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없는 아이들 김홍미  (Homepage) 2006-11-11(토) 11:57:48, 15139

얼마전, 대학교 때 선배가 집에 놀러왔다. 선배는 혜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 갑자기 생각난 듯, 진동이와 유진이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 선배네 학교 전공과(특수학교 고3 이후 과정)에서 반장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며 칭찬을 늘어놓았다. 결국 작년에 취업에 실패하여, 특수학교 전공과로 가게 된 것이지만 거기서 또 나름대로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한편 마음이 놓이면서, 또 무거워진다. 다시 취업하는 시기가 돌아왔다. 장애인취업이라고 따로 분류되어,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이나 장애인복지관 등의 도움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취업률이 낮고, 장기고용도 어려운 현실에서 특수학급 고3 담임들의 마음은 천근만근이다. 게다가 지금 고3 담임을 맡고 있는 샘들에 의하면, 내가 작년 취업 시즌에 썼던 일기의 실정과 올해의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다. <2005. 10. 08> 일기 쓰다가 잠시 잠깐 졸았는데 꿈에 진동이가 나왔다. 여느 때와 같은 모습으로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인사를 한 후, 칠판에 차 번호를 쓰고 교실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내 책상에 앉아서 진동이의 그런 모습을 가만히 바라 보다가 가슴이 저려서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 신랑이 들어와서 잠을 깼다. 진동이가 갈 곳이 없다. 채용박람회 때, 모 업체 사장님께 우리 진동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말씀 드리고 꼭! 기회를 한번 달라고 했더니 재면접의 기회를 주셨다. 나는 진동이가 지원고용의 형식으로 일터에 나갈 수 있게 하기 위해 복지관에 의뢰해서 그 절차를 밟으려 했는데, 복지관에서는 진동이의 평가결과가 지원고용 수준에 미치지 못 한다고 거부했다. 복지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취업이 될 만한 학생을 선발해서 장기고용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최종목표인 그들의 입장과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보이면, 일단 기회를 줘보자고 하는 담임의 입장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어머님도 3주가 아니라, 석 달, 삼 년이라도 좋으니까 매일 같이 따라가서 진동이가 적응하는데 온 힘을 쏟겠다고 하신다. 억지가 아니다. 체력이 좋고, 끈기가 있으며, 성실한 진동이. 무엇보다 분리수거 하나는 누구 못지 않게 잘 하는 진동이에게 병원명에 따라서 환자복을 분류하는 일, 세탁물을 옮기는 일 등은 진동이가 정말 잘 할 수 있는 일임이 틀림없다. 단 한번도 진동이를 본 적 없이, 평가결과로만 진동이를 판단하는 것이 안타깝다. 3년 간 진동이를 지켜봐 온, 내 눈도 아직 그를 다 읽지 못 했는데 말이다. 이제는 랍포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들을 진단하고 검사하는 것에 조금 신중을 기해야 할 것 같다. 장애등록과 마찬가지로 한번 판정이 나면 결과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 현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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