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또는 사랑(?) 최영도  (Homepage) 2010-11-15(월) 09:19:27, 3503

얼마 전부터 수업이 없는 시간을 이용하여 체육관 배드민턴 코트 수를 늘리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 세 면을 네 면으로 늘리는 작업인데 새로 만드는 코트는 테이핑 작업으로 구획선을 만들기 때문에 쉽게 끝낼 수 있었는데 기존의 페인팅 되어 있는 선을 지우는 작업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한 시간에 사이드라인 하나 정도를 지울 수 있는 단순 노동인데 벌써 2주째 빈 시간마다 하나씩 하나씩 놀이 삼아 지우고 있습니다. 깊숙히 칠해져 있는 잘 지워지지 않는 기존의 선 위에 `리무브`라는 화학약품을 바른 후 스크레퍼로 긁어내는 작업인데 단순 노동이지만 그런대로 재미있는 작업입니다. 한 번씩 땀을 훔치며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단순 작업인데 왜 생각만큼 그렇게 지루하게 느껴지지는 않는 것일까? 1. 어쩌다 한 번씩 생각보다 쉽게 쭉 벗겨질 때의 쾌감이 있다. 2. 복잡한 세상사에서 벗어나 무상무념의 상태로 스크레퍼만 왔다 갔다 하면 된다. 3. 언제까지 이 작업을 끝내야한다는 의무감이 없다. 4. 나도 이제 나이가 들다보니 복잡하게 머리 굴리는 고급스런 일보다는 아무 생각 없이 반복되는 단순 작업을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이번에 이 작업을 하며 단순 작업을 즐기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게 이런 것일까? 어린아이처럼 단순해져 가는 자신이 애처롭게 느껴지기 보다는 친근하게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고, 앞으로도 골치 아픈 일들은 좀 더 젊은 분들에게 미루고 이런 단순 작업은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오늘은 이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왜 이리 잘 안 지워질까? 처음 선을 그을 때는 잘 벗겨지지 말라고 주문하며 칠했을 텐데 오늘 다른 필요 때문에 잘 지워지지 않는 선을 원망하고 있구나! 주인의 필요에 따라 잘 벗겨지기도 하고 절대 벗겨지지도 않는 내 마음을 읽는 페인트를 만들어 낼 수 없을까? 참 욕심이 과한 것 같습니다. 이런 게 모순이겠지요. 그런데 어쩌면 우리 부모님들이나 선생님들은 자기 자녀들이나 제자들에게 이런 SUPER PAINT와 같은 모순을 강요하고 있으면서 `교육 또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 런지요?

정인화		최 선생님, 이울어가는 이 가을 어떻게 지나시는지요? " 때로는 동창처럼, 때로는 남남처럼 " 지내고 싶었는데... 올해는 남남처럼만 지낸 것 같아 아쉬움이 스칩니다. 단순노동,... 그거 비움과 명상이 함께 오더라고요. 우선 물질과 관련된 강요된 노동이 아니라서 그렇지만 노동을 하는동안 신변의 쓰잘데 없는 잡념,잡사들이 가지런히 정리가 되고 걸러져 제 자리를 찾고 무엇보다 일에 몰두하다보면 머리가 하얗게 비어 마음이 티 없이 맑고 새털처럼 가벼워지더라고요. 한 십년도 더 전의 일인데 제가 창녕 남지의 어느 농사공동체에서 그런 경험을 해보았지요. 단순노동이지만 노동강도가 셀 수록 더 그렇더군요. 그리고 그것도 중독성이 있습디다. 뭐든지 적당히가 좋은 걸 알았어요. 저야 너무 게을러서 문제이지만요. 최 선생님, 가족 모두 평안하시길 ... 두 손 마주하여, 막인 모심.	2010-11-17 10: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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