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김동희  (Homepage) 2006-09-02(토) 11:50:51, 14489

어제 저희 학급의 한 학생과 주고 받았던 편지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H 학생은 참 착한 여학생입니다. 보기만해도 흐뭇해집니다. 그러나 작년엔 지각도 잦았고, 수업시간에 수업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만, 앞에 있는 친구와 소근소근 대화(?)를 나누곤 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제가 담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가정형편도 어려움을 알게되었고, 지금은 외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음을 알게되었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대하니, H의 착한 심성도 느껴지고 다부지게 학교생활 하려는 의지도 보였습니다. 조금만 격려를 해주니, 학급석차 20등 밖의 성적이 중간/기말 내내 2등으로 오른 의지의 한국인이기도 합니다. 서설이 길었습니다만, H가 그저께 생리통이 매우 심하여 학교에 있기 힘들다고 조퇴를 해야겠다고 교무실로 내려왔습니다. 1학기내내 개근하였던 H였기에,, 얼마나 아프면 조퇴하러 내려왔겠냐 싶어서 얼릉 출석인정조퇴를 시키고, 집에 전화를 하였지만 통화가 안되어 그냥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파서 조퇴한 것이 아닌, 연예인을 보고 싶어서 다른 반의 친구와 함께 조퇴하였음을 어떤 경로로 뒤늦게 알게되었습니다. 그간 생활을 잘 해온 H였기에 크게 괘씸한 마음은 없었지만, 다소 서운한 마음은 없지 않았습니다. H에게 확인전화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다음날인 어제를 맞았고, H가 아침조회 전 교무실로 내려와 제게 편지를 무척 죄송해하는 표정으로 주었습니다. <H가 보낸 편지>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선생님. H예요^^ 먼저 오늘일부터 설명해드릴께요. 사실은요... 연예인을 보러 갈려고 했는데 사실대로 말하면 선생님께서 안보내 주실 것 같아서 거짓말을 했어요... 제 생각이 짧았어요. 학교마치고 가도 됐는데 거짓말을 해서 정말 죄송해요 선생님. 저한테 많이 실망하셨죠...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생각하시고 선생님의 너그러운 마음으로 딱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잘못했어요~ 실망시켜서 죄송해요. 2학기 시작할 때 썼던 종이에는 더 열심히 한다고 했었는데... 이제 다시는 절대 그럴 일 없을거예요! 믿어주세요 선생님! 집에와서 다시 한 번 생각해봤는데 선생님께 정말 죄송한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죄송해요. 앞으로는 절대 거짓말하지 않고, 실망시키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제자가 될께요~! 지켜봐주세요^^ 선생님과 함께하는 남은 시간 동안도 가장 좋은 선생님이 되실거예요^^ 저는 이만 줄이겠습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사랑해요 선생님 -2006.8.31 H 올림. 어떻게 지도할까 망설이다가 그냥 모른 척 넘어가자고 생각하고 출근하였는데, 이렇게 솔직하게 편지를 받고 나니 마음이 한결 누그러졌습니다. 훈훈한 마음이 감돈 상태에서 답장을 하였습니다. <제가 보낸 편지> 사랑스런 H에게 어제 H가 나를 속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참 가슴이 아프더구나. 나는 H가 정말 생리통이 심해서 학교 있기 힘들다는 말을 100% 믿었거든. 그래서 "H가 거짓말 했을리가 없어!"라고 생각했어.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A, B, C와 함께 조퇴를 했을 수 있겠다 싶었어. 그래도 크게 실망하지 않았어. 그렇게라도 꼭 가고 싶은 이유가 있었겠지 싶었거든. 지난 1학기 학교생활 참 잘했고, 충분한 믿음 주었떤 H였기에... "그냥 한 번 속아주고 넘어가자! H는 결코 두 번 속이진 않을꺼야" 생각하고 오늘 출근했어. 그런데 솔직하게 털어놓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편지를 건네받으니 내 마음이 참 기쁘고, 그런 H가 참 사랑스럽다. H야! 사람 사이에 "믿음"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참 소중한 보물이야. 내가 H에게 가지고 있는 믿음이 너의 솔직한 편지에 더욱 굳건해졌음을 전한다. 앞으로도 주변 사람에게 "믿음"을 주는 사람으로 살기를 바란다. 2006년 9월이 시작되는 아침에 담임선생님(하트) 모처럼 아이들과 깊은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되어 참 기뻤습니다.

로그인을 하셔야 코멘트(덧글)을 쓰실 수 있습니다.

이전글 :	처음처럼 대하기
다음글 :	[Re]고백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