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익계산서 최영도  (Homepage) 2012-09-25(화) 06:46:05, 3764

지난 목요일에는 구봉산을 찾았다가 하산길에 민주공원으로 나들이 나온 어린이집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선생님께서 이유나 조건에 대한 아무 설명없이 그냥 `노란선 안으로 걸으세요.` 라는 말 한 마디에 모든 아이들이 노란선 밖으로 밀려 나오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선 안으로 행진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다음날은 쇠미산을 들렀는데, 산에까지 들려오는 앰프 소리가 궁금하여 현장을 찾았더니 부산에 있는 모든 대학들이 참가하는 대학종합축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프로그램 진행을 위하여 계속해서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온갖 이유를 설명하며 협조를 당부드려도 학생들이 귀 담아 듣고 따라 주는 말은 경품권 추첨 번호와 점심 도시락 받으러 오라는 안내방송 뿐 자기에게 직접적인 이익이 되지 않는 순서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고, 진행을 위한 질서유지 협조에 따르는 학생의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몇 년 째 이런 일이 계속 되어서 그런지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경품이 걸려 있는 행사들로 가득했습니다. 1분 내에 동전을 몇 cm 이상 쌓아 올리면 기념품을 드립니다. 외발 제기차기를 몇 개 이상 하신 분 기념품을 드립니다. ............ 아무런 조건 없이도 선생님 말씀을 잘 듣던 저 아이들이 초등 6년, 중고 6년 도합 12년 이상의 교육을 받아 대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고 나면, 저렇게 되는구나!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거둔 교육의 효과가 자기 자신 밖에 모르는 이런 결과로 나타났단 말인가? 세상이 왜 이렇게 되고 만 것일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로부터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 시키기 위하여 상벌이란 교육 수단을 사용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인권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교육현장에서 상벌제도를 배척하는 현상이 널리 퍼져 가고 있습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헌법」정신은 가정, 학교, 사회 등 모든 공간에서 구현되어야 하기 때문에 교육현장인 학교에서 상벌로 학생을 차별 지도하는 것이 비교육적일 뿐만아니라 헌법정신에도 위배된다는 논리를 펼치기 때문입니다. 상과 벌 없이 다수의 학생들을 지도하기 어렵게 되자 상벌 대신 손익계산서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봉사활동을 몇 시간 이상하면 상급학교 진학 시 어떤 이익이 주어지며, 어떤 교칙을 위반하면 생기부에 기록으로 남겨 진학 시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으며, 수업 시간에는 수행평가라는 이름으로 수업 태도가 안 좋으면 점수 몇 점을 손해 보게 된다.`라는 식의 손익계산서가 상벌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입니다. 상벌이나 손익이나 득과 실의 입장에서 보면 특별한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직접 운용하는 현장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상벌시대에는 학생들에게 심부름을 시키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조건없이 들어 준 편인데, 손익시대가 되고 난 요즘에 와서는 학생들에게 어떤 동의만 구해도 대부분의 학생들이 조건을 먼저 내세우는 경우가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학생생활지도 규정 개정을 위해서 이 시간 설문조사를 좀 하려고 하는데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이런 얘기들이 들려옵니다. 선생님, 이거 해주면 뭐 사 줄 건데요? 선생님, 아이스크림 한 번 쏘시죠! 어제, 오늘 씁쓸한 웃음을 띄우며 나누던 교단에서의 이런 비화가 오늘날 대학축제의 현장에서 이권없는 일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 무질서한 현상으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요? 이런 교육환경 속에서 자라는 이 학생들이 만들게 될 미래사회는 이떤 사회일까요? 부모든, 선생이든, 정치가든, 가족이나 제자나 국민들에게 나눠 줄 이권을 가지지 못한 자는 리더의 자격을 상실한 사람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 비정한 사회가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요? 조직원들에게 이권을 나눠주지 못하면 두목 행세를 할 수 없는 조폭세계와도 같은 그런 비열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아니, 먼 훗날이 아니라 지금부터 서서히 우리 눈 앞에 이런 세상이 펼쳐지고 있는 게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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