그릇의 물이고 싶습니다. 나에게도 그대에게도 한 그릇의 물이고 싶습니다. 지구가 자전하고 공전하는 요란한 흔들림 속에서 이 겨울 물처럼 그렇게 편안한 수평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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