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과 대응 김홍미  (Homepage) 2006-09-11(월) 15:05:48, 14508

오늘 아침, 이정기선생님께서 무거운 표정으로 학습 1도움실과 2도움실의 뒷문이 열려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금요일에 퇴근하면서 보니 뒷문 잠금 장치가 끌러져 있어서 찜찜한 마음으로 단속을 하고 갔는데, 또 뒷문이 열려있었다는 것이다. 2도움실에는 선생님 책상 서랍 안에 들어있던 돈 8,000원이 없어졌다고 한다. 한숨이 샌다. 1학기, S의 도벽 사건으로 여러 사람이 마음 고생했던 기억이 나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으로 문단속과 소지품 관리에 신경을 바짝 썼었는데, 어떻게 뒷문을 열었는지 대담하게도 교실에 들어가 서랍을 열고 돈을 꺼내어 갔단다. 그러니 이내 내 가슴이 뛰고, 누구의 소행인지도 모르면서 바로 S의 얼굴을 떠올렸다.   만약에 S라면 어떻게 하지?   도벽은 감기처럼 낫는 병이 아니고 정신과적인 문제가 겸해진 습관이다. 특히 나같이 경험과 요령이 없는 사람에게는 벅찬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나는 S가 아닐 수도 있다는 가정을 무시하고 자꾸만 그의 과거를 붙들고 있다. 1학기 내내 수차례 걸친 S는 mp3, usb, 하나로 카드, 돈, 휴대전화 등 꽤 값나는 물건을 가져가서 찾아내는 동안 꽤나 애를 끓였건만, 지도하는 차원에서 부모님과 의견이 달라 S의 부모님께서는 굉장히 서운해 하셨다. 이렇게 부모님과의 랍포 형성에 실패한 이 시점에서 만약에 S가 그랬다면 어떻게 접근을 해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제발 아니기를, 제발 아니기를 하면서~   일단 S가 도움실 수업을 하고 있는 틈을 타서 이정기선생님과 원적학급교실에 가서 가방을 열어보았다. 가방 안에는 자물쇠의 열쇠와 고리가 떨어진 잠금장치가 들어 있었다. 가방에서 나올 만한 물건도 아니고 하필이면 그런 종류가 나와서 의심은 점점 깊어졌다. 만약에, 만약에 S가 그 돈을 가지고 갔다면 주머니에 넣었을 것이다, 라는 결론을 내리고 이정기선생님께서 점심시간 전에 잠시 2학년 전체의 주머니 소지품을 검사하기로 했다.   점심시간, 흡연과 관련하여 담배를 소지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라고 아이들을 속이고 주머니와 양말 밑까지 검사를 하였다. S의 표정에 불안함이 없다. 그래, 제발 S가 아니기를, 누군가가 정말 훔쳐간 것이라면 차라리 다른 학생이기를 바라면서 S가 꺼낸 물건들을 보니 2,000원 정도의 돈과 교통카드 등이 나왔다. 아니구나, 다행이다. 안도의 숨을 내쉬고 아이들을 내보냈다.   “우리가 반성문을 써야겠어요.”라며 껄걸 웃으시는 이정기 선생님의 표정에 씁쓸함이 묻어나왔다. “왠지 찝찝하고, 괜한 의심을 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아요.”라며 나도 씁쓸하게 마주보고 웃었다.   S의 가방을 몰래 열어볼 때의 기분, 그의 서랍을 훑어볼 때의 느낌, S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과 마음이 부정적인 정서와 부자연스러움으로 가득했다. 답답하여 교정을 걸어 다니면서 잠시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약간의 자각이 온다.      아이들과의 만남이 마냥 기쁘고 즐겁고 따뜻할 수만 없지. 만남에 대한 이러저러한 바램 조차도 나의 염체구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고, 대응하면 될 것을 나의 S에 대한 걱정스러운 마음과 의심으로 상황을 대해버려서, 쓸데없는 걱정으로 시간을 보내었구나. 과거 S의 부모님께서 가졌던 서운한 마음에 대한 불편함도 결국 나의 염체구나. S의 과거에 대한 나의 기억도 나의 염체구나.   염체에 대한 자각이 새삼스럽다. 한결 마음이 가볍고, 편안하다. 상황에 대한 나의 반응은 주로 [걱정 -> 대응(부자연스러움) -> 수심 -> 대응(자연스러움)] 의 과정을 거치지만 앞으로는 수심을 선행하고 최선의 대응을 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더욱 다듬어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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